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31일 '이 아침에'/미주중앙일보

눈물을 씻어주고 떠나거라
                                           조옥동/시인

차가운 공기 속에 어스름이 밀려오는 섣달그믐, 한해의 마지막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꼭 할일을 남겨두고 떠나는 아쉬움과 미련이 나를 붙잡고 놔주지 않는다.

한해의 끝자락에 휘감겨 있다. 이 절대 고독 속에 갇히어, 삼키려 해도 흐르는 눈물이 있다. 가슴 밑에서 치밀어 오는 울음이 있다. 아무도 2012년, 이 해를 눈물 없이는 보낼 수 없으리라.

얼마 전 코네티컷의 뉴타운에서 천사 같은 어린 학생 20명이 광란의 총알로 한순간에 생명을 잃었다. 지구 곳곳에서는 정의와 평화를 내세워 무고한 희생이 계속되고 있다. 수많은 삶터를 무참히 짓밟은 허리케인의 자연 재해로 우리는 하늘의 진노를 겪었다. 가장 풍요하다는 미국 땅에 굶주리고 소외당한 백성이 곳곳에 늘고 있다. 직장을 잃은 젊은이들은 꿈조차 버리고, 정치판은 국가 경제의 벼랑에서도 당리당략을 볼모로 서로 양보를 안 해 민생을 어지럽게 만들고 있다. 스피드와 새로운 지식만을 탐하는 이 시대는 앞선 자만이 승리자요 뒤를 쫓는 사람은 모두 패배자로 실망과 좌절감만 안겨준다.
  
“법령이 늘수록 도둑이 많아진다.”는 노자의 말이요, “덕으로 이끌고 예로 바로잡으면 부끄러움을 알고 바르게 살아간다.”는 공자의 말이다. 도둑과 적을 퇴치하려 총을 많이 만들수록 안전하기는커녕 범법자가 늘고 있다. 법령이나 무기는 제한적이고 물리적인 도구는 될지언정 백성의 마음을 온유하고 선하게 다스리지 못한다. 법규가 많을수록 이 법망을 빠져나가려는 방법 또한 교묘하게 발달하고 있다.
  첨단과학과 생명공학의 특혜를 누리는 현대임에도 병마와 재해의 고통은 여전하고 삶터는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 365일, 수천시간을 사는 동안 부딪친 위험과 질병과 난관을 헤치고 살아남아 호흡을 하고 있음은 기적이며 은혜다. 내 홀로 아무리 열심을 다 했어도 가족과 이웃과 국가의 도움, 나아가 하나님의 돌보심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나만의 안녕과 자존심을 지키고, 내 소유를 잃지 않으려 애썼다. 손해를 보는 일에는 알면서 모른 척, 형제와 이웃에게 너무 인색했던 모습이 거울처럼 비춘다. 부끄러운 일이다.

눈물은 단순한 생리적 액체가 아니다. 인간의 정서가 작용하는 통한의 강물이며 감사의 폭포수이며 고통의 골짜기를 지나는 격랑이며 기원을 올리는 정화수며 옷깃을 적시며 차분히 내리는 기쁨의 이슬비다. 울음은 이같이 감정의 순화 또는 승화작용을 일으킨다. 한참을 울다보니 마음속에 잔잔한 평온이 깃든다. 누가 찾아 와 따뜻이 다독여 준 듯 잔잔하다.

  뜨거운 눈물을 흘려 본 사람만이 진정 남을 이해할 수 있다. 병든 자, 소외된 자, 굶주린 자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자는 정작 흘릴 기력도 눈물도 소진하여 말라있다. 대신 울어줄 사람, 아니 같이 울어줄 사람, 얘기를 들어 줄 위로자가 필요하다. 깨끗한 눈물은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다.
2012년이여,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고 떠나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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