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칸소 가든에서
                                               조옥동

사막의 동백이 피를 토하고 맨 땅에 누워 버린 골짜기
철없던 용기와 화려했던 모습은 흐트러져 핏물이 흥건타
춥고 어둔 밤을 새우며 사랑에 굶주린 시절 지나
한동안 뜨겁게 달궈진 동백의 하늘은 서서히
냉정한 빛깔로 정염의 온도를 내리고

숨차게 언덕을 오르니
데스칸소 가든의 장미들
빼앗긴 봄을 내 놓으라고
가시 돋친 가슴을 열고 발을 구르는데
햇살은 여름에게 새파란 모자를 씌운다

오고 가는 사람 많은데 누굴 기다리나
빈 의자 하나
눈부신 풀꽃들 도란도란 말소리 낮추는
따스한 적막을 두르고 앉아
바람이 스쳐도 확 불지를 듯 맑은 눈빛으로
이름을 부르면 나올 것만 같은 누굴 위해
홀로 앉지 못하고 비워 둔 자리인가

우리 속에서 빠져나간 발가벗은 외로움이
불안과 공허 갈망과 번민의 네 다리로 버티고 앉아
다가온 발걸음들 결국 떠나는 방향을 바라보기만 하는
저 풍경은 많은 곳을 찾아 헤매다 돌아 온
너와 나를 숨겨 놓은 그림이다

  
* 데스칸소 가든: LA 북동쪽에 있는 공원, 세계에서 제일 큰 동백꽃 단지로 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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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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