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기념축제 현장을 가다

2016.06.25 06:21

신효선 조회 수:63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 기념축제 현장을 가다

꽃밭정이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신효선

옥스퍼드(Oxford)대학교 여러 곳을 살펴보고, 우리는 영국이 낳은 천재 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4.26.~1616.4.23) 생가로 향했다. 셰익스피어 생가가 있는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Stratford upon Avon)에 도착하니, 때마침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 기념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말끔하게 정리된 셰익스피어 거리에는 영연방국기와 만국기가 휘날리고 축제에 참가한 사람들로 넘쳐났다. 거리 곳곳에서는 연극도 하고, 노래를 부르며, 대문호의 삶과 유산을 기리는 축제가 여기저기서 열리고 있었다.

나에게는 정말 행운의 날이었다.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 기념일인 2016년 4월 23일 그곳에 갈 수 있어서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올해로 서거 400주년을 맞는 지구촌 곳곳에서 그의 작품을 공연하는 등 각종 추모행사가 열리고 있다. 영국은 2파운드짜리 기념 은화를 만드는 등 전국이 축제 분위기로 가득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던 영국의 대문호 익스피어의 고향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에서도 각종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23일 아침에는 현지 주민들이 참가하는 축하 퍼레이드가 펼쳐지고, 저녁에는 대규모 불꽃놀이와 촛불 행진이 이어진다고 했다. 다음 날에는 그가 묻혀있는 홀리 트리니티 교회(Holy Trinity Church)에서 추모예배가 열려 라디오로 생중계한다는 것이다.

나는 학교에서 셰익스피어에 대해 배웠지만 잘 몰랐다. 직장에 다닐 때 셰익스피어 전집과 아라비안나이트 전집을 사서 책꽂이에 장식용으로 꽂아놓았을 뿐 진지하게 읽어보지는 않았다. 그러다 나와 함께 책들도 시집을 와서 여전히 책꽂이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

셰익스피어는 1564년 장갑과 가죽가방을 만들어 부를 축적하고, 시장(市長)을 지낸 존 셰익스피어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풍족한 소년기를 보냈지만 그 뒤 가운이 기울어 대학진학을 못했다. 그 때문에 셰익스피어의 작품과 실존 여부에 대한 많은 억측과 이론이 있다. 그는 작품 속에서 새로운 단어를 만들고 조합하여 1만 7,500에서 2만 9,000개 정도의 단어를 썼다한다. 그의 문학 작품은 영어로 쓴 작품 중 최고라는 찬사를 받는다. 그는 희극과 비극을 포함하여 모두 37편의 작품을 발표했다. 시인으로서의 재능도 탁월하여 <비너스와 아도니스>(1593)와 <루크리스>(1594) 등 두 편의 장시(長詩)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의 대표작으로 4대 비극에는 <햄릿>, <리어왕>, <오셀로> 그리고 <맥베스>가 있으며, 4대 희극으로는 <베니스상인>, <한 여름 밤의 꿈>, <십이야> 그리고 <말괄량이 길들이기> 등이 있다.

셰익스피어 생가에 도착하니 입장하려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차례가 되어 셰익스피어 센터에서 입장권을 샀더니 셰익스피어 얼굴이 새겨진 배지를 기념으로 주었다. 셰익스피어 생가는 셰익스피어 사후에 한때 선술집으로도 사용되었다 한다. 1847년 국가에서 이 집을 사들여 셰익스피어 아버지가 부유한 상인이자 이 도시의 시장이었던 1570년대의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한다.

셰익스피어 센터에는 셰익스피어의 가계도와 생애에 관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셰익스피어 생가 1층에는 식당과 가방 생산 공장이 있었다. 식탁에는 식기와 일상적인 식사 준비가 된 모습을 보여주고, 대형 벽난로 주변에는 요리 기구와 고기를 굽는 쇠꼬챙이가 놓여있었다. 한쪽에는 가죽을 가공하여 장갑과 가방을 만드는 과정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2층에는 셰익스피어가 태어난 방과 침대가 있었다. 심지어는 셰익스피어가 어릴 적 사용했던 요람도 재현해 놓았다. 목욕통, 아기 포대기, 어린이 장난감 등 셰익스피어가 당시 사용했던 물건들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거라고 한다. 본 침대 밑에는 어린이, 하인 혹은 방문객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바퀴 달린 낮은 침대도 있었다.

각종 꽃과 나무들로 잘 가꾸어진 널찍한 후원에는 셰익스피어의 대표작 <햄릿>을 유명한 배우들이 와서 공연하고 있었다. 대사 내용은 잘 모르겠으나 관객들이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쉬고 있는 배우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셰익스피어 생가를 나와 셰익스피어가 잠들어 있는 홀리 트리니티 교회로 발걸음을 옮겼다. 셰익스피어 거리는 차량 통행이 통제되고, 축제에 참여하는 사람과 관광객으로 인파가 넘쳤다. 대부분 2층과 3층인 건물들은 영국의 전통가옥의 하나인 검정색 기둥에 벽은 주로 흰색인 목조 주택이었고, 현대식으로 개축한 건물도 간간히 섞여 있었다. 몇 백 년은 되어 보이는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이 작은 마을은 시간이 멈춘 느낌마저 들었다. 이는 거저 된 것이 아니라 옛 모습과 전통을 지키려는 국가와 시민들의 노력의 산물이란다. 북적대는 거리를 벗어나 도심 옆으로 흐르는 에이번 강변을 따라 걸었다. 강 옆에 조성된 넓은 공원에는 축제의 현장을 찾아온 수많은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강에는 가족과 연인들이 보트를 타고, 길옆 잔디밭에도 가족이 자리를 펴고 즐겁게 지내고 있었다.

셰익스피어는 태어나자마자 홀리 트리니티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고, 죽은 뒤에도 이곳에 묻혀있다 한다. 셰익스피어는 극작가로서 뿐만 아니라 극장 소유주로서 생전에 명성과 부를 모두 얻었다. 그런 그가 사후에도 자신의 묘지가 잘 보존되기를 원해 교회 건물 안에 묻혔다 한다. 홀리 트리니트 교회에 도착하니 교회의 문이 닫힌 채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교회에 폭발물이 설치되었다는 정보를 입수한 경찰들이 경찰견을 동원하여 정원을 수색하고 있었다. 잠시 기다리다가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다음 목적지인 코츠월드로 떠났다. 위대한 사람은 시공을 초월하여 인류의 역사와 문명에 끼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가를 새삼 깨닫게 하는 아주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

(2016.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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