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옥동의 時調散策 (6)

    나순옥 詩人의 作品 鑑賞                    
                                                 조옥동
        
              고향
                                  
        잉걸불로 타오르던
        그리움도 사위고
  
        미워 할 그 무엇도
        남지 않은 세월 밖에서

        끝끝내
        지우지 못한
        종두자국 같은 것아
        -나순옥 시조집「바람의 지문」에서-
        
이 시조를 읽으면서 나순옥 시인의 꼭 아물은 입술사이로 비집고 나오는 호흡을 느낄 수 있다.

지우고 싶어도
끝내 지우지 못한
종두자국 같은 것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 묻고 싶은 그것아
어머니의 품속 체취 같은

  시조 「고향」에서 「종두자국 같은 것아」, 「잉걸불로 타오르던 그리움」, 이 몇 마디가 나로 하여금 한동안 멀리 감춰 둔 ‘고향’의 이미지에 덮인 고운 먼지를 털어 내게 한다. 너무 안이한 생각으로 풀어 두었던 思惟의 앞섶을 여미게 만든 작품이다. 평범한 것에서 비범한 것 예사로운 것에서 색다른 맛을 솎아내는 그의 멋이 보인다.

시조가 시와 다른 것은 특유의 형식미를 가지고도 우리 고유정서에 맞는 고도로 여과되고 정제된 시어를 꼭 있어야할 자리에 놓으므로 울컥 심연에 파동을 일으킬 만큼 감동을 가져오는 선명한 이미지에 있다. 같은 언어라도 시에서보다 시조에서 더 빛이 나는 경우가 많다. 또 같은 이미지를 나타내는데도 시에서 맛이 나는 언어와 시조에서 맛이 나는 언어가 때로는 달라야 함을 시조의 멋을 아는 사람은 알고있다.    



고향은 내가 태어난 곳,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 생명을 잉태 할만큼 모든 조건이 최상으로 알맞은 그 자궁 속에서 胚胎되고 나의 생명과 어머니의 생명이 공존하였던 곳이다. 그러기에 고향은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곳, 고향이 없는 사람은 어머니가 없는 사람이다. 어머니 없이도 내어나는 생명은 정상적인 태어남이 아니다.

하늘이 노하리만큼 고도로 발달하는 현대의 유전학, 고분자생화학의 소산, 시험관의 고아일 뿐이다. 출생이란 어머니 몸에서 진통을 통하여서만 처음으로 분리되어 세상에 떨어지는 현상이다. 그후에도 어머니의 젖과 체취로 근심 걱정 모르고 유년기를 보낸 곳이 고향이다. 뒷산의 진달래나 할미꽃 냇가의 송사리 작은 돌멩이 하나까지 내 고향 것은 모두 그리움의 앨범에서 예쁘게 웃고 있다.
나순옥 시인의 작품에는 특별히 고향 곧 어머니를 그리고 그에 대한 사랑과 애틋함을 노래한 것이 많다.

  타향살이가 고추보다 맵고 非情하여 고향이란 말만 들어도 눈물이 맺히고 잉걸불로 타오르던 그리움 사무치면 모든 것 손놓고 금새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지. 그러나 鄕愁에도 이력이 날만큼 귀밑머리 희끝하게 바래고 감정도 다스릴 줄 아는 성숙한 나이에 찾은 고향은 너무 변하여 고향에서 오히려 타향사람이 되어 서먹해지는 나를 발견한다.

정말 고향은 있는 것 일가? 현대인은 진정한 고향을 잃고 있다. 그러기에 미워 할 것조차 남지 않은 고향을 차라리 잊고 싶다. 잃을수록 집착 욕이 생기 듯 점점 잃어 가는 고향에 대한 귀소본능의 발동은 외국도 마찬가지 추수감사절이나 성탄절에는 항공편과 차량이 그리고 우편물이 평소의 몇 배로 늘어 법석을 떨 때 해외의 외로운 실향민은 먼 고향하늘 바라고 눈물만 삼킨다.
아마도 고향은 가슴속에 묻어 둔 눈물의 보석이다.  우리가 돌아 갈 진정한 고향을 찾아야 한다.

                 봄비                          
           1
          은침 하나 하나
          맥을 짚어 꽂는다
          찬란한 태몽 앞에
          밀려나가는 냉증
          대지는 몸을 뒤틀며
          입덧이 한창이다.
          2
           호기심이 발동한
          개구쟁이 눈빛이다
          손톱 밑 까매지도록
          땅거죽 헤집어
          새싹들 간지럼 태며
          키득키득 웃고 있다.

시조의 특성은 정형의 율격을 포함하여 역사성을 밑그림하여 세우고 민족의 고유한 정서를 丹靑으로 채색해 온 문학이다.
나순옥 시인은 피카소보다는 세잔느나 르느아르의 화풍을 좋아할 것 같다. 현대화 중에도 추상화보다는 한국화를 좋아하는 시인일 듯 하다. 왜냐하면 그는 봄의 정기를 주사바늘로 꽂지도 않았고, 청진기를 대어 진단하는 대신 「은침 하나 하나를 꽂아 맥을 짚는다」라는 표현은 매우 한국적이고 은밀하다.  태몽이나 입덧이란 말들을 씨와 날로 봄비를 織造하여 냈기 때문이다.

봄비를 은침이라 한다면 봄 햇살은 금침이라 할 가. 가늘게 내리는 봄비를 바라보고 이제 막 생동하는 대지에 봄빛을 부화시키는 봄비를 은침에 비유할 만큼 시인의 눈은 맑고 깨끗하게 잔잔한 喜悅의 물결을 일렁이고 있기에 이 작품을 읽는 사람은 그가 따뜻한 모성의 소유자임을 금시 알아챈다.

손톱 밑이 까매지도록 땅뺏기 땅집기 놀이를 하였고 심한 개구쟁이들 두더지 집을 파헤치며 놀았던 유년기를 갖지 못한 사람은 시인이 되어도 그들의 시에서는 메마른 감성의 서운함을 느낄 뿐이다. 봄비가 새싹들 위에 내리는 소리를, 새싹들이 비를 맞아 움칠거리는 모습을 마치 간지럼 태워 키득키득 웃고 있단다.
동화적인 뉴앙스를 풍기는 색다른 맛이 있다.

최근에 와서 몇 분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한국의 어린 학생들이 동시조를 배우고 쓰는 동시조 보급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시조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매우 다행스런 일이다.

어린이와 같이 순수한 마음이 없는 사람, 사물을 따뜻이 바라보는 마음의 눈을 갖지 못한 사람에게서 좋은 글이 생산되기 어렵다는 사실은 어른들도 특히 시인은 때로 동화책도 읽고 어린이 프로그램을 즐기며 흐려진 옛날의 천진무구한 동심을 환기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화초를 키우고 수목을 접근하며 애완동물을 가까이 두고 지내는 일 또한 詩魂을 부르는 하나의 방법이라면 과대표현이 될지 몰라도 龜裂 진 마음의 도랑에 맑은 물꼬를 트는 일임엔 틀림없다.

                
         사랑으로 1

          만성결핵 앓는 하천
          미움만 부글대도
          패랭이 꽃대 만한
          사랑 하나 안고 서면
          거품 속
          각혈 멈추어
          자리 털고 일어설까

소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가 자연의 일부라면 사람은 자연의 한 부분이며 자연을 떠나 살 수 없기 때문에 자연을 살리고 친화적이고 공생하여야 하거늘 산업의 근대화가 가져온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하여 마을 밖 작은 하천까지도 「만성결핵을 앓는」병든 몸으로 누워있다.
유년기 물장구를 치고 송사리 떼를 몰던 실개천은 동화속의 얘기처럼 되었고 현재 미움만 부글거리는 현상은 자연의 성난 모습이요 병든 하천의 원망일 수도 있다. 오히려 시인이 자신을 포함한 인간들에게 치미는 분노 일 것이다.

자연에 대한 환경친화적 감정을 아주 간결한 몇 줄의 시어들로 柔軟하게 표현하면서도 은유로 아픈 곳을 꼬집고 있다.  나순옥 시인은 단청의 채색뿐만 아니라 수채화의 솜씨도 있다.  

「사랑으로 1」을 세운 뜻은 2, 3, 4……이렇게 계속 사랑에 관하여 할 얘기가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인류역사가 끝나는 날에도 사랑 얘기는 끝이 날 것 같지 않다. 사랑이 없는 세상은 상상을 하고 싶지 않다.

사랑의 근본은 우리의 생명에 닿는다. 종교적인 의미를 강조하지 않아도 사랑은 가장 큰 선물이며 사랑은 본능적이다. 갓난아기는 엄마에 대한 사랑을 말로는 못해도 물고 있던 엄마의 젖꼭지를 한번 꼭 깨물어 사랑을 표현한다. 사랑의 원칙은 순수함이요 상호작용적인 사랑만이 건강한 사랑이다.

「패랭이 꽃대 만한/ 사랑 하나 안고 서면」「각혈 멈추어/ 자리 털고 일어설가」우리 같은 소시민이 무슨 힘이 있어 병든 자연을 치유하여 살려 낼 수 있단 말인가 하고 주저앉아 탄식만 하는 대신 패랭이 꽃만한 비록 작고 연약한 사랑의 힘으로 덤벼드는 것이다. 이러한 용기와 열정이 우리 시인들의 정신이어야 할 것이다.

굴착기를 정지시켜 천성산의 도마뱀을 즉 자연생태계를 보호하려던 스님의 100일 단식 투쟁이 고귀하면 할수록 사회와 문명에 대한 미래지향적 비평과 주장을 시민정서에 호소하는 강렬한 시정신도 매우 필요한 때이다.

나순옥 시인은 충남 서천 출생으로 고향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계속 충청도의 소도시에 살면서 고향의 정서를 바탕으로 좋은 시를 우려내고 있다. 중앙일보 지상시조백일장 연말장원과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문단에 나온 시인으로
「바람의 지문」과 다수의 공저시집이 있다. 좋은 작품을 계속 발표하며 문인활동도 활발한 이 시조시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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