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uck

Ode to 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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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긴 아깝고/ 박철

 

일면식 없는

한 유명 평론가에게 시집을 보내려고

서명한 뒤 잠시 바라보다

이렇게까지 글을 쓸 필요는 없다 싶어

면지를 북 찢어낸 시집

 

가끔 들르는 식당 여주인에게

여차여차하여 버리긴 아깝고 해서

주는 책이니 읽어나 보라고

 

며칠 뒤 비 오는 날 전화가 왔다

아귀찜을 했는데 양이 많아

버리긴 아깝고

 

둘은 이상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뭔가 서로 맛있는 것을

주고받은

그런 눈빛을 주고받으며



시집 작은 산』 (실천문학사, 2013)


시집을 내본 경험이 있는 시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이와 유사한 상황에서 씁쓸함을 겪었음직하다시집을 내는 방식에는 자신이 소요경비를 모두 부담하는 자비출판과 상업적 판매를 염두에 둔 기획출판이 있다그런데 기획출판은 전체 시집의 5% 안팎넉넉히 추정해도 10%를 밑돌고 나머지는 거의 자비로 출판하는 것이 문단의 현실이자 비애이기도 하다그런데 나처럼 어중간한 시인이 기획출판을 하게 되면 오히려 출판사 측에 손해를 끼치진 않을까 그 부분이 또 걸리고 염려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상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뭔가 서로 맛있는 것을 주고받은’ 시인으로서는 잘 알지도 못하는 평론가에게 보내기보다 백번 잘 한 짓이라 생각했으리라이렇게 매콤한 아귀찜이 되어 돌아오는 시를 쓰기만 해도 시인은 참 행복하겠다나도 이런저런 고민이 없는 건 아니지만 꼭 보내고 싶은 곳만 시집을 보내고자 한다내 시운동의 궁극적 목표 가운데 하나가 시집의 무상증정 풍토가 바뀌어 시집을 사서 읽는 분위기의 조성이다시원찮은 내 시집 역시도 언감생심 그 같은 대접을 받으면 좋겠지만내 아는 사람 가운데 아무리 그래봐야 소용없을 분들에게는 도리 없이 시집을 보내드릴 작정이다.(해설,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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