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옥동의 時調散策 (6)

         김호길 詩人의 作品 鑑賞                    
                                                 조옥동


           내 영혼의 수풀 속에 딱따구리 한 마리 산다
           피로와 나태가 감겨 혼곤해진 순간이면
           딱, 딱, 딱, 부리로 쪼아 번쩍 불침을 놓는다
                            
                                     김호길의「딱따구리」전문
                                
딱, 딱, 딱, 딱따구리 내 영혼에도 불침을 놓는다.  번쩍 정신이 든다.
처음 시조를 접하는 순간 단 번에 온몸을 휘감고 있는 피로와 나태를 벗어 던지고 싶었다.
영혼의 수풀 속에 딱따구리 한 마리 살고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김호길 시인의 작품 감상에 앞서 나는 이분과의 만남과 그에 대한 얘기를 아니 할 수 없다. 오래 전 선배 문인에게서 L. A.에 시조연구 모임이 있으니 함께 참석하자는 제의를 받았다. 시조를 공부하는 모임이 미주에도 있다는 사실은 今始初聞 호기심에 불이 당겼다.

그 모임의 리더가 김 시인임을 알게 되었고 작품과 이름으로만 익히 알고 있었던 김호길 시인을 상면하게 되었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에겐 수많은 만남이 이루어지고 있다. 헤아릴 수 없는 인연 가운데 이날 김 시인과의 만남은 나에겐 매우 귀한 것으로 내가 시조를 쓰게 되는 운명적인 만남이 되었다.

시조문학의 울창한 숲 속에 인도되었을 때 묘목도 되지 못한 모습으로 참 훌륭하게 하늘을 찌르고 서 있는 시조문학의 거목들을 올려다보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그 후 그들 거목들과 한창 눈부시게 자라고 있는 젊은 나무들이 四季를 지나며 바람과 구름과 하늘과 별과 함께 계절 따라 내면의 서정을 읊어내는 삼장 육구의 시조에 매료되게 된다.  곧바로 시조를 써 보라는 독려를 받았고 드디어 「현대시조」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미주시조문단 역사는 초기에서 현재까지 김호길 시인을 빼 놓고는 말 할 수 없다. 미국이란 한국문학의 변방에서도 수십 명의 현대시인들은 계속 배출되고 본국문단에 등재되고 있는 현상과는 극히 대조적으로 시조는 미주에서는 이방문학으로 제켜놓다 시피 현대시조시인의 수는 아직도 몇 명에 불과하다.

황무지와 같은 미주 땅에 처음으로 시조진흥의 깃발을 꽂은 이도 김 시인이고 많은 우여곡절을 겪는 이민생활의 격랑 속에서도 이분의 시조사랑 운동은 중단 없이 계속되었다.

이제 현대시조의 수맥이 형성되고 작은 물줄기에도 미흡 하긴 해도 캐나다의 반병섭, 뉴욕의 이 정강, 김영수 L. A.의 고원, 최경희, 김동찬 중부 일리노이주의 허연 그리고 플로리다엔 한혜영 등 몇 분이 좋은 작품들을 발표하고 이 뒤를 이어 소수의 신인들이 각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본국의 ‘현대시조’를 포함하여 다양한 시조문예지를 이 곳에 소개하고 초기엔 앤솔러지 모습으로 <사막의 별>, <사막의 민들레>라는 작은 작품집을 발행했다. 1995년「미주시조 시인협회」를 창설하고 초대회장을 지내면서 이 미주 땅에 시조문학을 정착시키는데 태평양을 넘나들면서 그의 심혈을 기우려 온 공은 아무도 가볍게 평가할 수 없다.

최근 몇 년간은「시조월드」란 시조문예지를 한 해에 두 차례 발행함으로서 ’시조의 세계화, 시조문학의 새 지평을 연다‘는 캐치-프레이즈를 외치므로 미주뿐만 아니라 연변과 중국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시조문학의 창달을 위해 사재를 내 놓고 있다. 뿐만 아니라 수년 전에 <시조월드,www.sijoworld.com> 와 어린 꿈나무들의 <느티나무, www.nutinamu.com >란 웹사이트도 인터넷 위에 올려 현대문명의 최첨단 방법을 도입함으로 어느 문학장르보다 빨리 앞길을 훤히 펼친 분도 김 시인이다. 또한 본국의 몇 시조시인과 함께 울산에서 어린이 시조운동을 시작한 사실도 간과할 수 없는 역사이다.

           눈이 소복히 쌓인 자작나무 숲에는
           한 이십 년쯤 젊은 날의 햇빛 비치고
           포로록- 멧새가 깬 고요 수정같이 시린 아침

           도장찍듯 눈 밭 길에 발자국을 남기네만
           한 백년 뒤 누가 와서 고운 발을 맞추어라
           숲 사이 바람도 취한 그 숲 사일 헤치며
          
                                 「歡喜」전문    

김 시인은 1990년대 말 북가주로 가는 길목 베이커스필드 조금 못 미쳐 소나무 자작나무 우거진 산골짜기에 ‘송월산방’이란 별장을 마련하고 창작을 하며 때로는 원근 각지의 여러 문인들을 초대하여 봄, 가을 시 낭송을 하고 문학을 논하며 솜씨 좋은 부인의 별찬을 대접하곤 했다.

이 시는 그 송월산방의 겨울 모습이다. 흰 눈이 소복히 쌓이고 수정같이 시린 아침 멧새 포로록- 눈을 날리며 날아갈 때 산 속 고요가 깨지는 모습이 환하게 눈에 들어온다. 멧새가 눈 위에 떨구고 간 발자국 몇 개 너무 앙증스러워 한 백년 뒤 누가 와서 고운 발을 맞출 때까지 지워지지 않으면 좋겠다.
  
            설움도 고삐를 풀면 비로소 환희로 피나 머리 둘 데 없는 하늘
            땅 몇만리 밖을 맨발로 헤매던 바람 다시 돌아왔거니

            삶과 죽음의 권속은 한이불 밑이런가 살은 듯 죽어 있고 죽은
            듯 살아 있는 하찮은 풀포기 위에도 은빛 풍성한 세례여

            소나무 잎에 앉은 햇빛 참새처럼 모인 햇빛 무슨 도란도란
            잔치라도 벌였는지 저들도 일만 시름을 감싸주는 것이려니

            학은 어디로 갔나 가지마다 수놓던 학은 졸음 속 해오라비
            등허리 밋밋한 능선을 지켜 나래끝 서운(瑞雲)을 일구던 학을
            찾아 보아라

            이 간절한 수정 목마름 애태우는 넋의 언어 늘 깨어 있어라
            온세상 잠속에도, 그말씀 천지에 가득 메아리로 남았다

                               「수정 목마름」의 전문

이 시는 김 시인의 대표작으로 꼽힐 만큼 현대시조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처음 시집에서 시를 읽기도 전에 「수정 목마름」이란 제목이「하늘 환상곡」과 함께 너무 마음을 당겼다.

흰 눈이 녹아 처마 끝에 투명한 유리알보다 맑게 매달려 있던 그 아름다운 수정고드름을  따려고 언 손 호호 불며 애썼던 유년의 기억을 되살리는 것은 잠시였고 나는 이 작품을 끝까지 계속 읽지 못하고 시가 내포한 절절한 希求를 가늠하여 보았다. 한 연을 읽고 쉬고 또 다음 연을 읽고 또 읽고 마지막 연을 읽고 나서 수정과 같은 맑은 넋의 소유자 그 영혼의 울림은 내 안에 메아리로 울렸다.  

鶴은 어디로 갔나? 나래 끝 瑞雲을 일구던 학을 찾는 일은 설움과 환희, 죽음과 삶이 한 이불 속 권속으로 지내는 우리의 일상에서 바람으로 불어오는 시름을 말리는 일이다. 작은 풀포기보다도 낮게 엎드린 우리 민생의 어깨 위로 내려앉는 은빛 찬란한 따사로운 햇빛 나래를 찾는 일이다.

허나 햇빛의 나래여,  그 瑞雲을 일구는 학,  밋밋한 산등성을 넘어 가버린 학을 시인이 찾고 있는 것이 아니다. 깨닫고 보니 영혼의 간절한 목마름을 축일 수 있는 일은 수정같이 맑고 깨끗한 넋의 언어로 깨어나는 일이다. 그에겐 맑고 깨끗한 넋의 언어가 늘 창작의 주머니 그의 마음, 영혼 속에 깨어있어 끈이 조금이라도 풀리기만 하면 파득이며 세상 밖으로 날개 짓 하여 나오고 있다.

참 부러운 언어의 조종사, 그 사유의 뿌리에선 늘 슬픔이 그리고 아픔이 샘물처럼 솟아오르고 있으며 잃지 않은 꿈과 정념은 시속에 승화되어 사막의 선인장 꽃으로 피어난다.
          
                        1.
           시도 때도 없이 늘 그 곳은 바람이 휘몰고 간다
           흙과 모래 푸나무 한 그루 발붙일 곳 없는 돌산
           태양이 지지고 가면 별이 내려 징을 박고.

           바람은 무슨 악연으로 억겁 세월을 갈퀴질하고
           돌산은 또 그만한 세월 곧은 뼈로 버티어 왔나
           끝없는 대치의 하늘 핏빛 휘장을 둘렀다.
                      
                         2.
           검붉은 뼈만 앙상한 山 하나 놓여있다
           삶과 죽음 갈라놓은 바람이 할퀴고 가면
           죽은 듯 고요 속에서 천지 모두 눈을 뜬다.
  
           죽음은 다시 살아나고 삶은 모두 죽어있는 듯
           가시 입은 선인장들의 오랜 고행의 나날
           들끓는 아우성조차 침묵으로 잠재운….

                                 「유배지의 산」1 과 2

   고국을 떠나 온 이민의 삶은 남의 땅에 눈물로 뿌리를 내리는 유배지의 삶이다. 등지고 온 자나 밀려 떠나 온 자나 삶의 밭을 새롭게 일구는 작업이 상상이나 생각보다 얼마나 힘드는 일인지는 겪어 본 자만이 안다.

쉽게 서럽고 노깝고 햇볕이 지지고 가면 별들이 내려 징을 박는 땅에서 바람도 칼바람으로 할퀴고 가는 메마른 사막과 같은 곳, 가시를 박은 선인장들의 고행의 나날은 생각만 해도 아프고 두려운 날들이었다. 사막의 선인장도 때가되면 꽃 피우고 폭을 넓히듯 죽음이 조금씩 살아나기까지 들끓는 아우성조차 침묵으로 잠재워야 했다.

최근에 들어 쉽게 이민 짐을 싸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조심스러운 결정을 했으면 싶다.
김 시인은 땅을 파고 밭을 일궈 이랑에 씨를 뿌리는 농부가 되었다. 눈물도 함께 뿌리던 농부가 국제농산물 유통회사를 만들기까지 피를 토해내 듯 작품 속에 나타낸 이 농부시인의 얘기를 들려주고 싶다.

            설움도 울분도 그 까짓 오기도 모두
            실없는 허명마저 다 버리고 나면
            그때사 비로소 사막은 가슴 열고 반기네
        
                             「사막은 가슴을 열고」전문

            예전에는 내가 순백의 善인줄만 알았다
            요즘은 낮고 더 낮은 사막 농부가 되었어라
            너 이놈 새까만 석탄 덩어리 막 원석으로 캐어놓은!

                              「고백」전문

김 시인은 흙을 만져 돋우고 엎고 하여 얻어지는 수확을 삶의 방법과 수단으로 삼아 살아가는 농부다. 그는 그냥 농부가 아니다.

자연 속에서 눕고 자고 노래하면서 자연 친화적 인생의 밭도 일구어 가며 그 안에서 삶의 의미와 본질을 캐내려고 하는 사유의 농부시인이다.

그의 작품은 자연의 언어들로 직조되고 그 언어들이 날실과 씨실이 되어 짜 놓은 작품은 어느 누가 짜놓은 비단보다 무늬가 곱고 색다르다. 무변광대한 하늘을 구름 위에서 바라본 항해사로서 그는 우주 안의 자신을 헤아려 보았고 자연을 가까이 하면 할수록 더욱 경이로움을 깨달아 그 인품이 호방하면서도 자신의 작음을 아는 시인이다.
풀포기 하나에도 선인장 가시하나에도 애정의 눈빛을 꽂아 그들의 언어를 자신의 언어로 대치할 줄 아는 隱喩자다.    
  

1943년 경남 사천시 사천 읍 출생이고 1963년 개천예술제 시조백일장 장원을 계기로 그의 시조사랑은 일생을 흐르는 하나의 생명 줄로 동행한다.
일찍이 박재두, 서벌, 선정주, 조오현 등과 함께 <율>시조동인을 만들어 신시조운동을 일으켰다. 육군항공학교를 졸업한 후 미 육군항공학교를 졸업, 월남전에서 헬리콥터 조종사로 종군, 전역 후엔 대한항공 국제선보잉707 조종사로 시작하여 보잉747점보기 조종사였다. 1981년 이민으로 미주에 정착한 후에 1984년엔 해바라기농원을 설립, 현재는 멕시코에서 대 농장주로 국제영농기업인이 되었다. 그의 등단 작품 ‘하늘 환상곡’은 시집 1975년 「하늘 환상곡」으로 출판되고 1990년엔 둘째 시집 을 상재, 이 시집의 대표작「수정 목마름」으로 1998년 현대시조문학상을 받았다.

2000년에는 제 3시집 「절정의 꽃」(우리시대 현대시조 100인선, 태학사 발행)을 내었다.

2016년 14회 <유심작품상>을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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