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장소현 4번째 시집
<사탕수수 아리랑>을 읽고

                                            조옥동/ 시인

작가 장소현의 “사탕수수 아리랑”은 긴 민요시다. 미주이민 100년사를 민요가락 아리랑에 얹어 애환과 희망을 노래하였다. 1902년 12월22일 겨울바람 몰아치고 구슬픈 뱃고동소리 함께 울며 인천 제물포 나루를 떠나 1903년 1월13일 호놀룰루 항구에 도착한 미국상선 갤릭호에서 조선 사람들 한 무리 내리니 이들이 고용된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부터 한민족의 미주 이민 역사는 시작되었다.

서울의 민영 시인은 “사탕수수 아리랑”을 역사성을 띤 서사시라 했다. 이제껏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미주이민 아리랑을 처음으로 노래하고 싶은 획기적 작품이다.

고향엔 돌아 갈 엄두도 못 내고 1941년 세계대전, 1945년 8.15해방과 조국 독립까지 미주에서 맞았다. 피땀으로 일군 생명줄 같은 삶의 터전을 사이구 폭동으로 태우고 오늘의 코리아타운을 이룬 우리 부모는 유목민, 자의반타의반 어쨌거나 살아남아야 했던 디아스포라…  꽃가루처럼 여기저기 떠밀리며 살아 온 이민자의 삶과 마음을 알리려 겨레의 정신바탕인 아리랑 가락에 맞게 지은 것이다.

우리 가는 곳은 어디나 사타수수밭/아리랑 가락마저 말라버린 사탕수수밭/핏빛 검붉은 땅 밭이랑마다,/ 그 팍팍한 구석구석에 민들레/ 노란 민들레 다소곳이 피어/ 웃으며 피어 아리랑 수줍게 피어 아라리요/
………
끝내 미국사람이야 될 수 있나/ 김치 목청 된장 가락으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우리 사는 곳 어디나의 한 가락)

서럽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꼭 마찬가지/ 꿈꾸기는 그제나 오늘이나/ 꼭 마찬가지/ 쌍무지개처럼 아리랑 가락 건듯/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뿌리 더듬기의 한 가락)

여기가/ 새 고향인걸요. 마음의 고향인걸요./ 고향 잃었다고 생각 안 해요. 고향이 하나 더 생겼다고 생각하면 즐거워요. 내 발로 왔는데 투덜대면 뭐 해요./(아니예요 아니예요의 한 가락)

이민자의 삶은 어디서나 언제나 고달픈 사탕수수밭 이라. 구석구석에서 억세게 뿌리내린 민들레, 다소곳이 꽃 피어 정착하고 있지만 세종대왕 영어에 푹 젖어 어쩔거나. 그래도 무지개 꿈을 아리랑 가락에 걸면 이 땅도 내 고향, 쌍무지개 신명을 내자고 노련한 작가는 혼의 노래로 능청을 부려본다. 이는 읽는 시가 아니고 노래하기 위한 가사다.

-가세 가세 미국 가세 개국진취 강남가세/-개국 잔치? 어디서 개장국 잔치하나? 어서 가서 한 그릇 얻어 먹세! -무식한 놈! 개국진취도 모르느냐, 개국진취! 개장국 먹으러 어서 가세! 배고파 미치겠다./(첫 이민배의 한 가락)

허름한 농막에서 꼬부랑 새우잠 자고/ 새벽 넉 점 반에 일어나 밥 지어 먹고/ 트럭에 실려 덜컹덜컹 털커덩/……삿대질 한 번 제대로 못해보고/ 아파도 쉬지 못하고 병원에도 못 가고/ 한 달 스무 닷새 뼈골 빠지게 일하면 달랑 16달러/……거기서 뱃삯 빚 갚고, 고향에도 좀 보내고/……못난 놈 기다리시는 엄니 보란 듯/ 덩기덩기 금의환향 돌아가긴 다 틀렸네/……우리 엄니 잘 계시더냐? 행여 아프신 덴 없으시더냐? 우리 순이 지금도 하염없이 울더냐? 눈물로 행주치마 적시며 하염없이……석양에 긴 그림자 가냘프게 흔들리더냐?/ 끼룩끼룩 갈매기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사탕수수밭의 일부)

1902년 고종 임금 시절, 세상은 어수선하고 흉년까지 들어 민심은 흉흉, 풀뿌리 나무껍질마저 없어 돈 벌어야 고향도 조상님도 살리자고 돈 벌이를 떠났다. 개국진취 미국으로 첫 이민 배를 탔다. 돈 벌어 금의한양은 단지 꿈이었던가.
사탕수수 줄기보다 더 질긴 목숨 희망의 끈 놓을 수는 없지 하고. 아리랑 가락처럼 질기게 아리랑이라. 우리에겐 내일 모레 글피가 있으니 그래 그렇게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맵고 눈물 나는 고춧가루아리랑을 어이하랴.

-하라부지 허리는 왜 그리 꾸부정하세요?/……-아니, 외로워서 그래, 외로움이 사무쳐서/……우리 할아버진 아리랑으로 모든 걸 이겨내셨다지/-하라부지의 하라부지는 그렇게 잘 부르셨나요? 한 가락 뽑으면 사탕수수들도 울었다지/ -하라부지는요? 난 못해, 아리랑 잃어버렸어! 그래서 외로워…-난 더 못하는데요?/_그래서 더 외롭지…/-배울래요, 나도 배울래요! 아리랑 배울래요! 꼬부랑 소리로라도 부르고 싶어요./ 알리랑 알리랑 알랄리유 알릴랑 꼬오개로 너머간따아/(사탕수수밭의 일부)

작가는 나성아리랑도 좋고, 뉴욕아리랑도 좋고 이제는 많은 아리랑이 부를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미주아리랑을 노래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는 “서러운 아리랑 사탕수수 아리랑 파도나 넘어나 간다.”를 시초로 이민 1세, 1.5세가 아리랑 하면 다음 세대는 알리랑 알릴랑 알랄리유… 아리랑 잊지를 말고 꼬부라진 아리랑 함께 넘어가자고.

100여년 뒤, 너와 나도 사진 한 장 달랑 들고,/ 두리번 두리번거리며…/이민광야 아리랑 아라리요.// 어머니 나는 어째요 어쩌면 좋아요/되돌아 갈 수도 없어요 너무 멀어요/ 너무 멀리 와버렸어요/ 무심한 갈매기만 끼륵 끼륵 끼르륵 아리 아리랑/ 아리랑, 태평양 아리랑/(사진 한 장 달랑 들고의 한 가락)

조국 광복군에 바친 돈이 그 당시 300만 달러, 그 당시 월급이 30 달라 정도였다니…조국의 독립과 통일 아리랑은 눈물의 아리랑이라. 혹시 이민자에 시인도 있었을 가? 한두 명이라도 있어 사탕수수 아리랑노래가락 지어 부르기를 기다리고 바라다, 작가는 태평양 아리랑, 독립운동 아리랑, 삼팔선 아리랑을 이 땅에서 부른다.  

나라 없으면 우리 돌아갈 곳도 없으니/ 불러라 독립군 아리랑 사탕수수밭에서도/……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 입고 바친 / 붉은 피 같은 독립자금, 그 뜨거운…// 가슴 저 아래에서 핏물처럼/ 아련히 들려오는 통일 아리랑 소리/(독립군 아리랑의 한 가락)

남북으로 찢어져서 두 동강/ 허리잘려 두 동강/ 이제 다시 고향에 갈 수 없네/ 다시는 갈 수 없네/ 백두산도 금강산도 갈 수 없네/ 서러운 아리랑 삼팔선 아리랑/ 사발 그릇 깨지면 서너쪽 나고/ 삼팔선 깨지면 한덩어리 된다는데…/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1945년 8월15일)

메마른 땅 한가운데 뎅그머니 서울시 나성구 서러운 아리랑 아라리요. 어쩌나 Lost Angeles! 불에 타 시커먼 잿더미 천사의 도시! 슬픔에 익은 가슴에서 솟구치니 아리랑 갈수록 절창이라.

  불탄다 내가게, 무너져 내리네 목숨 같은 삶의 터전/ 녹아 내리네 아메리칸 드림./Lost Angeles!…이 지구 위 온 인류의 피부색/ 하나로 모아 뒤섞으면/무슨 색이 될까?/ 혹시는/아리랑의 색/ 그 깊고 진한 그래서 서러운…
밖으로 삐져나온 점 하나/ 슬며시 안으로 밀어 넣으면/ 너 나 없는/ 너나들이 아리랑/ 그게 왜 그리도 어려운지/ 아직도 몰라, 알 수 없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사이구의 일부가락)


미국과 고향 그 중간에 끼어 양간도 아리랑, 서글픈 아리랑이라. 미국에서는 영원한 나그네, 미국보다 더 미국 같은 고향에 가면 이방인, 재미똥포 미국거지 택시 운전사도 금방 알아보는 촌놈으로 변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미끈덩 본토 영어로 나는 신토불이 훈민정음으로 김치영어 된장잉글리시로 용케도 살아남아 서울시 나성구 아리랑 사탕수수 아리랑 이어서이어서 불러 보자고, 작가는 계속 가락을 뽑았다. 춤을 추리라! 어디 기뻐서만 추는 것이랴. 슬퍼서만 추는 것이랴.

한편 작가는 이민100주년 2003년 정월 초하루 새해 아침, 로즈퍼레이드 꽃차보고 쌤썽…헌데이…그저 자랑스러워 울컥 울었다. 발전한 조국이 자랑스러워. 그런데 거기 아리랑은 없었고 아리랑 소리 들리지 않아 아지랑이 미국 땅에서 죽었다고 그 기묘한 소통, 그사이 텅텅 비어 아득한 아득함을 아리랑으로 메울 수 없느냐고 슬퍼한다. 그리고 너희들이 만들어라, 만들어야한다고.

신바람 나는 아리랑을 컴퓨터로 디지털로 아메리카 아리랑 세계 아리랑 우주 아리랑 알리랑 알릴랑 알랄라요오오를. 작가의 혀도 조금씩 고부라지며 다음 세대에게 다시 오는 이민 100주년 아리랑 서사시의 확장을 염원하고 있다.

할아버지 제가 부르는 꼬부랑 아리랑/ 들어보실래요/ 알리랑 알리랑 알랄리유/ 알리랑 꼬오개로 넘어가안따아/ 저기 저어기 쌍무지개 건듯/ 알리랑 알리랑 알랄리유 싸땅수수 알리랑 알릴랑 꼬오개로 너머가안따아…(너희들의 아리랑에서)

현실은 원하던 원하지 않던 과거에 의해 구속당하고 있다. 따라서 과거의 구속에서 해방되는 힘 곧 정신적 또는 물질적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싸움이나 부정이 아니고 포용과 화해이다. 역사는 결국 과거와 계속 화해하며 흘러가는 시간의 강물이다.  

언어의 멋과 맛을 겸한 여유와 해학을 만인의 간절한 몸짓인 가락으로 화해의 길을 찾아 온 것이 나라마다 지방마다 골골마다 전해오는 민요라 한다면 우리나라의 아리랑은 그 중 하나이다.

이제 한 민족의 디아스포라 이민 100주년을 지나고서야 상상의 함량이 누구보다 풍부한 극작가이며 소설가인 노마드, 장소현 시인이 이민 아리랑을 시작한 일은 이민 문학사의 한 장을 이루는 수확이다.

어느 날 그의 <사탕수수 아리랑> 민요시가 아름다운 가락을 만나 희로애락의 절정에서 터뜨려지는 몸의 시 바로 춤도 함께 무대에 올려지기를 기다린다. 나아가 현대의 서유럽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고 오늘날까지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그리스국민의 대 서사시 <일리아스>나 <오디세이아>처럼 한국문학의 영원한 민족문학으로 꽃피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6 좋은 수필 창작론 -----박양근 (부경대학 영어영문학과 교수) 조만연.조옥동 2010.11.20 834
15 시인의 꿈과 상상력(시 창작을 위한 몇개의 메모)---김완하 조옥동 2007.06.03 817
14 현대시조의 좌표와 방향 ----- 김학성 (성균관대 교수) 조만연.조옥동 2012.04.16 755
13 "문학세계초대석" 사막의 시인 황갑주 선생님을 만나다/ 2013년"문학세계" 22집 조만연.조옥동 2013.12.14 734
» 작가 장소현 4번째 시집-<사탕수수 아리랑>을 읽고---조옥동 조만연.조옥동 2012.04.16 633
11 현대시조에서 언어의 참신성/2011년5월 '시문학회' 월례회 자료-----조옥동 조만연.조옥동 2012.04.16 599
10 엘에이 시문학의 내일을 위하여/2010년 한국<시와시>겨울호 대담 조만연.조옥동 2012.03.13 570
9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 나탈리 골드버그 조만연.조옥동 2010.11.27 569
8 좋은 수필/윤재천 조만연.조옥동 2011.06.09 549
7 [창작강의] 창조를 위해 모방하는 법부터 익혀라 /안도현 시인,교수 조만연.조옥동 2012.03.19 527
6 우리는 왜 문학을 하는가/박태순 소설가 조만연.조옥동 2010.11.15 517
5 목회자 최선호 시인의 삶과 문학/(『나의 엘로힘이여』시집을 중심으로) 조옥동 2016.01.30 496
4 시인 장소현의 시세계와 시인론/사람냄새 널리 퍼지다 조옥동 2016.01.30 377
3 그곳에, 문도文徒의 땅이 있다/박양근 교수 조만연.조옥동 2011.08.13 352
2 최선호 목사님의 <시편정해>출판에 드리는 축시 조만연.조옥동 2013.07.25 251
1 조만연,조옥동 부부의 삶과 문학(미주문인 탐구)/<문학세계>-25호-2016----장소현 진행,정리 조옥동 2017.01.11 246

회원:
0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0
어제:
0
전체:
97,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