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7-2012  미주중앙일보 '이 아침에'

         사월을 스쳐가는 희망의 바람

                                              조옥동/시인

꽃샘바람이 사월 복판을 휘젓고 갔다. 뒤뜰 사과나무와 석류나무에서 떨어진 고운 꽃잎을 보면 애처롭다. 한 시인은 흩어지는 사월의 꽃잎을 밟으며 붉은 핏방울을 연상했다. 꽃은 생명의 시작이기 때문일 것이다. 겨우 좁쌀보다 조금 크게 새로 맺은 오렌지 열매가 수없이 떨어지고 있다. 아직 여린 초목의 연초록 잎이 땅위를 아프게 뒹굴고 있다.

선거바람이 또 사월 한복판을 휘젓고 갔다. 당선한 사람들의 환한 웃음 뒤에서는 우수수 낙선한 후보와 가족들 그리고 주위의 관련된 사람들이 얼마나 낙심할 가를 생각하니 선거바람도 잔인하다.

사월엔 각 대학의 입학사정이 끝나고 입학 통지서를 받는 달이다. 대학입학은 한두 해의 공부로 이루는 꿈이라기보다는 출생부터 고등학교까지 인생의 성장기를 통해서 성취되는 인생의 첫 관문이라 할 수 있다. 원하는 대학에 입학허가를 받는 학생 수보다 낙방한 학생 수가 훨씬 많다 보니 입시바람 또한 잔인하다.

바람이 부는 원인과 방향을 알만하다가도 의외의 돌풍을 만난다. 천지사방에 높고 낮은 바람다리가 놓이면 막힌 길을 뚫고 서로 관계를 열어놓는다. 문화와 예술의 바람이 있고 지성인의 외침이 바람을 일으키는가 하면 시민은 그릇된 지도자를 혁명이란 바람으로 밀어낸다. 차고 넘치는 곳에서 낮고 부족한 곳으로 채워주며 찾아왔다 떠나버린다.

높은 파도를 밀어오는 해풍도 없는 바다가 어찌 대해라 하랴. 바람도 없이 단비가 내리는 일은 거의 없다. 계절은 바람의 다리를 건너 와 잠시 멈칫거리다 또 바람의 다리를 건너 사라진다.

바람은 가벼운 것을 업신여기고 무거운 것을 두려워한다. 열매를 떨어뜨리기도 하지만 바람이 없으면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이 있고 생명을 퍼뜨릴 수 없는 것도 많다. 한편에선 잔인한 바람이 다른 편엔 유익한 바람이 있다.  

바람이 가슴을 파고든다. 잔잔한 가슴에 바람이 일면 용기가 솟아 새로운 일을 만들고 싶다. 문을 열면 벌써 집 앞 돌배나무엔 멀리서 다시 찾아왔다고 지절대는 철새소리에 늦잠을 깬 옆의 마른 가지가 기지개를 펴 끝까지 물을 퍼 올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흐드러지게 꽃은 피어나고 풀린 물길을 따라 가노라면 질펀한 들과 사막에도 꽃길이 열린다.

지상과 하늘, 대륙과 대륙을, 산과 바다를 이어주는 보이지 않는 징검다리, 이 바람다리를 인생들도 함께 건너가고 있다. 아니, 세월의 바람이 생명 하나하나를 딛고 건너간다.

아직도 4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황무지>의 시인 엘리엇은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 했지. 부활절을 비롯하여 동서양을 묶어 사월은 수많은 혁명의 바람이 세계사를 기록하였고 한국의 현대사에서 4.19학생 혁명이나 미국의 독립혁명도 4월의 태풍이었다. 인생의 바람이나 역사의 바람을 누군들 막을 수 있으며 피해갈 수 있으랴.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는 시인의 바람을 우리의 희망, 사월의 바람으로 비구름 스쳐간 푸른 하늘을 우러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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