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여행기(2)

2016.06.24 14:02

김학 조회 수:45

날아가는 밥

동유럽 여행기②

                                                                                                               김학



국여행을 할 때마다 느끼는 불편은 음식이다. 날마다 끼니때면 쌀밥에 된장찌개 등 한식요리를 즐겨 먹던 버릇이 되살아나서 그렇다. 호텔에서 식사를 하고 나면, 배는 부른데도 무엇인가 허전하기 마련이다. 이번 동유럽 여행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외국여행 때는 호텔에서 잠을 자고 아침식사는 으레 호텔식당에서 하기 마련이다. 이번 여행 때도 마찬가지였다. 첫날 머물렀던 헝가리 부다페스트 파크 인 호텔에서도 아침 산책을 마치고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벌써 우리 일행과 서양 친구들이 어울려 식사를 하고 있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김치는 보이지 않고, 밥솥과 국솥은 눈에 띄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빵과 삶은 달걀, 과일 등으로 배를 채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아내는 어디서 밥을 한 숟갈 가지고 와서 일행이 가져온 고추장으로 비벼먹었다. 그 밥은 찰기가 없어 불면 날아갈 듯 버글버글했다. 그래서 나는 그 밥을 「날아가는 밥」이라고 별명을 붙여 주었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아시아인들도 많이 찾는 호텔인데 아시아인들을 소홀히 맞이하는 것 같아 아쉬웠다.

헝가리를 떠나 오스트리아와 체코, 독일에서도 다를 바 없었다. 동유럽 여행 내내 가이드의 깃발을 따라 다니는 중국인이나 한국인 등 아시아인 관광객들이 많이 눈에 띄었는데 호텔식당의 메뉴는 달라지지 않고 있었다.

오래 전 아프리카 여행을 할 때는 이렇지 않았다. 호텔식당에는 으레 김치와 쌀밥 그리고 국이 늘 준비되어 있었다. 비록 종업원들은 아프리카인이었지만 음식은 우리 입맛에 맞는 식단이어서 아무런 불편을 느낄 수 없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아프리카의 호텔음식을 잊을 수 없다.

오늘은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를 둘러보고 오후에는 오스트리아의 비엔나로 떠나야 하기에 짐을 꾸려 관광버스에 올랐다. 부다페스트는 두너(Duna)강 왼쪽의, 산이 많은 부다(Buda)와 오른쪽의 평지인, 페스트를 합쳐 부르는 이름이다. 이 두 도시가 하나로 통합된 것은 1872년이라고 한다.

돌이켜 보면 헝가리의 역사도 우리나라처럼 기구한 편이다. 9백여 회의 외침을 받았던 것만 보아도 그렇다. 하지만 가까스로 살아남아 지금은 어엿한 독립국가로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노벨상을 수상한 헝가리인이 18명인데 그중 4명은 선진국으로 망명을 했는데 그들 수상자 중 노벨의학상 수상자가 많다고 한다.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헝가리의대에 유학을 온 학생들이 3백여 명인데 그 중 무려 250여 명이 의대생이라고 한다. 이들은 대부분이 우리나라에서 의대에 들어가지 못한 학생들로서 헝가리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마친 뒤 의사로서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헝가리의 광장에서는 젊은이들 10명이 다섯 명씩 마주보고 앉아 바퀴를 돌리며 맥주를 마시는 수륙양용버스 같은 Beer & Bike가 눈에 띄었다. 옮겨 다니면서 술을 마시는 그들의 젊음과 낭만이 부러웠다.

헝가리 여행에서는 잔돈이 필요했다. 날마다 물 한 병을 1유로에 사서 마셔야 하고 화장실에 한 번 가려면 1유로씩 내야 하니 말이다. 1유로에 사 마신 물을 1유로에 버려야 하는 셈이다. 이러한 일은 동유럽 네 나라 모두 다를 바 없었다. 어쩌다 무료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면 횡재를 한 기분이 들었다. 습관이란 그렇게 무서운 일이었다.

부다의 산등성이에 있는 어부의 요새에 올랐다. 1988년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그 요새 밑에는 무덤이 같이 있는 성 미하이 예배당이 있다. 그 요새에 오르니 두너강 건너 페스트지역의 아름다운 경관이 한 눈에 들어왔다. 특히 건너편 국회의사당은 장관이었다. 이 국회의사당에는 365개의 첨탑이 세워져 있는데 이는 1년 365일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날마다 국민을 생각하며 정치를 하라는 뜻이라고 한다.

부다왕궁은 웅장했다. 그곳에서 헝가리국립미술관, 국립세체니도서관, 부다페스트역사박물관을 둘러 볼 수 있었다. 옛날의 왕궁이 박물관이나 미술관으로 활용되는 것은 유럽문화의 한 흐름 같다.

부다성의 주 성당인 마탸쉬성당은 부다 시의 역사와 아주 밀접하다. 이 성당은 많은 수난을 겪었다. 터키가 침공했을 때는 회교사원으로 개조되기도 했고, 화재와 낙뢰로 피해를 입는 등 곡절을 겪었지만 지금은 성경에 나오는 통상적인 장면과 함께 헝가리 역사의 가장 중요한 장면들이 성당벽화에 담겨 있다. 이 성당은 뛰어난 음향효과 덕에 연주회 장소로 번번이 제공되기도 한다. 성당건물의 뾰족뾰족한 첨탑은 한마디로 아름다운 예술미를 갖추고 있다.

또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큰 성 이스튜반성당은 8,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다. 원형 돔은 높이가 96m인데 국회의사당 원형 돔의 높이와 같다. 이 성당과 헝가리 로마가톨릭교회의 가장 귀중한 유물은 성스러운 성 이스트반 왕의 미라가 된 ‘성스러운 오른손’을 예배당에서 볼 수 있다.

짧은 일정 때문에 두너강에 놓인 다리를 밟아보지 못하고,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큰 공원인 바로쉬리게트를 둘러보지 못하고 오스트리아의 비엔나로 떠나게 되어 아쉬웠다.

(2016.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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