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귀거래歸去來
2012.03.23 15:56
어느 귀거래歸去來
조옥동
하루 종일 바쁘게 거미줄을 치고 다녔다
하얗게 혓바늘 돋도록 뽑아내어도
내어 걸 마땅한 자리를 차지하기는
아슴한 서커스보다 어려운 세상
요행들이 걸릴 만한 곳은
누군가 이미 쳐놓은 거미줄에 내가 걸릴 것 같고
가까스로 차지한 그럴듯한 길목에선
심술궂게 흔들고 지나는 바람과
날아드는 벌레들 그물을 뚫고 빠져나가
구멍난 의지의 실타래를 햇빛은 비켜 가
상처 입은 거미줄엔 눈물이 맺혀 있다
후미진 구석 골목에 엎드려
몸 속에 숨겼던 얼굴을 내밀고 내가 나를 본다
이리 길게 자란 팔다리는 어디에 쓸모 있을까
집 문설주 위에 결국
아픔의 회로 한 바퀴 더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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