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람

2016.06.29 10:09

김성은 조회 수:43

집사람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김성은



나는 두 눈을 감고 사는 시각장애인 여자이고, 나와 부부의 연을 맺고 사는 남편은 두 눈이 건강한 남자이다. 이 한 문장으로 남편의 멋지고 숭고한 사랑은 빛을 발하고, 어디를 가나 남편에게는 자연스럽게 '천사'라는 찬사가 붙는다.

나는 전라북도 익산에 살고 있고, 친정은 서울이다. 두 달 전 맞벌이를 하는 우리 부부의 육아문제를 해결해 주실 목적으로 친정 부모님께서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낯선 익산 땅으로 이사를 오셨다. 현재 우리 딸아이는 여섯 살로 유치원에 다니고 있고, 우리 아이가 여섯 살이 되기까지 친정어머니와 남편이 교대로 아이의 주 양육자로 수고해 주셨다.

출산 휴가에 육아휴직 한 학기를 허가 받아 아이 곁에 머물렀던 기간을 제외하고 나는 열심히 직장생활을 했다. 눈이 어두운 엄마를 대신하여 살림 솜씨 뛰어난 초보 아빠가 육아휴직을 하기도 했고, 친정어머니가 우리 집에서 함께 기거하시며 아이를 돌봐주신 기간도 있었다.

맞벌이를 하는 친구들을 보면 누군가는 친정어머님과 함께 사는가 하면, 누군가는 옆 동에 시부모님이 아이를 돌봐 주시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엄마의 능력과 직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개인의 꿈을 포기한 채 전업주부로 전향하여 아이를 키우는 경우도 있다.

오늘 아침 출근을 하는데, 문득 마흔이 다 된 딸의 아침 식탁을 챙겨 주시며 출근하는 나를 배웅해 주시는 친정어머니의 사랑에 가슴이 시큰해졌다. 그러면서 '집사람'이라는 단어가 아프게 내 가슴을 조여 온다.

나의 친정어머니는 우리 아빠의 '집사람'이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엄마는 '집사람'이었고, 내가 아이를 낳아 엄마가 되어서, 할머니가 된 오늘날에도 여전히 엄마는 '집사람'으로 살고 있다.

나는 특수학교에서 나 같은 시각장애학생들을 가르친다. 매일 아침 출근할 곳이 있고, 하루가 저물면 퇴근할 집이 있는 일상은 매우 단조롭고 평화롭다. 학교에 나오면 나는 교탁 앞에 서서 목청껏 수업을 한다. 학생들은 내 말에 귀를 기울이며 열심히 노트 필기를 하기도 하고, 내 목소리 전체를 녹음기에 담으며 치열하게 공부한다.

수업하는 것을 제외하고도 각종 업무를 처리하고, 서류를 작성하고, 조·종례 시간에 학생들에게 들려줄 아름다운 미담을 찾고, 사회를 뜨겁게 달구는 핫뉴스를 검색하며 나의 하루는 바쁘게 흘러간다.

내가 1교시부터 7교시까지 학교에서 울리는 시작종과 끝종에 맞추어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동안, 나의 친정어머니는 '집사람'으로서의 역할에 힘을 쏟는다.

매일 반복되는 청소와 설거지, 식구들의 매끼 식사와 빨래, 젖은 빨래를 건조대에 펴 널고, 옷가지가 마르면 다시 가지런히 개어 옷장에 수납하는 묵묵한 작업을 어머니는 평생토록 해 오신 것이다.

익산으로 이사를 오신 지금은 당신 집안 살림에 다 큰 딸의 살림까지 두 집 살림을 도맡아 하시며 속내를 나눌 벗 하나도 없이 그렇게 여섯 살배기 손녀딸의 말벗이 되어 주시는 품 넓은 할머니가 되셨다.

결혼을 한 다음부터 자연스럽게 남편은 나를 '집사람'이라고 칭한다. 나의 친정아버지도 친정어머니를 '집사람'이라고 칭하신다. '집사람', 내가 마흔이 가깝도록 수도 없이 들었던 단어다. 그런데 문득 왜 그렇게 이 '집사람'이라는 단어가 뼈아프고 미안하게 느껴질까?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사랑하여 결혼을 하면 '부부'라는 이름으로 꽤나 끈질긴 세월을 함께 엮어가게 된다. 그 과정에서 여자와 남자는 부모가 되고, 아이를 양육하며 비로소 어른이 되어 가는 듯하다.

요즘엔 맞벌이를 하는 부부도 많고 여권이 신장되다 못해 역차별 논란까지 빚어질 만큼 양성평등시대가 되었다고도 한다.

젊은 엄마들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사회 활동 비중이 늘어남에 따라 육아휴직을 하는 아빠들의 경우도 늘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조부모님들의 대를 넘은 육아 전쟁도 한창이다.

나는 친정 부모님과 남편에게 육아를 지원 받는 아주 운 좋은 워킹맘이다. 장애를 가지고 아이를 돌보기에 아무래도 위험 부담이 따른다는 이유로 아이가 여섯 살이 되도록 부 양육자 노릇만 하고 있지만, 퇴근 후 아이와 목욕을 하며 물장난을 칠 때면 가슴 가득 행복감이 넘친다.

친정 부모님과 남편 덕분에 나는 온전한 '집사람'이 아닐 수 있다. 주변에는 직장에 다니면서도 '집사람'으로서의 역할까지 다 감당해야 하는 친구들도 있다. 나 개인을 포기하고 집에서 살림하며 아이를 키우는데 기쁨을 얻는 엄마들도 있고, 전업주부로 하루하루 나를 잃어가는 세월에 남모를 서글픔을 삼키는 여자들도 많다.

나는 앞을 볼 수 없다는 신체적 불편함 때문에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할 숙명적 고통을 안고서 살아간다. 남편과의 관계 속에 여느 부부들처럼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서 맹렬하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남들이 환호하는 '천사'라는 한마디에 발끈 치받쳐 오르는 분노와 억울함을 꿀꺽 삼킬 때도 많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인류를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집사람'의 그 위대한 업적을, 내가 아이를 양육함에 있어 '집사람'으로서 나보다 더 많은 역할을 하는 그 남자가, 내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 세상에 묵묵히 한 길을 걷는 많은 집사람들이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빚어내는 만유의 걸작이 바로 '사람'이라는 것을….

내가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쳐봐도 엄마의 장애로 인해 우리 딸아이가 감당해야 할 물리적인 공백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성실한 '집사람'이기보다는 '교사'라는 직업을 앞세운 엄마의 꼼수가 아이에게 어떤 공백을 만들어 주었을지도 모르겠다.

문득 문득 아이의 표정과 몸짓이 궁금해질 때면 나는 한없이 미안해진다. 내 장애가 원망스럽고,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동경과 미련이 못 견디게 아프다. 실컷 아파한 다음 나는 당차게 마주할 것이다. 몇 번이고 무너지고 몇 번이고 마주할 것이다. 나의 하나뿐인 사랑하는 딸이 '큰 사람'이 되는 데에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하여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천하며 단단한 엄마가 되기 위해 부서지고 또 부서질 것이다. 아이에게 물리적인 울타리 노릇은 현실적으로 힘들다 하더라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슴이 지녀야 할 소중한 가치들에 대해,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 믿음, 신뢰, 보람, 인내와 같은 아름다운 씨앗들을 아이의 가슴 속에 나만의 언어로 심어 주고 싶다. 그리하여 우리 딸이 행복 가득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기를, 온화한 가슴으로 이웃을 사랑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2016.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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