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보아 호숫가의 철새들
        
                                                 조옥동

발보아 공원의 밤은 짧고 아침은 이르다. 새벽 산책을 하러 집에서 차로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이 공원에 이르면 벌써 숲길엔 인적이 있고 수런거림이 심상치 않다. 낮은 잡목사이로 크고 작은 각종 오리며 거위들이 뒤뚱거리며 수십, 수백 마리 씩 떼를 지어 호수로 다가온다. 미명 속에 사방에서 물을 향하여 매우 진지하고 질서 있게 하루의 삶터로 몰려오는 그들의 행군을 만나면 열심히 걷다가도 그들의 세상에 침입한 방해꾼이나 된 듯 얼른 비켜 서 길을 내준다. 오리과의 물새들인 집오리, 물오리, 비오리, 황오리 그리고 두루미, 황새, 백조라는 고니와 도요새는 물론 V자를 그리며 하늘을 나는 기러기도 장관이다. 고국을 떠나 온지 30년만에 처음 황새를 이곳에서 발견한 후론 고향의 시골 논둑길을 걷고 싶은 아련한 그리움이 여울져 오는 정다운 곳이다

80에이커나 되는 공원에 30에이커에 가까운 면적을 호수가 자리하고 있어 도시 근처의 어느 곳보다 찾아오는 이들이 많다. 물이 귀한 캘리포니아에서 이만한 물을 담은 호수가 도심 속에 있음은 사람이나 다른 동물에게 매우 행운이다. 원래는 물이 고인 늪지를 개간하여 만든 인공호수인데 해가 갈수록 계절에 따라 날아오는 철새 도래지가 되어 이젠 새들의 서식지로 이름이 나 있다. 공원 입구 안내판엔 출입시간을 해 돋는 시간부터 해지는 시간까지로 정해 놓고 있지만 사람들의 출입은 제한할 수 있어도 공중을 날아드는 새들의 출입은 어떻게 막을 수가 없다.
옆을 스쳐 지나는 사람들의 윤곽이 겨우 보이기 시작하고 저만치 조류들의 오물을 씻어내는 공원 관리인들의 바쁜 움직임이 눈에 들어오는 시간 호수의 수면은 물새들로 어긋난 퍼즐조각처럼 부서지며 침묵에서 깨어난다.

호수주변을 따라 서있는 벚나무, 소나무, 잣나무, 플라타너스, 백양나무 단풍나무들이 자신의 계절을 대표하듯 꽃과 잎이 피고 단풍이 들어 땅위에 눕고 지면서 틀림없이 자연의 시계를 돌리고 있다.
나는 남가주의 이른 봄에 해당하는 이월의 새벽 산책길을 좋아한다. 안개에 감싸 인 호수엔 부지런한 물새들이 연잎처럼 떠 있고 호반엔 나목들이 즐비하여 겨울을 무저항의 저항으로 감내하며 하늘 끝을 향해 올리는 그들의 기도를 듣기라도 하려는 마음으로 하얀 입김을 앞세운다. 어떤 시인은 시를 감상하기 전에 기도를 한다고 하였던가. 이들은 어떤 시를 감상하려 허공을 우러러 그리도 경건한 자세일까?

1마일 반이 되는 호숫가를 한 바퀴 도는 동안 많은 만남을 이룬다. 어느 시간에 공원을 산책하는 가에 따라 만남의 색깔과 종류도 다르다. 계절에 따라 다른 철새가 도래하듯 하루의 시간대에 따라서도 발보아 호숫가의 정경은 다르다. 아주 이른 새벽엔 빠른 걸음의 젊은이들이 주를 이루고 다음 시간대엔 깨끗한 노인들이 아침 일찍부터 여유 있는 걸음으로 산책을 하며 먹이를 들고 와 물새 떼를 부르는 노부부들의 모습은 옆을 지나는 사람까지도 즐겁게 한다. 노을이 불그스레 서쪽하늘을 물들일 무렵 하루 종일 물속에서 지낸 물새들이 뭍으로 올라 올 쯤엔 왠지 혼자인 산책객들을 많이 마주친다. 기온이 낮은 철엔 백색 인종들이 주를 이루고 더운 여름철엔 피부색의 전시장을 보는 것 같이 각 인종 각 나라 사람들로 법석을 이루어 과연 미국, 특히 L. A는 이민으로 이루어진 도시요 나라임을 실감한다.

호수를 안고 있는 발보아 공원이 마치 텃새와 철새들의 안식처가 되듯 이 곳, 이 나라는 본래 주민과 이민자들의 안식처이다. 철새의 의미는 장기간이 아닌 잠시 머물다 떠난다는 뜻을 내포하고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찾아 가 번식을 한다.  이민자의 삶이 이런 뜻에서 철새와 다름이 없다. 고향을 떠나 왔어도 늘 떠나온 땅을 바라보고 살고 있다. 이민자뿐만 아니라 사람은 철새근성이 있다. 지상에서 잠시 머물다 떠나는 인생은 지상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반복될 영혼의 철새가 아닌가 싶다. 특히 현대는 급속한 문명의 발달에 적응하다보면 이동의 수단이 빨라지고 범위가 확대되어 서로 혼합과 화합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현대인은 여러 가지 연유로 자의든 타의든 한번쯤 주거지를 이동하지 않을 수 없다.

동물행동학은 사람도 포함하여 동물의 행동을 연구하는 생물학의 한 분야로 생물의 본능 습성 및 일반적 행동과 외부환경과의 관계를 연구하는 과학이다. <행동은 본능이냐 학습이냐>라는 논쟁으로 시작한 고전적 방법(Ethology)에서 현대는 동물들의 한 개체의 행동, 복수의 사회행동 다른 동물과 사이의 행동 등을 연구하는 방법들이 발달하고 최근엔 사회생물학과 행동생태학을 결부시켜 신경행동학이란 새로운 학문으로 주목받고 있다. 결국은 각 동물행동의 실험에서 인간의 행동과 유사점을 찾아보면 볼수록 닮은 것이 많다. 이러한 전문적 관찰을 차치하고라도 물속에서나 잔디밭에서 정답게 데이트를 즐기는 철새들의 모습에서 서로 주둥이를 부비며 애무하는 그들의 행복한 한 때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잠깐 머무는 이 발보아 공원은 사람과 물새가 동물이라는 단어 속에 동화되어 버린다.

언젠가 다시 떠나 갈 철새와 철새들 사람과 사람들 그리고 철새와 사람들이 발보아 호숫가의 상쾌하고 깨끗한 같은 공기를 호흡하며 또 하나의 자연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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