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 시인과 함께 떠나는 명시여행(69)



눈물


김현승





더러는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흠도 티도,


금 가지 않는


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 제,




나의 가장 나중 지니인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주시다.




  

시의 바탕이 되는 정신이나 소재로서 종교는 중요한 위치를 갖는다. 한국시의 경우 가장 광범위하고 뿌리 깊은 종교는 불교이다. 민족역사와 함께 한 기간이 길고 전통이 오래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유체계 내지는 삶의 방식에 깊이 천착(穿鑿)되어 있음으로서다. 한용운 선생을 비롯하여 서정주, 신석정, 조지훈 선생 등 대가급 시인들 모두가 불교적 바탕에서 시를 쓴 시인들이라 할 것이고 후대의 여러 시인들의 시에서도 불교적 체취를 맡을 수 있겠다.



불교 다음으로는 영향력이 깊은 종교는 기독교. 근세 이후, 개화(開化)와 더불어 유입된 서양 종교인 기독교는 구교든 신교든 오늘날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생과 영혼 생활에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문학에의 영향이나 문학작품의 생산 면으로 볼 때는 불교보다 그 영향력이 헐한 듯한 느낌이 없지 않다. 이런 가운데 한국 시인들 가운데 기독교 정신으로 시를 창작해 성공한 시인을 찾는다면 박두진, 김남조, 구상, 그리고는 김현승 정도가 아닐까 싶다.


김현승(金顯承, 1913-1975) 선생의 호는 다형(茶兄). 전남 광주 태생으로 부친이 목사였으므로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 부친을 따라 평양에 이주, 숭실전문 문과를 졸업했다. 학창시절 은사인 양주동 선생의 인도로 동아일보에 「쓸쓸한 겨울 저녁이 올 때 당신들은」이라는 작품을 동아일보에 발표(1934년) 함으로 시작활동을 출발시켰다.



초기엔 서구적인 정서를 매우 낭만적이며 민족적인 입장에서 접근하여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일제 침략기 말에는 문필생활을 접고 침묵을 지키다가 광복 이후 1949년부터 작품 활동을 재개했다. 선생의 시들은 매우 건강하고 지성적인 것이 특징이며 기독교 정신에 바탕한 것이 특징이다. 약간은 건조하면서 강골의 정신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평생동안 문단의 아무런 파당이나 문학단체에도 가입하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한마디로 말해 ‘꼿꼿한 선비정신의 시인’이었다고 할 것이다. 커피를 너무나 사랑해 대접으로 마셨다는 건 유명한 이야기이며 대학교 교수 재직 중 학교의 채플 시간, 기도하는 도중에 쓰려져 세상을 뜬 일은 매우 시인다운 일화이기도 하다.


조선대학교 교수를 거쳐 숭실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남긴 시집으로 『김현승시초』(1957),『옹호자의 노래』(1963),『견고한 고독』(1968),『절대고독』(1970) 등이 있으며 사후에 『김현승 시전집』이 출간되기도 했다.  


대표작으로는 「가을의 기도」, 「플라타너스」,「아버지의 마음」같은 작품이 있겠으나 여기서는 「눈물」이란 작품을 골랐다. 이 작품은 아들을 잃고 그 아픔을 이기면서 쓴 작품이라 전한다. 매우 아름답게 보이는 글. 무등산 기슭에 시인의 시비에도 새겨져 오가는 사람들 발길을 머물게도 하는 시. 그런 글 속에 시인만의 아픈 사연이 숨겨져 있다니, 다시금 읽는 마음이 심상치 않다.


시인은 눈물을 생명의 씨앗으로 보고 있다. 슬픔의 표징으로서 눈에서 떨어지는 소금 몇 퍼센트의 물방울을 대지에 떨어져 싹을 티우는 생명의 근원으로 본 것은 참으로 놀랍다. 언제까지나 탁월하다. 허지만 거기까지 이른 시인의 정신역정을 감안한다면 가슴이 아프다. 시를 쓴 시인의 배경을 참고할 때 더욱 그렇다. 오죽 많은 밤을 울고 지샜으면 이러한 결론에 다 이르기까지 했을까?


차라리 시인의 아름다운 언어는 통곡과 같고 붉은 피와 같이 가슴을 저미며 흐른다. <더욱 갚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 제,> 이 대목에서 그렇고, 따르는 <가장 나중 지니인 것도 오직 이뿐!>이란 술회에서도 그렇다. 그리하여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주시다.>는 진정한 승리의 나팔 소리가 된다. 이렇게 종교의 힘은 무섭고도 강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시인에게 있어 ‘눈물’은 그냥 눈물이 아니다. 생명의 부활을 약속하는 비밀스런 의미로서의 눈물이요, 최상의 고귀함의 대명사로서의 눈물이다. 나더러 한국 시인이 쓴 기독교 시 가운데 첫 번째 시를 말하라면 서슴없이 이 작품을 꼽겠다는 이유가 거기에 있겠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79 스탠포드 대학 졸업축사 전문/ 스티브잡스 조옥동 2011.07.20 1027
378 김광섭의 <저녁에>/나태주 시인과 함께 떠나는 명시여행 조만연.조옥동 2010.11.23 974
377 미주문협을 떠나며 조만연 2006.09.08 933
376 나태주 시인과 함께 떠나는 명시여행/투르게네프의 "거지" 조옥동 2011.02.06 736
» 나태주 시인과 함께 떠나는 명시여행/나태주 조만연.조옥동 2011.06.09 713
374 너에게 쓴다(시가 있는 에세이)---조옥동 조만연.조옥동 2009.09.07 703
373 안부 인사 ( 정목일 ----풍경소리) 조옥동 2007.04.28 649
372 L.A. 문인들에게 ---시인 나태주 선생님 조옥동 2010.06.08 647
371 감사의 인사 조옥동 2007.07.14 633
370 그리움의 노래 / 조옥동 석정희 2012.03.02 613
369 시인 나태주 선생님이 오십니다. 조만연.조옥동 2010.04.28 558
368 마음을 여는 열쇠 박정순 2009.11.11 544
367 시간은 두 발에 징을 박고 박영호 2006.03.25 534
366 선생님 게시판 글을 읽고 박정순 2004.07.15 514
365 새똥이 떨어지면 최영숙 2004.08.30 505
364 시인의 정신 /천양희 조옥동 2011.07.20 497
363 <뉴욕중앙일보>[시와의 대화]내 뼈속에는 악기가-조옥동. 신지혜 2005.02.23 480
362 오는 6월 17일, 시사사 신인상 시상식 나태주 2006.06.10 476
361 윤동주 문학의 밤 조만연.조옥동 2009.07.11 470
360 조용한 물의 흐름처럼... 오연희 2006.05.09 451

회원:
0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0
어제:
1
전체:
97,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