조옥동의 시조산책 (3)

뜨개질 1
소망
                    홍오선
이 세상 모두를
꽃 밭으로 만들리라          

山만한 생각들이
꽃이되고 별이 되네

허물도 마냥 덮어주는
큰사랑을 짜리라고

뜨개질 2
마음
                                홍오선
코바늘 하나로도
내 꿈을 펼칠 수 있어

포근한 내 사랑도
외로움도 새겨 넣어

창공에
鳶을 띄우듯
세월 풀어 보낸다.

냉기가 엄습하는 계절, 무거운 어깨를 더욱 시리게 하는 깊은 겨울엔 뜨개질이란 말만 들어도 포근한 뉘앙스를 던져준다.  
시인은 코바늘 하나로도 꿈을 펼칠 수 있는 작업이라고 한다.  사랑을 차곡차곡 짜 넣어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입혀주고 싶은 마음은 얼마나 따뜻한가. 사랑하기에 품게되는 외로움의 무게까지도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마음을 무늬로 짜 넣어 입혀주고 싶다고.  
사람은 저마다 사랑의 대상을 찾아 헤매고 자신의 사랑을 확인하고 사랑을 주고 또 받기 위하여 애쓰고 고통하며 웃고 슬퍼하다가 세월을 풀어 보낸다. 곧 사랑의 진행형이 인생이 아닌가 싶다.

살아가는 일은 사랑하는 일밖에 없다. 한 평생을 살아가는 일은 누구나 자신의 사랑의 찬가를 써 놓고 사라지는 일, 그러기에 시 쓰기는 고통스러워도 감당해야하는 사랑의 작업이며 인생을 뜨개질하는 일이다.  시인은 뜨개질로 마음을 짜 넣고 있다. 이 시인에겐 뜨개질은 시를 쓰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뜨개질 11
흠집
                           홍오선
정신없이 짜다 보면
잘못된 코 알면서도

할 일이 너무 많아
그대로 두었더니

진작에 풀었더라면......
두고두고 흠이구나.

흠 투성이 옷을 입은
지치고 마른 육신

상큼한 바깥 세상에
주눅들어 돌아왔네

당당히
갈아입을 한 벌 옷
언제 또 장만하나.

우리 주변은 사방이 구멍이다. 날마다 메워야 하는 구멍이 너무 많다.

잘못 뛰어들면 생명과도 바꿀 수 있는 것에서부터 빠지면 패가망신을 자초할 도박이나 마약 음란의 구멍도 있고 물세 전기세 월세 전세 각종 세금을 비롯한 교육비 식비 교통비 등 돈으로 메워야 하는 살림의 구멍, 질병과 실직 전쟁과 천재지변으로 뚫어지는 엄청난 구멍을 쉴 새 없이 만난다.  

인생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는 일도 시작과 끝의 양쪽 구멍을 통과하게 된다.  그런데 이 숱한 구멍들은 어떻게든 통과하거나 메워 진다는 현상 앞에 조금은 숙연할 필요가 있다.

바람으로 물로 저절로 세월이 막아지는 것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것들은 많은 대가의 지불을 필요로 한다. 한 코 한 코 뜨개바늘이 바늘과 구멍사이의 경계를 메워 나갈 때 새 옷의 모양이나 독창적인 무늬가 만들어지듯 주변의 구멍들을 하나하나 메워갈 때 세상이 변하고 자신도 변한다.  그러나 메우고 메워도 채워지지 않는 구멍, 욕망과 허망의 안과 밖을 교대로 뒤집어쓰는 우리의 모양은 언제나 흠집투성이 아닌가.  구멍을 뚫거나 구멍을 메꾸는 작업은 만만치 않아 세상에서 주눅들어 돌아오기는 다반사로 또 다른 수렁을 느끼게 한다.

詩를 쓰듯 실타래를 바늘로 코마다 꿰어 옷을 짜내는 작업은 손과 마음이 일체가 되는 일이다. 너무 바쁘다 또는 어렵다는 이유로 실수하여 하나의 코라도 빠뜨리고 넘어가면 애써서 만든 뜨개질이 모두 풀리게 되므로 정성을 쏟아 넣지 않고는 실패작을 만들 수밖에 없듯이 삶도 순간의 잘못이 인생을 실패작으로 만드는 경우를 본다.  

그리하여도 마음과 자세를 바로 하고 골몰하여 뜨개바늘로 하여금 코를 하나씩 통과하여 실로 메워 갈 때 서로 다른 색실도 넣어 뜨개질을 하면 아름다운 옷을 짜낼 수 있다.

사람들은 행복으로 통하는 구멍 그 통로를 미친 듯 찾아 헤맨다.  행복의 빛이 통하는 구멍은 어디에 있을 가.  진실과 정직 신뢰와 긍정, 믿음과 사랑의 따뜻한 털실을 술술 풀어 큰 사랑을 짜리라고 그리고 이 세상 모두를 꽃밭으로 만들리라는 소망으로 인생의 뜨개질을 계속하는 여시인의 자세가 돋보인다.  

뜨개질이란 시제로 써낸 15편의 시들이 한 줄로 꿴 진주알 같이 빛난다.  누구나 특히 시인이라면 뜨개질을 한번쯤 해 볼 일이다.

이화여대 국문학과를 나와 85년 시조문학 천료와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시인은 「繡를 놓으며」·「내가 주운 하얀 음표」·「하늘 바라 서리라」·「행복찾기」·「내 손안 푸른 지환」등의 작품집이 있으며 2000년 현대시조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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