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오늘:
174
어제:
260
전체:
4,970,986

이달의 작가
2021.08.16 14:27

토르소

조회 수 5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토르소

이월란 (2020-6)

 

세월은 두 눈의 정체를 의심하고 있어요

시선을 거두었을 때 비로소 가슴이 자랐어요

말문을 열고 당장 뛰쳐나가고 싶은

길들이 발자국을 지우는 시간

여전히 두 발은 의식이 없죠

빈손으로 저질러놓음에도 익숙해졌어요

나를 껴안아 줄 두 팔이 자꾸만 짧아지네요

너무 많이 품고 말았죠

한 그루 나무를 닮기 위해 여기까지 온 듯

 

사각지대의 시선과 마주쳤을 때

섬뜩했던 미완의 응시를 기억해요

원형에 가까운 후회의 뒷모습이었어요

태동 없는 아기처럼 죽은 척 해볼까요

사지 멀쩡한 불구가 된 건

바로 내가 낳은 아들이었어요

유년의 언덕을 구르며 놀 땐

차라리 팔다리가 거추장스러웠는데

 

환상통으로 피어난 꽃들이 만발해요

체온만으로도 눈부신 천형이었어요

이제 막 태어난 거죠

손닿은 곳이 모두 죄가 되어버린

참을 수 없는 가려움증

네 개의 흔들림이 모두 사족이었음을

시인하고 목이 잘린 순간을 기억해요

팔 다리가 다시 자라나면 그때서야

문득, 생각을 닮은 얼굴도 보이겠지요

몸속에서 자라는 몸

어제의 환영지를 어루만지다보면

시간 밖에서 자꾸만 팔다리가 자란다네요

 

하루에 한 번씩 무덤에 들러요

어느 날은 왼쪽 눈을 떼어놓고 오고

어느 날은 오른 발을 떼어놓고 와요

더 이상 놓고 올 것이 없었을 때

세상이 아름다워지기 시작했을 거에요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651 오디오북 이월란 2021.08.16 101
1650 물병과 병물 이월란 2021.08.16 88
1649 RE: 새벽 이월란 2021.08.16 89
1648 다섯 개의 비밀 이월란 2021.08.16 79
1647 언니 이월란 2021.08.16 79
1646 안녕, 눈동자 이월란 2021.08.16 74
1645 클래스 바 (Class Barre) 이월란 2021.08.16 68
1644 바나나 속이기 이월란 2021.08.16 67
1643 오래된 가족 이월란 2021.08.16 35
1642 창세기 다시보기 이월란 2021.08.16 36
1641 공항 가는 길 이월란 2021.08.16 31
» 토르소 이월란 2021.08.16 57
1639 접속 이월란 2021.08.16 33
1638 홀수의 미학 이월란 2021.08.16 41
1637 야경 찍는 법 이월란 2021.08.16 29
1636 마스크 이월란 2021.08.16 28
1635 노을 5 이월란 2021.08.16 39
1634 흐린 날의 악보 이월란 2021.08.16 30
1633 동백아가씨 이월란 2021.08.16 34
1632 눈길 이월란 2021.08.16 31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83 Next
/ 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