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2016.06.28 16:31
다시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한성덕
“이웃집 할망구가 날 보더니/ 가방 들고 학교 간다고 놀린다./ 지는 이름도 못쓰면서/ 나는 이름도 쓸 줄 알고/ 버스도 안 물어 보고 탄다./ 이 기분 니는 모르제?”
83세 늦깎이 나이로 한글을 깨우친 어느 할머니의 ‘내 기분’이라는 시다. 이 시에는 웃음 가득한 할머니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읽는 내내 빙그레 웃음 짓게 하는 이유다. 인생을 ‘다시’ 산다는 기분에 얼마나 좋을까?
아내가 노래를 ‘다시’ 하게 되었다. 그것이 뭐 대단할까마는 적어도 나에게 만큼은 그렇다. 인생에 ‘다시’라는 말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요즘의 아내를 보면서 새롭게 다가오는 명언(?)이다. 세상에는 그 어떤 인생이라도 때가 되면 쓰러지기 마련이다.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서는 것은 자기 몫이다. 어린아이들이야 부모가 일으켜 세우지만 누가 우리를 다시 일어나도록 하겠는가? 그 ‘다시’ 일어남이 인생이라 말하고 싶은 이유는, ‘다시’ 일어나지 못한 사람은 죽었기 때문이다.
그 ‘다시’가 나로 하여금 아내의 선생이 되게 했다. 좋은 선생님은 과연 누구일까? 야단치며 후리치는 선생인가, 아니면 ‘괜찮아, 다시 해보자.’ 하는 선생인가? 나는 당연히 후자 쪽에 머물렀다. 가수는 한 곡의 노래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수십, 혹은 수백 번을 다시 부르고 또 부른다.
아내가 갑상선 암 수술을 받고 또 노래를 다시 부르기까지는 많은 고통과 슬픔이 따랐다. 좌절과 함께 찾아온 상실감이 그 무엇보다 컸을 것이다. 어느 곳에 가든지 노래로써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게 행복이었을 텐데, 질곡의 터널 속으로 빨려 들었다고 느꼈을 게 틀림없다.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서러움이 얼마나 컸을까? 쉰 목소리에 갈라진 음성으로는 노래할 수 없다. 울며 좌절하는 실망의 눈빛이 도를 넘었다. 노래에 대한 불안으로 몸을 떨기도 했다.
국민 가수라 불리는 어느 대중 가수도 갑상선 암 수술을 받았다. 나비 모양의 샘 두 개를 잘라내고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 얼마나 갑갑하고 서러웠던지 ‘자살하고 싶었다.’고 털어 놓았다. 곁에서 아내를 지켜보던 나로서는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는 고백이었다. 노래를 다시 부를 수 없을 것이라는 존재의 상실감, 그 충격에서 오는 고통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노래와 더불어 노래 속에 살다가 노래에 파묻혀 죽고 싶은 마음이 노래하는 자들의 심정일 것이다. 그런데 노래할 수 없다니, 얼마나 괴로웠을까? 아내의 고통을 그가 대변한 셈이다.
어쨌든 아내의 선생이 되기로 한 이상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아내를 대했다. 그리고 ‘여보, 좋아요! 다시 한 번 불러 봐요.’ 하는 말을 반복적으로 끊임없이 했다. 때로는 거드름을 피우며 화를 내기도 했으나 무시하고 ‘다시’를 외쳤다. ‘지금의 이 고통을 참고 노래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찬양의 은사를 영영 거두어 가실 것이라’는 겁박도 서슴지 않았다. 내일의 좋은 선생으로 남기 위한 질타이자 함께 걸어가야 할 십자가의 길이 아닌가?
두 옥타브를 오르내리며 클래식 음악을 가창했으나 시방은 어림없다. 그래도 한 옥타브를 넘어 도레미까지 소리할 수 있다는 것을 감사하며 살고 있다. 그러면서도 더 높은 소리를 기대하는 하루하루의 삶이 더없이 기쁘고 즐겁다. 3년이 된 지금 이 정도의 회복으로 다시 노래를 부르고 있다.
다시 시작하게 된 아내의 노래 속에서, ‘인생은 육십부터’라는 말이 실감난다. 작년 12월부터 참가했던 군산의 작은 콘서트홀을 벗어나 큰 무대로 나서기 시작했다. 4월에는 군산 시민을 위한 찬양 콘서트가 예술문화회관 대 강당에서 있었다. 6월에는 전체 교인 천 명 가까이 모이는 무주 장로교회의 초청을 받았다. 금요일 밤 기도 집회에서 찬양하며 간증을 했는데 우리 자신도 놀랄만한 은혜의 시간이었다. 초청해주어서 감사하고 노래할 수 있다는 교회의 큰 무대가 있어 기뻤다. 그곳에서 연주하는 아내의 모습이 더욱 빛났다.
아무 생각 없이 흘려버렸던 ‘다시’ 라는 말이, 지금은 내 인생의 행복을 채우고 있다. ‘다시’라는 말이 없었더라면, 아니 ‘다시’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내 아내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래서 인생이 즐겁고, ‘다시’ 할 수 있다는 기대감과 희망으로 사는가 보다. 그것은 내일의 꿈이기도 하다. 이 같은 기쁨이 아내의 육십 인생을 새롭게 달구고, ‘다시’ 일어선 데 대한 감사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2016.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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