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 생가와 하이델베르크 기행

2016.06.20 07:19

신효선 조회 수:301

괴테 생가와 하이델베르크 기행

꽃밭정이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수요반 신 효 선

큰아들이 해외 파견 근무로 파리에 가 있다. 우리 부부는 아들 식구들이 보고 싶고, 여행도 할 겸 파리를 찾았다. 오늘은 파리에서 기차를 타고 4시간 정도를 달려 프랑스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 도착했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은 독일에서 가장 이용객이 많은 역이며, 유럽 각지로 향하는 열차 편이 모이는 기점이기도 하다. 민박집에 짐을 풀고 근처 시내를 둘러보았다. 다음 날 여행 일정에 따라 시내관광 도중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생가를 가게 되었다.

1749년 8월 28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나 독일 문학의 최고봉으로 불리는 괴테는 세계 문화사의 거인으로 인정받는 작가다. 그는 르네상스 거장다운 다재다능한 재능을 갖추었다. 과학에 관한 저서만도 14권에 이를 정도로 그가 쓴 방대한 양의 저술과 그 다양성은 놀랄 만하다. 그는 황제의 고문관인 아버지 요한 카스파르 괴테와 프랑크푸르트 시장의 딸인 어머니 카타리나 엘리자베트 텍스토르 사이에서 태어나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다. 그는 8세부터 시를 짓기 시작하여 시와 희곡 등을 습작하면서 많은 작품을 탄생시켰는데, 그의 걸작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파우스트〉를 바로 이 집에서 창작했다 한다.

나는 괴테 하면 그의 저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떠올리며, 그의 슬픈 사랑을 생각할 뿐, 괴테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었다. 하지만 막상 세계 문학사의 거장 괴테의 생가를 직접 가 본다고 생각하니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했다. 내가 괴테의 생가를 찾아본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괴테 자신의 슬픈 사랑을 토대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자신의 친구인 요한 케슈트너의 약혼녀 샤를로테 부프를 짝사랑한 경험과 친구인 카를 예루잘렘이 유부녀에게 실연당해 자살한 사건을 소재로 썼다 한다. 이 작품으로 인해 유럽의 많은 젊은이가 주인공의 옷차림을 따랐고, 베르테르를 모방한 자살이 유행했다 한다. 이는 당시 괴테의 문학이 얼마나 영향력이 컸는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가이드의 안내로 괴테의 생가(GOETHE HAUS)에 도착했다. 괴테의 생가 바로 옆에 괴테의 생애와 그의 가족에 관한 사진과 작품 등이 전시되어 있는 괴테 박물관(GOETHE MUSEUM)이 나란히 있었다.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적갈색의 5층 저택인 괴테의 생가는 괴테가 태어나서 청년기까지 살았던 집이란다. 널찍한 박물관 1층에 전시된 작품들을 둘러보고 괴테의 생가로 건너갔다.

1층에는 당시의 조리대와 그릇 등이 정리된 식당과 거실 등이 있었다. 2층 음악의 방에는 역사적 가치가 높은 악기와 피아노가 놓인 방이 있었다. 가족들은 이 방에서 파티를 열거나 음악을 연주하며 화목을 다졌다고 한다. 외조부모의 초상화가 있고, 아버지의 서재와 세계에서 가장 값비싸다는 대형 골동품 시계가 있었다. 3층에는 괴테가 태어난 방과 부모의 방 등이 있었다. 또한, 작은 도서관과 같이 수많은 장서가 있었다. 괴테는 4층에 있는 ‘시인의 방’에서 이 소설을 집필했다 한다. 괴테의 생가의 바닥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삐걱삐걱 소리가 나서 신경이 쓰였다. 나무로 만든 바닥이 오래되다 보니 그런것 같았다.

이 집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완전히 파괴되었는데, 전쟁이 끝난 후 1951년에 원래의 모습으로 재건해 놓았다 한다. 다행히 내부 살림이나 유품들은 전쟁 전에 괴테를 사랑하는 독일인들이 안전한 곳에 보관했다가 옮겨 놓았다 한다. 독일인들이 괴테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짐작이 간다.

이튿날 프랑크푸르트에서 버스로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했다. 하이델베르크는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하이델베르크대학이 있는 중세의 낭만이 가득한 아름다운 도시이다. 또한, 이곳은 하이델베르크 성이 있고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그의 연인 마리엔네 폰 빌레어와 함께 한 추억이 있는 곳이다. 62세의 괴테가 30세의 유부녀 마리엔네와 사랑에 빠진 곳이다. 후일 마리엔네는 괴테와의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리며 지은 시 ‘하이델베르크 성’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여기서 나는 행복했으며, 사랑했고, 사랑받았노라고.”

하이델베르크에서 활동했던 철학자들이 산책했다고 하는 철학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철학자의 길’은 숲 속 2km에 이르는 돌담길이다. 독일에는 헤겔, 막스 베버, 괴테, 칸트 등 내로라하는 철학자들이 많다. 그들이 이 동산에 올라 즐겨 산책했다 한다. 널리 알려진 이 길은 실제로 괴테, 헤겔 등 당대의 유명한 철학자들이 거닐며 사색에 잠겼던 곳으로 유명하다. 양쪽으로 돌담이 형성된 이 길은 처음 입구부터 나의 호기심을 자아내, 나는 건강을 잊은 채 가보기로 했다. 평탄한 산책길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숨이 찼다. 다른 사람들은 잘도 가는데 나는 조금 오르다 힘이 들어 포기하려 했다. 철학의 길도 건강할 때 걸어야지, 나 같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에겐 철학은커녕 고뇌의 길이었다. 중턱에 가면 전망대가 있다는 가이드의 말에 힘입어 용기를 내어 올랐다.

전망대에 당도하니 의자와 벤치가 놓여 있었다. 철학자의 길에서 조망해보는 하이델베르크 성, 네카강, 칼테오드로 다리가 한눈에 들어왔다. 과연 철학자의 길은 무언가를 생각하게 하는 길 같았다. 괴테는 철학자의 길을 산책하면서 <파우스트>와 희곡, 기행문, 소설, 해부학, 지질, 광물, 식물, 동물, 색채론 같은 학술논문까지도 구상하였을 것이다.

뉴턴에서 아인슈타인까지 수많은 수학과 과학자들도 이런 산책과 함께 사색의 시간을 가졌기에 위대한 발견을 했을 것이다. 이들의 이런 사색의 시간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인류의 역사는 지금과 같은 문명을 만들어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인류의 문명은 실험실과 연구실 그리고 강의실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런 산책길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지나 보다. 힘은 들었지만, 나만의 추억의 길을 걸어 본 것 같아 다녀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현대인들은 홀로 조용히 산책하면서 사색하는 시간을 얼마나 가지고 있을까? 사색은 자기와의 대화이고, 자연과의 대화이며, 신과의 교류라는데, 자신만의 깊은 사색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나도 더 많은 사색의 시간을 가져 야겠다. 대문호의 발자취를 걸으면서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

(2016.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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