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조옥동의 시조산책-2)

                  홀로 가는 길
            
                                               유자효

빈 들판에 홀로 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때로는 동행도 친구도 있었지만
끝내는 홀로가 되어
먼길을 갔습니다.

어디로 그가 가는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이따금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아도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습니다.
그는 늘 홀로였기에

어느 날 들판에 그가 보이지 않았을 때도
사람들은 그가 홀로 가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없어도 변하지 않는 세상
모두가 홀로였습니다.

이 시의 매연마다 홀로 라는 말이 반복된다. 홀로 가는 그 사람만이 홀로가 아니고 모두가 홀로 임을 갈파한다.

길에서 만난 동행도 친구도 모두 홀로였기에 서로 기대고 말도 걸고 싶어 다가가 동행을 청하고 친구를 만들기도 했지만 언젠가는 헤어져야하는 운명을 지니고 가는 길. 사람은 태어난 후 몇 번의 홀로 서기를 배운다.

첫돌이 되면 홀로 서기를, 성년이 되면 부모를 떠나 홀로 서기를 하려한다. 그러나 막상 홀로 서기를 하게 되면 살아간다는 자체가 홀로 서기 즉 홀로 가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이 시속의 그는 바로 나이고 너이며 모두임을 시인은 평이한 언어로 조용히 깨우쳐 주고 있다. 대화를 나누어도 내 말들은 언제나 내 가슴에 되돌아와 꽂힐 뿐 누구의 것도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아무리 가슴이 따뜻하고 정이 많은 그 일지라도 늘 홀로 임을 알게 된다, 이따금 멈추어 뒤를 돌아보아도 말을 거는 사람이 없음은 오히려 홀로 라는 숙명을 그네들 또한 깨달았기 때문이리라.

우리는 이 땅에 귀양을 왔다가 본향으로 돌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귀양을 왔다 떠나는 이들 무슨 할 말이 있겠으며 또한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갈망정 가슴속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저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 할 말 못 할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있다 와 없다, 존재(存在)와 비존재(非存在), 있다는 왔다는 의미이고 없다는 갔다는 상황 표현이다. 생명으로 왔다 주검으로 가는 길, 한 쪽으로 등장하면 다른 쪽으로 사라지는 무대 위에서 그 막이 내리면 관중의 기억에서조차 잊힌다.

인생은 얼마나 커다란 무대인가. 웅장한 무대 위를 말없이 걸어가는 이는 긍정적으로 많은 것들과 화해했거나 반대로 스스로 자신만을 받아들이는 부정적인 사람일지라도 종점으로 가는 길에서는 누구나 혼자이다.  넓은 들에서 주어진 자리를 홀로 지키다 말없이 사라지는 허수아비, 허수아비가 없어져도 변함없는 벌판을 바라보듯 내 한 몸 없어진다 한들 변하지 않을 세상을 바라보면 나는 세상이란 들판에 서있는 하나의 허수아비라는 생각이 든다.

시인이며 방송인인 그는 서울대하교 사범대학 불어과를 졸업하고 1972 KBS방송계에 투신 보도국장 해설위원 등을 역임하였고 현재는SBS 라디오본부장으로 재직하였다. 『금지된 장난』외 여러 권의 시집과 산문집을 출간한 시인은 감성을 적절히 객관화하고 지적으로 절제된 작품세계를 보여준다는 평을 받고 편운문학상 후광문학상 현대시조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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