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도 사람들의 옛자취

2016.07.05 05:29

김길남 조회 수:135

청산도 사람들의 옛자취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길남



청산도가 나에게 놀다 가라하여 찾아 나섰다. 전남 완도에서 배로 50분 거리다. 배에서 바라보니 청산도는 정말 숲이 우거진 청산이었다. 어느 섬이나 산이 솟아있기에 섬이 된 것처럼 청산도도 거의 산이다. 가장 높은 매봉산이 385m이고 산줄기가 섬 전체로 뻗어있다. 바람이 센 것이 특징이고 비가 많이 내려 물이 풍부하단다. 오래 전부터 청산도 사람들은 산비탈을 일궈 농사를 짓고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으며 살아왔다. 그 흔적들이 오늘날까지 고스란히 남아 슬로시티(Slow city)가 된 것이다.

사람이 처음 산 곳은 매봉산 아래 오목한 곳이다. 산에서는 물이 끊이지 않고 내려오고 능선으로 둘러싸여 바람을 막아주는 곳이다. 물을 이용하여 농사를 짓고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아 살아가기 좋은 위치였다. 벌리마을인데 지금은 집 한 채만 남아있고 사람들이 아래로 내려와 상서리마을이 되었다.

어느 곳에서나 식량이 있어야 하니 논밭이 필요했다. 산비탈이지만 논밭을 만들려고 꾀를 냈다. 계곡에서 시작하여 산위로 올라가며 다랑이 논밭을 만들었다. 지형에 따라 둑을 쌓고 평평하게 골라 논밭을 만들었다. 아래에서 마치면 위에 또 둑을 쌓아 만들어 층계 논이 되었다. 청산도 계곡 어디에서나 다랑이 논을 볼 수 있다.

층계 논 가운데 유명한 것이 구들장 논이다. 구들장은 우리나라 옛날 집의 방고래에 걸쳐놓는 얇고 널따란 돌이다. 구들장 논은 둑을 쌓을 때 제일 밑에는 큰 돌로 쌓고, 그 위는 작은 돌과 흙의 혼합층으로 만들고 맨 위에 진흙을 넣어 만든 논이다. 아래층의 큰 돌 사이에는 물이 흐르는 수로가 있다. 맨 위층의 흙은 진흙을 발라 말리고 그 위에 또 발라 말려 8회를 거듭하면 물이 새지 않는다. 구들장 논은 하나가 아니고 그 지역은 거의 구들장 논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곳에만 있어 국가중요농업유산 1호로 지정되었고,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한다.

바람이 항상 센 곳이다. 태풍의 길목에 있으므로 집을 지어도 어지간해서는 막아내기 어렵다. 그래서 돌담장을 집의 높이만큼 쌓아 바람을 막았다. 상서리마을에는 지금도 그런 돌담장이 온 마을에 남아있다. 사람 키보다 높은 담장이 집 높이와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조상들의 자연에 순응하려는 지혜가 엿보였다. 몇 년 전에 불어온 볼라벤 태풍 때 오래 된 집은 피해가 없었는데 현대식으로 지은 펜션은 모두 날아갔다고 한다.

면 규모의 조그만 섬이지만 만이 몇 군데 있고, 그곳에 마을이 있으며, 농사를 지을 만한 논밭도 있다. 태풍 때는 바닷물이 날아와 농작물의 피해가 컸다. 어떤 때는 돌도 날아왔다고 한다. 그것을 막으려고 가로로 촘촘히 소나무를 심었다. 신흥리 방풍림에 서있는 소나무는 겉에 상처가 여기저기 있었는데 돌에 맞아 생긴 상처란다. 섬 전체에 소나무로 된 방풍림이 4곳 있었다. 살아가기 위한 슬기로운 모습이었다.

구경 오는 사람이 많으니 자고 갈 곳이 필요했다. 몇 군데 펜션이 들어섰다. 필요하여 생겼지만 슬로시티에 맞지 않는 모습이다. 옛 모습 그대로가 좋은데 예쁜 얼굴에 검은 점처럼 느껴지는 게 펜션이다. 잠자리도 옛집에 마련하면 어떨지 생각해 볼 일이다.

나는 구경으로 끝났지만 조상들의 삶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려니 많은 인내와 노력이 뒤따랐을 게다. 다랑이 논을 만들며 일일이 돌을 날라 무너지지 않게 쌓고 흙을 옮겨 덮으려니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을까. 비가 와 무너지면 다시 쌓고 무너지면 다시 쌓았을 게다. 돌담도 겉이 가지런하게 쌓은 것을 보면 힘들었을 것 같다. 울퉁불퉁한 돌을 이리저리 살펴 고르고 골라 하나하나 올렸으니 그 공력이 대단하다. 얼마나 잘 쌓았으면 비바람에 끄덕도 않고 오랫동안 버틸 수 있었을까. 방풍림도 마을 공동으로 나무를 심고 가꾸며 어려웠을 것 같다. 죽으면 또 심고 피해를 입으면 또 심어 가꾸었을 게 아닌가. 한 해 두 해가 아니고 오랫동안 가꾸었기에 오늘날까지 남아있을 게다. 먼저 살다 간 사람들의 끈질긴 노력에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조상들이 대대로 내려오며 일구어놓은 흔적들이 남아 있어 사람들이 찾아온다. 삶의 자취에서 그들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다. 선조들의 아름다운 삶의 흔적이 오늘날 슬로시티의 바탕이 되었다. 옛사람들의 노고에 고개 숙여 감사드리며 청산도의 하루살이를 마쳤다. 누구나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섬이었다.

(2016.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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