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축의금

2004.10.23 16:08

조만연.조옥동 조회 수:756 추천:44

                           결혼 축의금

                                                                    
   나는 피로연을 마칠 무렵에야 어째서 딸아이가 엘·에이를 마다하고 굳이 보스턴에서 결혼하려고 했는지 그 까닭을 알 수있었다.   처음에는 신랑이 그곳에 살고 있어서 그런가 한편으로 서운하기 까지 했지만 사위도 다른 주 출신으로 그의 일가친척 역시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그곳까지 왔다는 것이다.   딸은 평소부터 결혼식은 일생에 한번뿐인 뜻 깊은 행사이므로 하객은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구성되야 한다면서 결혼식비용은 부모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으니 하객은 자기가 직접 선정할 것이라고 말해오던 터였다.  결혼식의 주인공은 신랑과 신부인데 정작 참석해야 할 친구와 직장동료는 초청되지 않은 체 거의가 자기들과 일면식도 없는 부모의 친지나 교인들로 채워진 자리에서 예식을 올리기는 정말 싫다는 것이었다.  물론 부모 곁에서 결혼하면 손님도 많고 더 호사스럽게 치룰지 몰라도 그것은 축제가 아니라 부모가 동원한 관객들 앞에서 억지춘향으로 벌리는 연극이며 남에게 과시하기 위한 허례허식에 불과하다는 논조였다.   나는 한국과 미국의 문화적 차이점을 알아들을 만큼 설명해 주었지만 결국 딸의 의견에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그 바람에 그동안 부지런히 쫒아다니며 투자한 축의금은 회수할 길이 대폭 줄었지만---.

   십여년 전, 한국의 전직 대통령 딸이 미국법정에 선 일이 있었다.   내용인즉 미국에서는 1만불 이상의 현금을 은행에 넣을 경우 세무당국에 보고토록 규정되어 있
는데 그녀가 이를 피하기 위하여 18만불을 몇달에 걸쳐 조금씩 나눠 예금한 행위는 고의로 관련법을 속이려 한 죄목에 해당된다는 것이었다.  재판과정에서 들어 났지만 그 돈은 결혼축의금으로 받은 것인데 그녀의 남편은 소위 재벌가의 후계자로 유학중 결혼하고 신부와 함께 다시 미국으로 왔다가 지참했던 돈을 은행에 넣는 과정에서 물의를 빚은 것이다.  재벌가의 아들과 권력자의 딸이 결혼하는데 그 정도의 축의금은 한국에서는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하객들이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에서 그 많은 돈을 냈을까 하는 점이다.   원래 한국의 경조비는 상부상조하려는 따뜻한 마음에서 비롯된 미풍양속의 하나였는데 이제는 당초의 취지에서 벗어나 출석을 알리는 도장찍기와 주고받기식 장사수단으로 변질되었다.  가장 순수하고 축복 받아야 할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에서 까지 축하따위는 뒷전이고 장바닥 처럼 너나없이 많은 사람들을 끌어놓고 보자는 풍조는 물질만능시대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지금은 어느 정도 먹고 살만큼 되었는데도 말이다.

   딸이 신랑과 함께 청첩장을 보낸 사람들은 부부 합해서 120명이었다.  여기에다


신랑측 30여명, 우리(신부)측 17명을 보태서 모두 160여명으로 예식장소와 피로연을 준비하였다고 했다.   그런데 결혼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딱 한 사람 빠진 119명이었다.  그 사람은 신랑의 친구부인으로 베이비시터를 구하지 못해 부득이 친구 혼자서 참석했다는 것이었다.  하객의 절반 이상이 보스턴이 아닌 다른 도시에서 차를 운전하거나 뻐스나 기차 심지어는 비행기로 당일 또는 하루 전 날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혼자가 아니라 배우자를 동반한 사람이 많았고 어릴 적 친구나 절친한 친구는 온 가족뿐만 아니라 그 부모도 함께 왔다.  우리가 묶었던 호텔손님 중에는 그들이 꽤나 차지하고 있었다.   나를 더욱 감탄시킨 것은 예식후에 가진 피로연이었다.   피로연은 오후 6시 쯤 시작되서 밤 11시 가까이 끝났는데 친구와 직장동료는 물론이고 딸의 회사사장 부부와 주례목사 부부등 누구 한 사람 중도에 가지 않고 끝나는 시간까지 자리를 지켰다.   축의금 명단에 이름을 올리거나 후닥닥 밥만 먹고 적당히 체면을 세운 후 자리를 뜨는 요즈음의 우리네 결혼식에서는 좀 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그들의 표정과 태도에는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고 즐거워 하는 모습이 역력하였다.   딸이 원했던 결혼식이 바로 그런 주객의 일체감이 아니었을까.    

   지난 주말 고교동창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성욱이 딸 청첩장 받았지?  한국으로 시집 간다는데 축의금을 어떻게 할 생각이니?”하는 것이었다.  성욱은 이곳에 살고있는 몇 명 않되는 고교동창으로 이번에 그 딸이 한국으로 시집을 가게되었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하긴 뭘 어떻게 해. 결혼축의금이 무슨 참가비나 식사값인줄 아니?  결혼을 축하한다면 마땅이 보내야지.” 전화한 동창은 그제서야 수긍이 가는지 아무 대꾸가 없었지만 나는 매우 씁쓸하였다.  축의금이 이름 그대로 축하가 목적이라면 어디서 결혼하든 무슨 상관이며 참석하든 못하든 가릴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가까운 사이에서 조차 얼마되지 않는 축의금을 가지고 보낼까, 말까 구실을 재어보는 세상인심이 참으로 야속하게 여겨졌다.  문득 마구잡이로 남발하는 청첩장과 저울질하는 청첩장 가운데 나의 진심이 담긴 축의금은 과연 얼마나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원:
0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0
어제:
0
전체:
97,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