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꿈과 상상력(시 창작을 위한 몇개의 메모)---김완하

2007.06.03 17:02

조옥동 조회 수:817 추천:79

                        시인의 꿈과 상상력
                      - 시창작을 위한 몇 개의 메모


                              김완하(시인 · 한남대 문창과 교수)


       1. 그 꽃 다 지고 나서야 지름길을 알았다

1991년 12월 문학행사로 서울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 전날 서울에 올라가 문학 판의 친구들과 시간을 보냈고, 다음날은 초등학교 때의 친구들과 만나서 저녁을 먹고 대전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강남터미널에서 차가 막 고속도로로 진입하는 순간이었다. 어제부터 친구들과 시간을 함께 했고 새로이 여러 사람들과 만나기도 하였으나 나의 마음은 매우 착잡한 심정이었다. 사람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나의 마음은 복잡해지고 힘에 겨웠다. 그러한 시간을 보내고 이제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부터 벗어나 대전으로 내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나는 창 밖을 내다보다가 하늘로 눈길을 들어 올렸다. 막 어두워지기 시작한 하늘에는 가득히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어둠을 배경으로 하여 별들은 방금 태어난 풀잎처럼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때 나도 모르게 나의 입에서는 “아! 참 너무 아름답다”는 감탄사가 저절로 터져 나왔다. 그리고 왜 그 별들이 아름다운가 하는 생각들이 머리 속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그때 쓰여진 것이 첫 시집 ꡔ길은 마을에 닿는다ꡕ에 수록되어 있는 아래의 시이다.

별들이 아름다운 것은 / 서로가 서로의 거리를 / 빛으로 이끌어 주기 때문이다 / 하루의 일을 마치고 / 허리가 휘어 언덕을 오르는 / 사람들 발 아래로 구르는 별빛, / 어둠의 순간 제 빛을 남김없이 뿌려 / 사람들은 고개를 / 꺾어 올려 하늘을 살핀다 / 같이 걷는 이웃에게 손을 내민다 // 별들이 아름다운 것은 / 서로의 빛 속으로 / 스스로를 파묻기 때문이다 / 한밤의 잠이 고단해 / 문득, 깨어난 사람들이 / 새벽을 질러가는 별을 본다 / 창밖으로 환하게 피어 있는 / 별꽃을 꺾어 / 부서지는 별빛에 누워 / 들판을 건너간다 // 별들이 아름다운 것은 / 새벽이면 모두 제 빛을 거두어 / 지상의 가장 낮은 골목으로 / 눕기 때문이다    (졸시 「별·1」 전문)

1990년 추석을 며칠 앞두고 나는 아내와 선배 시인 내외와 선배의 차를 타고 논산의 관촉사 앞 벚나무 길-그때는 그곳이 관촉사인 줄을 몰랐다-을 지나 강경으로 가고 있었다. 2차선의 길 양옆을 따라서 줄지어 선 벚나무들은 제법 봄이 되었을 때의 화려한 꽃길을 예상하게 해주었다. 내가 그 벚꽃이 한꺼번에 피면 장관이겠다고 말을 하니 선배 시인은 다음 해 봄에는 꼭 벚꽃을 보러 오라고 하였다. 그때 다시 만나서 강경의 황산옥으로 메기탕을 먹으러 가자고 하였다. 나는 상상만으로도 그곳의 벚꽃이 눈에 훤하여 언젠가는 꼭 그 꽃을 보기 위해 그곳에 다시 오겠다는 다짐을 굳게 하였다. 그러나 그 계획을 몇 년이 지나도록 실행에 옮기지 못 했다.
7년 후, 드디어 그 기회가 왔다. 그해 봄 논산 소재의 한 대학에서 1학기 창작강의를 의뢰해 왔다. 나는 그때 강의보다도 바로 그 꽃길을 가 볼 수 있다는 기대감만으로 순순히 허락하였다. 그 강의는 금요일 오전 10시부터 다섯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곳의 강의를 마치고 또 다른 대학으로 강의를 하러 가야 하기 때문에 숨가쁘게 진행이 되었다. 3월부터 강의를 하기 위해 논산에 가면서 나는 이번에는 기필코 그곳에 가보아야지, 이번만은 반드시 그 꽃길을 걸어야지 하면서도 서둘러 갔다 급히 돌아와야 하는 까닭으로 경황없이 지내고 있었다. 그때는 관촉사를 거쳐서 그 대학으로 가는 길을 알지 못해 논산 시내로 돌아다녔던 것이다.
어느 날 그곳에 교수로 있는 비평가가 나의 차를 타고 함께 대전으로 오게 되었다. 나는 그날도 이전에 내가 다니던 길로 방향을 틀었다. 그때 그 비평가는 반대편으로 가는 길을 내게 일러주었다. 나는 지름길이 있구나 정도로 생각하면서 그가 알려주는 쪽 길을 따라 달렸다. 한참을 달리다가 나는 그만 그 자리에 멈추어 버리고 싶은 심정에 휩싸였다. 아! 바로 그곳이 7년 전의 그 길로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계절은 이미 벚꽃이 다 지고 있는 때였다. 벚나무 아래로는 눈송이처럼 희게 깔린 꽃잎들이 바람에 이리저리 휩쓸리면서 봄날의 황량함을 한껏 연출해 내고 있었다. 나는 그 동안 바삐 쫓기면서 허겁지겁 다니며 그곳을 두고도 멀리 빙 돌아서 다녔던 것이다. 그 사이에 이미 꽃은 다 지고 말았다. 그때 나의 뇌리에는 다음과 같은 시 귀가 떠올랐다.

그 꽃 다 지고 나서야 / 지름길을 알았다 // 그대에게 가는 길

이것은 나의 3시집 ꡔ네가 밟고 가는 바다ꡕ에 「동백꽃」으로 수록되어 있다.
그렇다. 나의 시는 일상 체험 가운데서 오는 깨달음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삶, 그것은 꽃이 다 지고 나서야 지름길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지름길을 안다고 해도 그대에게 가는 길은 또 얼마나 멀고도 가파른 것인가. 나는 그것이 또한 시의 길, 시인의 길이라고 생각하며 오늘도 시를 쓰고 있다.


       2. 아, 내장산 밤바람 속의 그 눈발이여!


    눈발

            
내장산 밤바람 속에서
눈발에 취해 冬木과 뒤엉켰다
뚝뚝 길을 끊으며
퍼붓는 눈발에
내가 묻히겠느냐
산이여, 네가 묻히겠느냐
수억의 눈발로도
가슴을 채우지 못하거니
빈 가슴에
봄을 껴안고 내가 간다
서래봉 한 자락
겨울바람 속에
커다란 분노를 풀어놓아
온 산을 떼 호랑이 소리로 울고 가는데
눈발은 산을 지우고
산을 지고 어둠 속에 내가 섰다
몇 줌 불꽃은 산모롱이마다 피어나고
나무들은 눈발에 몸을 삼켜
허연 배를 싱싱하게 드러내었지
나이테가 탄탄히 감기고 있었지
흩뿌리던 눈발에
불끈 솟은 바위
어깨에 눈 받으며 오랜 동안 홀로 들으니
산은 그 품안에 빈 들을 끌어
이 세상 가장 먼데서
길은 마을에 닿는다
살아 있는 것들이 하나로 잇닿는 순간
숨쉬는 것들은
이 밤내 잠들지 못한다
맑은 물줄기 산을 가르고
모퉁이에서 달려온 빛살이
내 가슴에 뜨겁게 뜨겁게 박힌다
내장산 숨결 한 자락으로
눈발 속을 간다


시인의 삶을 누구는 천형(天刑)에 비교하기도 하지만,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 시인으로 문단에 데뷔하는 순간의 희열은 그 어느 것에도 견줄 수 없는 크기라 할 것이다. 특히나 10대 중반부터 품었던 꿈으로서의 시인에 대한 갈망과 동경 속에서 십수 년의 기다림 속에서 성취되는 쾌감은 거의 절정에 달하는 것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나의 경우에도 그것은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기에 등단 작들은 또 다른 측면에서 애정이 가기도 하는 것이다.(그러나 어느 경우에 등단 작이 대표작이 되기도 한다는 한계는 또 하나의 극복되어야 할 벽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는 「눈발」이라는 작품에 애정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눈발」은 1987년 10월 창간 15주년 기념『문학사상』 증면 특대호에 실려 나를 이 세상의 한복판으로 불러내 시인으로 살아가게 한 바로 그 시다. 또한 이 시는 창작과정에서도 나에게는 지울 수 없는 순간의 경이로움과 맞닿아 있는 작품이다.
우리에게는 매우 흔한 사실조차도 상황에 따라서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우리에게 겨울의 눈발이 주는 신선함도 매번 겪는 일로 치부해 버리면 그렇게 새로울 것은 없다. 그러나 그것이 극적인 순간에 새롭게 다가올 때 하나의 자연현상이라는 차원을 벗어나 생의 진한 감동과 깊은 의미를 일깨우며 큰 울림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나의 시를 찾아 헤매던 20대 젊은 영혼에게 있어서 그것들은 더 할 나위가 없는 것이었다.
내게는 눈발을 통한 지울 수 없는 순간의 경험이 있다. 그리고 거기에서 나의 시 「눈발」은 태어났다. 1987년 2월경에 나는 겨울 내장산에서 실시된 1박 2일 일정의 학술세미나에 참석했던 적이 있다. 정읍으로 버스를 타고 가서 한동안이나 기다리다가 도착한 내장산, 그때 눈이 내릴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날 밤 지하에서 세미나를 끝낸 뒤 저녁을  겸한 간단한 회식을 마치고 계단을 올라 밖으로 나와 막 지상에 섰을 때였다. 그때 나의 생애에서 최초로 인식될 만한 엄청난 눈발과 마주칠 수가 있었다. 그 눈발은 쏟아지는 것이 아니라, 아예 통째로 무너지고 있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어둠 속을 휘몰아가며 거대한 군단을 이루어 계곡으로 휩쓸리는 눈발, 그 눈발 속으로 양옆의 산들도 함께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 경이와 충격 앞에서 나는 순간적으로 길을 잃고 말았다. 다소의 취기를 동반하고 한없이 계곡 사이를 걸어가며 양옆의 봉우리를 메우듯이 몰려오는 눈발에 나는 깊게 취하고 말았던 것이다. 겨울바람은 사정없이 내 몸을 휩쓸어가고 눈발들은 잠시라도 눈을 떼면 새로운 세상으로 만들고 있었다. 나무들은 온통 눈을 뒤집어쓴 채로 싱싱한 몸뚱이를 드러냈다. 그러나 그 속에서 나무들은 은밀하게 나이테를 감으며 겨울 한 복판을 통째로 견디고 있었다. 어느 사이엔가 이 세상의 길들은 모두 사라져버리고 없었다.
나는 가슴을 온통 열어 그 눈발들을 다 받아들이고 싶었다. 그러나 가슴은 열리지 않았다. 엄청난 그 눈발의 위력에 주눅이 들었던 것이리라. 한동안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면 떼 호랑이가 울고 가는 서래봉 한 자락이 깊은 겨울 밤 눈발 속을 가르고 있었다. 어느 사이에 내 어깨에도 눈이 쌓여서 나는 어깨 가득 눈을 지고 서있었다. 그렇게 한참 파묻혀 있다가 내가 발을 옮기려면 이미 그 억센 눈발들은 뚝뚝 길을 끊어내고 있었다.
아, 그날의 서래봉 위로 눈발을 몰아오는 바람 소리 속에서 울부짖던 떼 호랑이들! 그 감격스러운 순간 속에 나는 아무 흔적도 없는 눈사태 속을 뚫고 가면서 귀를 기울였다. 이윽고, 언덕 위로 올라섰을 때였다. 눈발 속에 모든 것은 깡그리 묻혀버렸지만 이 세상에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서로서로 어깨를 맞대고 팔짱을 낀 채 한 몸으로 파르르 떨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산이 큰 가슴을 열어젖히더니 그 품 안으로 빈 들을 끌어들이자 이 세상 가장 먼데서 한 줄기 밝은 빛이 달려와서 마을에 닿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빛을 따라서 하나의 길도 마을로 가닿고 나의 길도 열리고 있었다. 내 가슴으로는 아주 시원한 바람이 한 자락 지나가고 있었다.
요즈음 겨울이 겨울답지 않게 여겨지는 것은 우리들 삶이 너무나도 무덤덤한 탓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겨울을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할 때가 자주 있다. 어쩌면 겨울은 양쪽 볼을 가르는 차가운 칼바람과 지상의 길을 모두 끊어버리는 눈발 속에서 살아나는 것은 아닐까. 겨울이면 나는 다시 그 날의 겨울 내장산에서 맞닥뜨린 눈발에 한 번 더 세차게 휘말려보고 싶어진다.
이 시 『눈발』에는 그러한 순간의 희열과 열정이 반영되어 있다. 겨울, 밤, 어둠, 눈발이라는 시련을 의미하는 이미지의 중층적 상황 속에서 시적 화자는 “내장산 숨결 한 자락으로 / 눈발 속을 간다”는 의지로 맞서고 있는 것이다.
이 시는 나의 첫 시집 『길은 마을에 닿는다』의 표제 시이기도 하고, 또 이 세상에 나를 ‘눈발’의 시인으로 각인시켜 준 시이기도 하다. 나의 첫 시집은 이 시의 한 구절인 “길은 마을에 닿는다”에서 따왔다. 사실 우리가 자신의 초기 시에 대하여 그 의미나 배경을 정확히 이해하게 되는 것은 첫 시집을 내고 나서나 가능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내가 시집을 내고 나서도 한동안은 “길은 마을에 닿는다”는 의미를 명확히 새기지는 못 했던 듯하다. 첫 시집에서 중요한 것은 ‘길’과 ‘마을’인데, 길은 곧 시간성에, ‘마을’은 곧 공간성에 많이 기대고 있다고 본다.
나는 1980년대를 지나온 시인이지만 그 시대를 향해서 직격탄을 날리지는 못 했다. 그러면서도 그 시대에 대하여 아파하고 그것을 어떻게 지양해 나아갈 것인지 고심하기도 하였다. 더욱이 그것을 시를 통해서 어떻게 형상화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한결 어려운 문제로 다가오기도 하였다.
지나보니 ‘길’이란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의 여러 갈래의 길들 모두를 의미한다. 우리가 걸어가는 길은 밝은 길도 있지만 어둡고 시련에 처한 길들이 더 많기도 하다. 그러나 그 길들은 우리가 의도하거나 의도하지 않아도 다가오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걸어오고, 앞으로도 걸어가야 할 길 가운데 우리에게 고통이나 시련을 주었던 길은 다 버릴 것인가. 그럴 수도 없는 일이다. 여기에서 우리 삶의 역설적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 삶은 우리에게 빛으로 다가온 부분에 의해서도 추진되지만, 우리에게 어둠으로 다가왔던 부분들에 의해서도 추진된다는 사실이다.
바로 그게 우리 삶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걸어가는 길은 우리가 원하지 않는 길이나, 다가오지 말아야 할 길까지도 모두 우리를 마을로 닿게 해준다고 믿는다. 이점이 바로 삶의 역설이고 아이러니이다. 나아가 역으로 말하면 우리에게 다가온 시련들이 오히려 우리 생을 더 강화시켜 주며 성장시켜 준다는 사실이다.
첫 시집에 이어 나의 두 번째 시집 『그리운 없인 저 별 내 가슴에 닿지 못한다』은 이점을 좀더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나의 두 번째 시집은 첫 시집을 좀더 천착해 표현한 것이라 하겠다. 내 첫 시집에서의 ‘길’은 비극적 세계관으로 이해하고, ‘마을’은 공동체 삶이 살아있던 마을로 이해한 것이 바로 두 번째 시집이다. 그 결과 비극적 세계관은 「노인의 강」이라는 장시에서 보여주고자 하였다. 또 마을공동체 삶의 아름다움과 활력은 「우리 마을 나무」「마을 당제사」「대동 천렵」「달맞이」「잃어버린 겨울」 등을 중심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하회에 가서 보았던 노인의 삶은 비극적 세계관의 비유로 내게는 강렬하게 다가왔다. 노인은 죽음을 통해서 강을 벗어나는 순간까지 나룻배로 강을 건너 동시대의 삶을 실어 나르는 것이다. 죽음을 통해서 삶이라는 강을 벗어나는 순간까지는! 바로 그 노인이 보여주었던 삶에 대한 열정, 그것은 ‘길’에 걸어가는 우리 인간이 가져야 할 모습의 한 전형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마을’은 우리가 공동체 삶으로 다가서야 할 모습이다. 적어도 나의 유년시절 우리 마을에는 두레와 협동에 의한 신성한 노동과 축제가 함께 하는 삶이 남아있었다.
그런 점에서 나의 시 「눈발」은 여러모로 나에게는 의미 있는 작품이다. 나를 이 세상에 시인으로 세워준 시, 그리고 나의 시집 서두에 놓임으로써 나의 첫 시집의 대표적 성격을 보여주며 향후 시세계의 방향키 역할을 하는 시였다. 아, 나는 그 날의 눈발을 평생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3. 야간비행
        
수년전에 프랑스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쌩텍쥐베리의 탄생 백주년을 기념하는 갖가지 행사를 펼쳤던 적이 있다. 그는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어린 왕자』로 잘 알려져 있다.  프랑스가 이 행사를 펼치는 동안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어린 왕자』는 불티나게 팔리고 그를 추모하는 행렬이 줄을 이었다. 그리하여 그의 죽음의 향방을 찾아 나서려는 일련의 움직임들도 있었으나 그것은 도로에 그치고 말았다.
그렇다. 쌩텍쥐베리는 2차 대전 중에 파일로트로 참전하여 하늘을 날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고로 그는 비행기의 추락으로 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되는 종말을 맞이했다는 것이 우리가 아는 그의 최후의 알리바이이다. 또한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거의가 밝혀진 것이 없기도 하다. 그의 죽음에 대하여는 제 2차 대전 말기에 사하라 사막으로 추락했다, 태평양 어딘가에 추락했다는 추측들만 무성할 뿐이다. 그를 아끼는 사람들이 이 두 곳을 탐사하기도 하였지만 그 것은 불가능한 일일 뿐이었다. 오히려 나는 그의 이 ‘종적을 찾을 수 없음’이라는 맥락이 더욱더 쌩텍쥐베리답고 그의 예술가적 삶에 의미를 부여해준다고 판단한다. 그는 우리가 그의 죽음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곳 어디론가 사라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가 남긴, 나에게 거의 충격적이기까지 했던 말 한마디에서 그의 새로운 존재를 믿고 있는 것이다. 그는 생전에 다음과 같은 말 한마디를 남겼다.  “인간은 자신의 운명과 마주칠 뿐만 아니라, 추월할 수 있어야 한다”
쌩텍쥐베리는 작가로서의 역량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어린왕자』 외에도 『야간비행』이라는 작품을 남겼다. 그리고 그는 또한 실제로 비행조종사로서 ‘야간비행’을 즐기기도 하였다. 나는 그가 남긴 앞의 말 한 마디와 야간비행에서 그의 죽음이라는 의미의 맥락을 찾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는 왜 야간비행을 즐겼을까.
그가 남긴 “인간은 자신의 운명과 마주칠 뿐만 아니라, 추월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알 수가 없다. 아무리 운명을 미리 알고 그것을 극복하고자 해도 눈치 챌 수가 없는 것이다. 다만 인간은 현실에 충실함으로써 과거와 미래에 대한 연결고리를 좀 더 튼튼하게 할 뿐인 것이다. 그러나 쌩텍쥐베리는 인간은 자신의 운명과 마주칠 뿐 아니라, 그것을 추월해야 한다고 했다. 마주친다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운명 앞에 서서 뒤에 오는 운명을 마주 바라본다는 의미일 것이다. 또한 추월해야 한다는 것은 자신의 운명을 앞질러 간다는 것, 자신의 운명을 자기 스스로 만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자신의 운명은 개척하는 것, 나아가서 자신의 운명은 자신이 이끌어가는 것! 이것이 바로 쌩텍쥐베리가 바라본 자신의 운명론이었다고 이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야간비행을 즐겼을까. 인간이 운명은 시간 위에서 펼쳐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해진 시간을 따라가는 것은 바로 인간의 운명에 이끌려가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쌩텍쥐베리는 그냥 앉아서 하루의 시간이 어둠으로 자신을 덮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운명의 지배 아래 놓이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바로 여기에서 나는 쌩텍쥐베리의 야간비행의 비밀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일상의 시간이 지배하는 생을 부정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을 앞질러 가기 위해 그는 빛을 향해 계속 날아가려 야간 비행을 즐겼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야간비행은 자신의 운명을 추월하기 위하여 벌였던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그리고 급기야 그는 또한 자신의 죽음까지도 추월해 버린 것이다. 이것이 상징적으로 쌩텍쥐베리의 예술정신 또는 모든 ‘예술가의 정신’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는 매일 밤마다 하늘을 살핀다. 오늘 밤에도 나는 어둠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는 하늘의 별을 살필 것이다. 나는 지금도 우주의 어느 행성을 타고 쌩텍쥐베리는 시간을 앞질러 4차원, 5차원의 공간을 날고 있으리라고 믿어본다. 그리하여 내가 밤이면 밤마다 하늘을 살피면서 별의 행방을 쫓는 것은 단지 별들을 바라보려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이다.

<약  력>
1987년 『문학사상』 신인상 당선
시집 『길은 마을에 닿는다』외
비평집 『한국 현대시의 지평과 심층』외


<상징으로 읽는 시 / 별>

김완하의  「별 · 4」


나의 별은 내가 볼 수 없구나
항시 나의 뒤편에서
나의 길을 비춰주는 그대여,

고개 돌려 그를 보려 하여도
끝내 이를 수 없는 깊이
일생 동안 깨어 등을 밝혀도
하늘 구석구석 헤쳐 보아도
나는 바라볼 수가 없구나

우리가 삼천 번 더 눈떠 보아도
잠시, 희미한 그림자에 싸여
그을린 등피 아래 고개를 묻는 사이
이 세상 가장 먼 거리를 질러가는 빛이여

어느새 아침은 닿고,
진실로 나의 별은 나의 눈으로
볼 수가 없구나


♤ 한 때 나는 ‘별’을 노래하기로 작정하고 여러 편의 ‘별’ 연작시를 썼던 적이 있다. 그 계기는 내가 쓴 「별」이라는 시에 호감을 갖게 된 어느 비평가 한 분이 “김완하 시인은 ‘별’ 공장을 한번 차려 봐!” 하면서 연작시에 대한 의미를 일깨워 준 것이 기회가 되었다. 누군들 별로 일생을 노래해도 그것을 다 형상화할 수 있으랴. 어떻든 나는 한동안 별 연작시를 쓰다가 어느 사이에 다른 쪽으로 관심이 흘러갔지만 아직도 그 꿈을 버리지는 못하고 있다. 그동안 별 만큼 많은 시인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었던 이미지도 없기에, 시적 완성도를 이루어 내기 쉽지 않을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나는 별을 통해서 우리 생의 역설적 가치를 노래해 보고 싶다. 그것은 이 시에서도 표현하려고 했듯이, ‘반드시 있지만 영원히 닿을 수 없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 생의 진실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영원히 다가설 수가 없는 수평선과도 같은 것이다. 내가 쓴 별 가운데 이러한 생의 속성을 담고자 한 것이 「별 · 4」이다. “나의 별은 내가 볼 수 없구나 / 항시 나의 뒤편에서 / 나의 길을 비춰주는 그대여, // 고개 돌려 그를 보려 하여도 / 끝내 이를 수 없는 깊이”. 그렇다. 별은 항시 나의 뒤편에서만 나를 비추어주기 때문에 내가 눈을 돌려 그것을 보려하면 그 별은 이미 나의 등 뒤로 돌아가 영원히 볼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또한 우리의 생은 너무나도 짧기에 “우리가 삼천 번 더 눈떠 보아도 / 잠시, 희미한 그림자에 싸여 / 그을린 등피 아래 고개를 묻는 사이 / 이 세상 가장 먼 거리를 질러가는 빛이여”라고 표현했다. 이 시의 표현 가운데서 내가 좋아하는 부분은 “그을린 등피 아래 고개를 묻는 사이”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자신의 별을 찾기에 평생을 바치는 것일 터이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어느새 아침은 닿고, / 진실로 나의 별은 나의 눈으로 /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가 닿아야 하는 진실은 멀고 그 반면에 우리들의 생은 짧은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생은 “그을린 등피 아래 고개를 묻”고 있는 순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시인들이여, 그 절망을 넘어서야만 우리 생의 진실은 밝혀질 수 있다. 그 고통의 깊디깊은 밤을 두 눈으로 뚫어지게 응시해야만 한 편의 시가 태어나는 것이다. 반드시 거기에 있지만 우리가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것, 그것이 우리 생의 소중한 가치이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그대와 나와의 거리이다. 별이다. 詩이다.
(김완하)


                  침묵의 힘

                                               김 완 하(시인·한남대 문창과 교수)


모처럼 만의 산책길이었다. 늘 일상에 쫓기며 살아오다가 방학이 되면서 나선 길이었다. 간편한 옷으로 차려입고 가벼운 운동화를 신고 나섰다. 주변의 풀이나 나무들이 한결 가깝게 여겨지고 그것들도 더 친근하게 나에게 다가왔다. 내가 마음을 열고 그것들에게 다가서자 또한 그것들도 나에게 한 발짝씩은 더 가까이 다가서는 것이었다.
길을 따라 걸으며 둑 위에 무성히 자라고 있는 풀을 보았다. 강아지풀은 가는 허리를 휘어 올려 잔바람에 기대어 있었다. 거기 이제 싱싱한 줄기를 뻗어 올리고 있는 호박넝쿨을 보았다. 덩굴손이 휘어잡으려 들어 올린 하늘로 잠시 허공이 긴장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옥수수가 줄기를 힘차게 밀어올리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옥수수는 여물 것이다. 옥수수, 그것은 고향의 맛이자 어머니의 따스한 정이 느껴지는 먹 거리가 아니던가.
비탈을 따라 오르자 뻐꾸기가 울기 시작했다. 소나무들이 우거진 숲속에서 소리만 들려오고 몸은 숨겨 보이질 않았다. 누군가 그랬다. 뻐꾸기는 소리로만 이 지상으로 자신의 존재와 메시지를 타전하고 몸은 절대로 보이지 않는다고, 그래서 그것은 바로 예술가들의 삶이 아니냐고. 그렇다. 요즈음처럼 모든 것이 열려있는 시대에 뻐꾸기의 생태는 눈여겨 볼만하겠다.
숲에는 언제나 그렇듯이 한 종류의 나무만이 서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서로를 품으면서 자신의 존재를 더 강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가령 숲에 하나의 나무들만 서있다면 일사 분란하기는 하겠지만, 그것들은 자신의 존재나 가치에 대해서 상대적인 평가를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소나무는 오리나무와 대조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느끼고, 또 상수리나무는 떡갈나무와 대비됨으로써 상대적인 의미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비탈을 올라가자 약수터가 있었다. 그곳에서 한 표주박의 물을 마셨다. 그러고 보면 우리 생도 이렇게 하나의 시련을 넘고 나면 휴식과 여유가 주어지는 것이다. 그 옆에는 벤치도 있어서 나는 거기 앉아 잠시 숲을 바라보았다. 아까 걸으며 보던 숲과는 달리 앉아서 보는 숲은 좀 더 짜임새 있는 모양을 갖추고 다가왔다. 그리고 나무와 나무, 풀과 풀 사이에 흐르고 있는 침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무언의 대화, 그들만이 느끼는 기쁨이기도 하였다. 바로 그 침묵의 깊이에서 숲의 질서가 생성되고 그 침묵의 힘으로 나무들은 하늘 높이 솟구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도 그 옆에서 비로소 내 안 가득히 차오르는 침묵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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