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8-2012 '이 아침에'

데스밸리는 살아있다

                                           조옥동/시인

데스밸리를 다녀왔다. 황량한 골짜기, 차창밖엔 나무하나 제대로 자라지 않는 칙칙한 바위산이 도로를 따라 함께 달리고 있었다.

매 마른 땅 데스밸리에도 비가 내리는 봄철엔 사막이란 말이 거짓 같이 각종 꽃들이 피어나는데 올 3월 하순엔 전혀 기미를 찾지 못했다.

사막의 한 지점에 이르면 바위산 절벽에 하얗게 해수면(SEA LEVEL)이란 글씨가 보인다. 어느새 우리는 바다 밑 86미터 지점에 서 있었다. 데스밸리의 관광명소 중 하나인 배드워터이다. 끝없이 펼쳐진 소금밭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 개미처럼 작아 보인다.

이 소금밭 둘레에서도 광활한 모하비사막을 덮고 있는 ‘크레오소태 부시(Creosote Bush)’를 만났다. 여름철엔 섭씨 50도가 넘는 살인적인 더위로 1800년대 이 곳 지름길을 따라 서부로 이주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단다.

죽음의 계곡이란 별명을 얻은 모래땅에 수백 종의 식물이 자라고 이곳에만 사는 20여종의 희귀식물도 있으나 이 크레오소태 부시는 미남서부의 사막식물 중에서도 대표적 식물이다.

얼마 전 사막의 시인, 황 갑주 선생은 미국의 사막은 중동이나 사하라사막과 달라 살아있는 사막으로 유구한 생명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인생에 엄청난 변화를 맞았다고 회고했다.

사막은 고통이요 경탄스런 생명이요 아름다움의 절정임을 발견하고 사막에 미치다시피 미주의 사막이란 사막을 찾아다녔단다. 그는 원주민 인디오문화에 빠져 인디오문화의 대가가 되었고 한국에 여러 차례 인디오문화를 소개 한 분이다.

사막을 알고 나서 고독을 행복으로 여긴다며 은퇴 후 오직 창작만을 하며 외롭게 살고 있는 시인은 생명 중의 생명, 사막을 덮고 있는 크레오소태 부시를 주제로 한 생명의 시 한편을 아직도 완성치 못했다고 자신을 인생 크레오소태라 했다.

미국의 남서부와 뉴멕시코 사막을 낮게 덮고 있는 이 관목은 싸리나무 비슷한 수풀로 언 듯 굴러다니는 덤불 같으나 1만1700년 전부터 사막에 생존한 최장수식물이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자라 마치 줄을 세워 심은 듯 보이나 생태적 환경에 맞게 자라면서 자연이 만들어낸 질서를 보여준다. 물기가 잘 빠지는 알칼리성 사막 땅을 좋아하고 왁스를 바른 듯 매끄러운 잎은 표면적이 넓고 두터워 높은 열을 쉽게 방출하며 물기를 잘 간수하게 되어있다.

마침 바람이 심한 날씨로 높이 나르는 사막의 모래바람을 만나 일행은 코와 입을 가리고 Sand Dunes에 오르는데 필자는 하얀 뼈 조각들 같이 흩어진 크레오소태 부시의 삭정이를 만지려 했다.

비록 죽은 가지지만 모래바람에 씻겨 가시같이 날카로워진 사막의 성깔은 남아 침입자 이방인에게 사막은 살아있다고 일침을 준다. 손끝의 아픔은 잠깐, 푸른 줄기에는 독특한 냄새를 풍기는 샛노란 꽃들이 환하게 깜작 놀란 나를 바라보고 웃고 있었다.

30년 이상 이 작은 관목을 사색하며 인간의 생명과 역사에 조명하여 대 서사시를 준비하는 사막의 시인, 크레오소태 부시 가족이 되자는 그의 제안을 받아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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