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옥동의 時調散策 (8)

         이재창 詩人의 作品 鑑賞                    
                                                 조옥동

나의 詩
                            
연초록 숲에 가면 우리는 황홀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피워내고 싶은 야생화
눈 높이 꽃대를 꺾어도
저 만치서 웃는 그대
                           이 재창 시조집 <달빛 누드>에서

초복을 지내고 배가 불러 온 만삭의 보름달은 진초록 가로수 사이를 서서히 유영하며 풍만한 모습으로 내 앞을 비추고 있었다.
때로 늦은 시간, 퇴근길에 오르면 나를 비켜 가는 소리와 모습들에게서 외면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한층 나를 왜소하게 만드는데 이 날은 달랐다.
귀가하니 달빛은 편지 함 속에도 있었다. <달빛 누드>를 전해주신 손길에 감사한다.

작가는 잔인한 욕심쟁이, 쉬지 않고 눈 높이 꽃대를 꺾어 댄다. 이쯤이면 제법 곱구나 하는 자기 만족은 순간이고 저만치 보이는 또 하나의 유혹을 향하여 팔을 뻗는다. 같은 일을 반복하며 평생을 살아도 만족한 꽃 한 송이 얻는다는 보장이 없어도 피를 말리는 작업을 중단치 못하는 이 아름다운 病을 이재창 시인은 일찍이 약관의 나이에 시인으로 등재하고 아니면 그보다 더 이른 소년기에서부터 “밀재”를 수 없이 넘으며 얻은 것이리라.
  
적멸의 그리움
-밀재를 넘으며·17-
                                                    

철쭉 피는 저녁에는 상하리 마을에 와서
당신의 부끄럽지 않는 가슴을 보았습니다
화려한 흰 복사뼈를 내보이며 기다리는….
봄비를 따라 와서 갯내음 안고 돌아가던
그 미치도록 눈물겹게 가슴 미어지던 갈꽃들
겹망사 푸른 면사포 같은 그리움이 있었습니다.
삶의 슬픔도 법성포 비린내로 쏠려오는
해안도로 구비구비 몸 수그리는 욕망의 무게
저 능선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적멸이 있었습니다

“밀재”는 이 시인의 마음에 있는 상상의 적멸궁일 수도 있고 한 번이라도 벗어나 본 적 없는 그리움의 고향이다.

철쭉이 피고 흰 복사뼈를 물에 내놓고 거닐던 갯내음이 배인 갈꽃 피는 언덕에 앉아 벌써 슬픔을 갯비린내 함께 씹던 조숙했을 소년, 이제는 불혹의 나이에서 몇 해를 넘기고도 세상 욕망의 무게를 떨어버릴 수 있는 곳, 혼자만의 寂滅을 품고 사는 일은 본인에겐 신앙이다. 믿음은 그리움이고 겹망사 푸른 면사포 속에 보일 듯 얼 비추기만 하는 그리움은 영원히 온전하게 손에 쥘 수 없는 사랑, 그것은 영원한 소망일 뿐이다.

           지천명에는
     - 밀재를 넘으며 . 12 -

      돌아서 가다가도 생각하면 끝모를 길
      산허리 감는 삶들이 바퀴처럼 어지럽다
      미물로 우주의 미물로 굴러가는 나는 잡초.
      어디로 가야하나 잡초처럼 끈끈한 인연
      칼칼한 스트레스 저만치 비워두고
           우리가 몸 부비고 설자리 지천명엔 올지 몰라.
                            시조집 <달빛 누드>에서

이런 저런 일들로 스트레스가 몸의 구석구석을 注射하는 일은 다반사로 오늘을 사는 우리 시대 문명된 생활 환경이다. 헬 수 없이 굴러가는 바퀴들 틈에 끼어 빠져 나올 수 없이 끈끈하게 뒤엉킨 인연들로 어지간히 피곤하고 꽤나 스트레스풀 한 모습이다.

‘나는 잡초’이다. 시인이 잡초이면 세상에 잡초 아닌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잡초 속에서는 꽃도 잡초가 되어야 생존하는 이치를 이 시인이 모를 리 없다.  바람에 엎드려 낮고 낮은 잡초가 되는 일은 겸손한 모습일지 남루한 곳에서도 꽃을 피우고 지는 질긴 생명의 본질일지 생각해 볼일이다.

할지라도 세상을 장식하는 아름다운 꽃들의 많은 수가 현대 생물학에 의해 야생화나 잡초를 개량하여 만든 품종인 것을 알고 나면 어느 날 세상의 잡초들이 모두 꽃이 되어 하늘을 바라보는 꿈을 꾸는 일이 우리 인생 잡초의 꿈이고 시인의 꿈으로 승화되었으면 하는 바램은 억지 일가?

           달빛 누드·11

           우리가 풀숲에 들러가면 숲이 되었다

           또 산책길을 따라가면 나무가 되었다

           간절한 생존의 품격을 생각하며 산이 되었다.
                          시조집<달빛 누드>에서
                            
먼저의 시와 대조적인 시인의 마음을 읽는다. 숲이 되고 나무가 되는 자존의 존귀를 인식하며 간절한 생존의 품격을 생각하는 山이 된 시인이 나는 더 좋다.

          

            달빛 누드·10

            너의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싸늘하다

            그 거칠한 모습으로
            그리움의 강을 건너는

            사십대
            중반의 산맥이
            객혈처럼 붉게 보인다.
                            시조집<달빛 누드>에서

내가 사는 남가주에는 일년중 비오는 날이 한 달도 안 된다. 지도에는 여러 개의 강이 그려져 있지만 항상 말라 있어 강이었는지도 모르는데 비가 오는 며칠만 실개천만큼 물이 흐른다. 그러나 산타모니까 해변의 말리부 비치엔 자기 집 마당가에서 일 년 내내 해수욕을 할 수 있는 고급 주택이 즐비하다. 주로 영화인 연예계 사람들이나 거부의 소유이다. 최근에 들어 그들에겐 걱정이 생겼다. 지구의 온난화 현상 때문인지 해변의 수위가 점차 높아져 언젠가는 집안까지 물이 차오를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물은 인생을 풍요하게도 하고 고통이 되기도 한다. 마음이 그리움의 강이 되기도 하고 눈물의 강이 되 듯이 마음은 아마 흐르는 물이리라. 현대 병이 들어 죽었던 중량천이 물고기 떼 몰려와 헤엄치는 시냇물로 맑은 기쁨으로 살아 나 듯이 생명을 소생시킬 수 있는 물이면 더욱 좋고. 흐르고 싶은 대로 흐르다가 내가 되고 강이 되고 바다에 이르게도 되고. 그러나 계속 뒤따르는 물이 없으면 마르고 마는 물이리라.
영혼을 졸이는 것도 마음의 강이려니. 사십대 중반의 산맥은 세파에 부대끼며 이곳저곳 깎여 나간 꺼칠한 모습이다. 아마도 마음은 객혈을 토해내는 붉은 피로라. 피를 토해 내는 원천이리라.
  
며칠 동안 나는 계속 이재창 시인을 따라 ‘밀재’를 넘고 ‘성산포’를 지나고 ‘달빛 누드’를 감상하면서 ‘가을 카페에서’ 그의 그리움과 만나고 허무를 얘기 듣고 있었다. 그리고 ‘新 귀거래사’도 엿 들었다. 한 번 동행을 시작해서 끝까지 나를 끌고 가는 힘이 아니 독자들이 이끌려 가는 매력이 넘치는 작가이다.

시조시인으로 그의 경력이 말해 주듯 현대시조 사랑은 누구 다음에 서라면 섭섭해 할 작가이다. 내가 이 시인을 자주 만난 곳은 그가 운영하는 인터넷 웹사이트 ‘시조대학(sijosi)’에서였다. 이리저리 현대 시조의 숲 속을 헤매고 있을 때 시조대학이 게재한 전국 시조시인의 인명록에서 내 이름을 발견하고 올려진 옛날 주소를 정정해 주도록 이메일을 썼다. 당장 정정된 사실을 확인한 후부터 자주 이 시조대학에 들려 많은 시조시인과 더불어 좋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아직도 젊다. 세상을 품어 안고 고뇌할망정 외면치 못하고(연대기적 몽타주 연작) 그는 아마도 현장의 증인으로 남아 있으려는 사회참여 의식 때문에 남보다 정직하고 순수 하려 한다. 세상과의 부대낌은 곧 자신과의 투쟁이 되어 때로 그의 숨결은 높고 그는 날카롭게 자신을 회초리 치며 산다.

화정동 좁은 길목을 벗어나 밀재를 향합니다./견통과 갈비뼈가 스산하도록 저려오는/낡은 생각 하나하나 벗어 던지고 오르는 길(밀재를 넘으며·5), 사나운 바람만 남아/번뇌 하나 키웠습니다(참회록)등 많은 작품에서 그의 신음소리를 들으면 자신을 세상의 표준사전이 되어보려는 의식이 무의식중에 강박관념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본다.

그는 매우 지쳐있고 피곤해 보인다. 박제된/ 날개 달고/ 어디로 날아가나/이미/나의 중심은/하얀 뼈로 변색되고/중년의 무게중심이/나팔꽃처럼 시든/ 하오.(중년의 하오)에서 엿보이듯 그리고      

          유배지에서

          이젠 너를 방생한다 욕망의 사각에서
          영원히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날아가도록
          허욕의 시간 불태우며
          방생한다
          불면의 바다.

불혹의 나이가 되면 욕망을 던져 지천명 한다고, 지천명은 겸손을 가슴에 안고 머리에 이고 무릎을 꺾어 보는 일이리라. 옥탑방/창문 두드리며/긋고 간다/별똥별 한 획.(별) 처럼 지나간 시인의 세월, 살얼음 고요를 깨우는 한 생애의 어두운 강(이 길을 지나면서)이 흐른다.

하지만 독자는 이 시인이 더욱 원숙한 시어로 이 시대를 일깨우고 격려하며 내일의 비전을 보여주는 젊은 시인으로 남아 있기를 희망한다. 장대숲 흔들리는 고향, 돌아가리 화엄의 숲(新 귀거래사의 종장)일랑 마음에 두고라도. 현대시조 키르만자르 영봉을 오르는 과업은 계속 도전자들을 배출하고 후원자들을 만나야 한다. 이 시인의 존재는 현대시조계에 매우 희망적이다.

이재창 시인은 1959년 광주 출생, 1979년「시조문학」천료,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제 19회 한국시조문학상을 시상했으며 시조집「거울論」과 문학 평론집「아름다운 고뇌」등 작품집을 내고 열린시조, 시와사람의 편집위원을 역임. 현재는 시선과 시조월드의 편집위원이고 광주대학교의 문예창작과 교수로 후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인터넷 시조창작전문사이트<시조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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