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4-2010 '이 아침에'


봄맞이 대청소를 하며

                                                      조옥동/시인

모처럼 봄맞이 대청소를 했다. 집안 구석구석의 먼지를 털어내고 쌓인 책들을 정리하는데 남편도 어린 꽃과 채소 등 몇 몇 모종을 사다 놓고 앞뒤 화단을 돌보고 있다. 낙엽을 걷어내고 양지 바른 곳으로 화분을 옮기고 비료를 주는 등 바쁘게 움직인다. 봄이 되면 우린 마음도 밝아져 주위를 더 깨끗하고 아름답게 만들고 싶다.

자연은 청소의 왕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자연은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는다. 철 따라 때를 따라 이슬비, 소낙비, 장대비를 내려 초목의 묵은 먼지를 씻어내고 산뜻하게 빨래를 한다. 때로는 바람이란 무소부재의 힘을 휘둘러 수시로 마른 잎과 묵은 껍질, 무겁게 걸치고 있었던 겉옷들을 쓸어내 청소를 한다.

자연은 봄엔 새 옷을 여름엔 풍성한 치레로 가을엔 화려한 치장으로 겨울엔 정결하고 검소함의 미로 청결케 한다. 자연 속에 살면서 그 변화를 체험하고 함께 따라가는 일이 지혜일 것이다.

극소수 나라를 제외하고 사람들은 너무 많이 먹고 많이 써서 물자를 소모하고 자원을 허비하고 있다. 이미 지구환경이 오염되고 자연은 몸살을 앓고 있다. 자연 스스로 생존과 치유의 작용으로 회복력을 지속하며 인간을 보호하는데 반대로 인간은 이를 훼손시키고 오염 시키므로 많은 재해를 자초하고 있다.

자연을 지배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현대 인간의 생각은 착각일 뿐이다. 자연을 잘 관리하고 보호하여 깨끗한 물과 수목 등 가장 기본적 자원을 많이 보존한 나라가 미래의 강국이 될 것이다.

얼마 전에 사고로 산소 호흡기를 끼고 정신도 혼미하신 상태로 병상에 누워계신 어머니는 고통 중에도 만일의 경우를 위한 자신의 마지막 청소를 생각하고 계셨다. 서랍과 옷장에 가득한 옷들과 평소 좋아한 장신구들, 한 번도 쓰지 않은 물품들을 어떻게 정리할까 걱정하셨다. 잡으면 놓기를 싫어하신 어머니도 가진 것으로부터 깨끗이 떠날 준비를 의논하셨다.

남편으로부터 “전생에 청소부였을 것이다.” 란 말을 들을 만큼 때로 청소마니아가 되어 쓸고 닦기를 잘하는 나 자신도 정작 치우고 버릴 것을 이 곳 저 곳에 쌓아두고 있다. 노년에 들어선 우리 내외는 우선 집부터 작은 것으로 바꾸고 많은 것을 떨어낼 생각이다. 직장 일을 핑계로 완전히 퇴임 하는 그 때까지 일생의 대청소를 미루고 있다.

버린다는 것은 결단을 필요로 한다. 평소에도 욕심을 조금씩 덜어내는 연습이 필요하다. 육체와 마음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다. 고인 박경리 작가의 “버릴 것만 남아 참 홀가분하다.”며 인생을 하직했던 마지막 말을 새겨본다.

누구나 한 번은 명품 인생을 꿈꾼다. 정보만능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눈만 뜨면 보고 듣는 것이 넘쳐 새로운 것을 그것도 명품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각자 진정한 명품 인생의 정의는 서로 다르다 할지라도 무한한 욕망을 온전히 다스린 지존도 왕국도 아직은 지상에 존재치 않았다.

깨닫고 보면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렸다. 고차원의 사고나 명작을 만드는 정신은 훌륭한 집중력이라 한다. 마음을 다하는 일,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다. 꼭 필요하고 중요한 청소는 나부터 부지런히 욕심과 허영의 때가 끼지 않게 마음의 깊은 속까지 깨끗이 닦는 일이다. 누가 말했다. “가장 좋은 금은 쓰레기의 밑바닥에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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