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옥동의 時調散策 (5)

김동찬 詩人의 作品 鑑賞                    
                                                 조옥동
        
         나-무                              

소나무, 단풍나무, 참나무, 오동나무……
촉촉하게, 푸르게 살아 있는 동안은
나-무라 불리우지 않는다.
무슨 무슨 나무일뿐이다.

초록색 파란 것, 말랑말랑 촉촉한 것
꿈꾸고 꽃피고 무성하던 젊은 날
다 떠나 보내고 나서
나-무가 되는 나무

나무는 죽어서 비로소 나-무가 된다.
집이 되고, 책상이 되고, 목발이 되는 나-무.
둥기둥 거문고 맑은 노래가 되는 나-무.

       우리시대 현대시조 100인선 김동찬의 “신문 읽어주는 예수” 중에서


나무가 나-무가 되는 계절이 온다.

봄에는 신록이 되고 여름엔 綠陰이 되었다 가을엔 단풍이 되고 겨울은 裸身이 되는 나무들.
목이 타 온몸을 사르듯 만산에 불을 지피고, 수도자의 자세로 화려한 옷을 미련 없이 벗고  눈보라 혹한의 계절을 묵묵히 걸어도 그 속에 불 씨 만한 생명이 있기에 아직은 나무일 뿐 나-무가 되지 못한다 한다.  밑 둥이 잘려 나간 나무토막들, 못생기고 구부러졌을 망정 잘 말라 비록 하찮은 땔감이 되었을 때 비로써 나-무가 된다고 시인은 정리한다.
나무에도 必死卽生 必生卽死의 진리가 통한단 말인가?

믿고 굳게 나를 세워 주었던 뿌리까지 떠나야만 하는 일은 그 결단이 타의든 자의든 쉬운 일은 아니다. 지나온 계절은 오직 풀이되고 나무가 되기 위해 있었다. 꿈을 꾸는 일, 꽃 피우고 바람을 재우고, 가지 끝까지 안 간 힘을 다 해 물을 길어 올린 젊은 날의 작업은 진정 나-무가 되기 위한 성숙의 과정이었다.
  
그 생리적인 생명을 지녔던 나무가 새로운 목적을 지닌 물리적인 존재로 다시 태어날 때 나-무가 된다는 사실, 나무는 나-무가 되는 날 존재의 가치가 나타난다고.

소나무, 참나무, 오동나무, 단풍나무…… 이들은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기에 친근감마저 드는 우리 이웃이다. 세상엔 얼마나 많은 종류들의 나무가 있는가. 수천 수 십 만 종류가 들에도 산에도 비탈에도 심지어 사막에도 주어진 자리를 지키며 훗날 하나의 진정한 나-무가 되기 위해 오늘의 숙명을 견뎌내고 있다.

이름 한 번 불려지지 못한 채 밀림 속에 파묻혀 하늘만 쳐다보고 사는 나무, 무슨 무슨 나무들……
북가주의 세쿼야 국립공원에 가면 연륜이 2000년을 넘는 래드우드 소나무들이 키가 300피트가 넘게 커서 하늘을 찌를 듯한 偉容으로 장관을 이룬다. 허기야 몇몇은 밑 둥에 커다란 공동(空洞)이 생겨 어느 땐가 쓰러져 누운 것들도 있다. 기이하여 거대한 등걸 속을 통로 삼아 관광객들은 걸어 나가 보기도 한다.

수천 년의 세월도 허망한 시체로 변해 땅을 베고 침묵할 수밖에 없다는 확실한 증거 앞에 사람들은 숙연해 질뿐이다.    
나는 무슨 무슨 나무들 중에 무슨 나무일가. 나에게도 이름 하나 주워지는 날 있을 까?

나무가 베이고 자신의 진이 죽어 무(無)가 되어야만 집이, 책상이, 기둥이, 목발이, 거문고가 그리고 수많은 형태로 다시 놓여지는 날 더욱 유용하고 가치 있는 이름으로 태어난다고.

꿈꾸고 꽃피고 무성하던 젊은 날/ 다 떠나 보내고 나서/ 나-무가 되는 삶은 얼마나 슬픈 것인가. 아니면 축복을 위한 가혹한 훈련인가.
어떤 나무로 어떤 환경에 심겨지는 일은 우리의 선택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 하나의 나-무로 만들고 싶은 그 분의 몫이다. 나무를 쪼개었을 때 얼마나 고운 결의 나-무로 살아 왔는가에 따라 그 분은 사용하실 것이다. 아름다운 木理紋을 만드는 날 그 날에.

젊은 나이에도 깊은 성찰의 경지에 다다른 시인이 나-無가 되기로 정진하는 날 어떤 훌륭한 모습이 되어 있을지 기대해 본다.

         호박

나무의 진이 굳어
호박이 되었다

나무의 뼈
나무의 사리
나무의 사랑
나무의 시

겉에선 알 수조차 없는
단단한 눈물
                                 “호박” 전문

눈물은 맺힌 것 풀어 흘려 보내기만 하는 줄 알았더니 눈물은 단단하게 맺기도 하여 보석을 만들기도 한다고.

호박(琥珀)은 지질학자나 고생대 동물학자 또는 考古學者들에게 매우 흥미 있는 化石의 寶庫이다. 지질시대 나무의 진(津)인 수지(樹脂)가 땅속에 묻혀 그 유기물질이 수소 산소 탄소 등과 화학작용을 일으켜 중합(重合) 즉 polymerization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단단하게 굳어진 광물이다.
이 광물 속엔 옛 고생대에 서식하던 씨앗, 나무의 이파리, 깃털, 곤충 같은 것이 함께 굳어 3천만년 내지 9천만년의 장구한 세월을 두고 응고한 것이기에 지구역사의 자료가 될 뿐 아니라 투명하거나 반 투명체로 보석으로도 인정받아 예로부터 장식으로 많이 애용해 왔다.

많은 시인이나 작가, 예술가들은 호박(琥珀)이 지닌 미와 진기한 광채에서 빛나는 영감을 얻기를 갈망하여 시선을 놓지 않으려 한다.

나무에도 뼈가 있고, 사리가 있고, 사랑이 있고, 눈물이 있다고. 나무의 사랑을 느끼고 뼈를 보며 사리까지 볼 수 있는 시인은 썩 많지는 않을 것이다. 나무가 쓰는 시의 몸짓을 읽는 자가 시인이라면 이 시인은 이미 나무가 쓴 눈물의 시, 겉에선 알 수조차 없는 비밀을 읽었고 수 천년 역사의 結晶을 손으로 만져도 보았음이 짐작된다.

어찌 나무만 시를 쓰겠는가. 꽃도 풀도 점잖은 바위도 구름도 바람도 시냇물과 바다도 산도 새도 존재의 모두가 시를 쓰고 있는데, 하늘의 별까지 모든 것들이 쓰고 있는 시를 읽어 줄 따뜻한 가슴, 그들의 진한 눈물을 바라보는 마음의 눈 가진 자 시인들이여 이제 潔淨한 透視眼의 도수를 높여야겠다.

        데스밸리(Death Valley)

한 번도 다녀온 적 없는 죽음의 계곡으로 내려간다

I Can't Stop Loving You 꿈에서까지 멈추지 않는 사랑
노래를 들으며 해저 백 미터, 하얗게 뒤덮인 소금 바다,
백만 년을 남아 무엇을 짜게 하겠다고 소금이 되었을까
올라간 적만 있었던 나는 내려간다 바다를 말려 소금이
되게 한 햇살은 내 몸의 수분을 조금씩 뺏어 간다 내가
가지려 했던 것들, 무언가가 되려 했던 마음도 마르고
사랑도 마른다 입술에 맴도는 사랑을 멈출 수 없어
노래도 하얗게 소금이 되어 날린다 모래알처럼 까실하다

  살아서 죽는 꿈을 꾸었다
  바다의 뼈가 먼지 되어 나는 꿈
                                *“데스밸리(Death Valley)" 전문

*캘리포니아주 동쪽경계와 네바다주의 서쪽경계가 만나는 곳에 위치한 사막 국립공원
  
죽음의 색깔이 삶의 색깔보다 진한 곳, 칠월의 평균온도 화씨 116도 정월의 평균온도는 화씨 29도, 계곡의 온도차가 화씨 100도를 넘나드는 이 사막 땅은 미주에서 가장 덥고 바다보다 낮은 곳. 모처럼 시인은 죽음의 계곡으로 내려간다.

약 2000년 전 계곡을 덮고 있던 바다 물이 마르고 말라 웬만한 사람의 키만큼 커다란 소금덩이로 깔린 소금 바다, 해면보다 낮은 소금 땅을 밟노라면 뜨거운 사막의 햇살은 몸 속의 수분까지도 증발시켜 한 개의 소금덩이를 만들려는지, 소금덩이로 쪼려지는 동안 욕망과 꿈 사랑 모든 것이 말라 소멸할 것 같았다.

그러나 사랑의 말까지도 쓰디쓴 소금알맹이로 입술에 달라붙어 모래알처럼 씹히는 괴로움, 오히려 가진 것 모두가 소금에 저려 더욱 짜게 씹혀 지게 만들었나 보다.

우리의 안과 밖의 가진 것들은 영원히 분리될 수 없단 말인가. 시인은 이들이 살아서 죽는 꿈을 꾸었다. 소금까지도 한 낱 먼지가 되는 꿈을.  

역설적으로 데스밸리는 내가 죽어서 살아 나오는 곳, 죽음의 흔적과 한 번씩 포옹하고 나오면 낮아져 높아지는 것을 체험하는 곳인 듯 하다.

김동찬 시인의 작품 속에는 뿌리까지 뽑아내고 다듬고 데쳐지고/꼭 짜서 갖은 양념 버무려 상에 올려도/아직은 초록초록한(“나물”의 일부) 열정과 성취욕이 살아 있는 한편, 마음 속 고운 빛깔 잔잔한 물결까지/혼자서 빈방에 앉아 눈을 뜨는 거울 속(“눈뜨는 방”의 일부)같이 관조 속에 자기를 눕히고 현재와 미래 죽음 뒤의 세계까지 경계를 넘나들며 지난 과거까지도 되돌려 삶의 의미를 귀납하려는 진정성이 맹렬하다.

이미 산문집 「LA에서 온 편지 심심한 당신에게」를 출간한 수필가이며, 「열린 시조」신인상을 받은 것을 계기로 현재 계간 「열린 시학」편집인이며, Semore, Inc.의 대표로 사업에도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미주 문인협회 회장직을 역임했고 현재 고원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을 맞고 있는 김동찬 시인의 문학활동은 미주문단을 돋보이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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