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2012  '이 아침에'/미주중앙일보


   가정의 달에 찾은 데스칸소 가든
                                           조옥동/시인
오랫만에 데스칸소 가든을 찾아갔다. 화창한 날씨에 무성한 수목과 각색 꽃들이 밝은 얼굴로 우리들을 맞고 있었다.

꽃을 따라 가노라니 꽃이 길을 열었다. 올 봄엔 랭커스터까지 가지 않고 이곳에서 파피꽃을 만날 수 있었다. 가파르지 않게 쉬엄쉬엄 오르는 등산로 양쪽에는 후기 인상파 화가 반 고흐가 좋아한 붓꽃을 비롯한 이름 모를 꽃들이 화사하게 아름다움을 뽐내며 카메라 앵글을 유혹하고 있었다.

세계에서 제일 큰 동백꽃 단지는 이 가든의 자랑이다. 절정의 시기를 지나긴 했으나 내리쬐는 햇살아래 빨강 자주 분홍 백색 등 동백꽃이 아직 나무 가지에 매달려 소담스럽게 웃고 있었다.

동백 나무아래 떨어져 누운 수 천 수만 송이의 낙화를 내려다보며 꽃은 피는 때가 있으면 지는 때가 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진실로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었다. 슬픈 고요가 그늘을 깊이 적시고 있었다.

숲을 지날 때는 사방으로 뻗친 가지들이 불평도 없이 그물처럼 푸른 하늘을 높이 받치고 서 있는 나무들이 부러웠다. 많은 나무들이 수십 성상을 자라며 굵고 가는 가지들을 사방으로 뻗는 동안 공동의 공간을 양보하며 함께 다스리고 있었다. 자신의 몸을 구부러뜨리고 휘어져서라도 상대편을 배려함을 말없는 나무에게서 배운다.  
  
빈 의자 하나가 장미꽃 화원에 놓여 있었다. ‘누구를 기다리나//봄은 일찍 찾아 와 꽃 마당을 펼쳐놓고/도란도란 말소리도 아끼는 눈부신 햇살/ 사방엔 따스한 적막을 두르고/ 하늘빛 말갛게 네 푸른 눈빛 바라보면/ 바람만 스쳐도 확 가슴팍 불 지르고/붉게 타 오를 장미꽃 사랑// 부르면 나올 것만 같은 널 위해/홀로 앉지 못하고 비워둔 자리/ 투명한 그리움만/ 고요히 쌓이고 있다.’

기도하는 듯 홀로 외롭게 핀 꽃을 만났다. ‘하늘을 향해/오롯이 열린 마음/여린 몸
외롭게 흔들려도/소망을 품은 깨끗한 얼굴/수줍은 미소는/ 은혜의 강을 건너는 꿈/ 나의 기도‘

유년시절 산골마을에서 산과 나무와 강을 만남은 은혜였다. 그들의 집합 속에서 태어나는 것을 흡수하며 철없이 받아먹고 자란 나는 초로의 나이가 되어서도 내 속에 깊게 흐르는 자연과의 화해, 이 따뜻한 만남이 내 인생에 주어진 귀한 축복임을 깨닫는다.

오리엔탈 가든에는 아름다운 연못에서 자유롭게 놀고 있는 팔뚝만한 잉어들, 높지 않은 폭포에서 떨어지는 몰 소리도 맑고, 아기자기하게 심어 놓은 단풍과 석축으로 둘려 쌓인 아담한 정자에 친구 몇이 둘러앉아 동양적 운치를 완상하는 시간도 즐겁다.

트램열차를 타고 편안히 앉아 꽃구경을 즐기며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가족나들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 아, 오월은 가정의 달이 아닌가.

젊어서 추억을 많이 가지라고 한다. 늙어 가면 그것이 재산이 된다고 한다. 어려서 부터 배우고 얻은 아름다운 기억은 가장 오래 기억되는 것 같다. 사느라고 정신없이 헤쳐 왔다는 우리의 수고가 자식들에겐 얼마나 귀한 추억을 만들어 주었는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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