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아름다운 고향축제

2016.05.12 06:20

박제철 조회 수:85

작지만 아름다운 고향축제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박제철



마을 앞 400여 미터에 이르는 제방에는 빨간 꽃잔디와 튤립이 만개하여 장관을 이루더니 마을 앞 옥정호의 유휴지 6만평에는 지금 막 피어난 노란 유채꽃이 지나는 사람을 유혹한다. 임실군 운암면 소재지인 상운리 마을 앞에서는 5월 6일부터 8일까지 사흘 동안 <제1회 옥정호 꽃 걸음 빛 바람 축제>가 열렸다. 운암면지역발전협의회에서 주관하는 작지만 뜻 깊은 행사다. 그곳 운암에서 눌러앉아 사는 원주민이나 고향을 등지고 떠났던 출향민, 그리고 그 행사를 찾아 온 많은 사람들이 한데 어울리는 아름다운 한마당 축제였다.

이 축제를 위하여 행정기관은 물론 마을사람들 모두가 발 벗고 나섰다. 여자들은 축제장에오신 손님을 맞고자 음식을 장만하고, 남자들은 행사 안내와 수없이 밀려드는 자동차 정리에 여념이 없지만 웃음이 만발했다. 나이가 많으신 나의 선배, 친구, 후배들까지 모두가 이 행사에 동참했다. 이 꽃을 피우기 위해 지난해부터 꽃을 심고 잡초를 뽑는 등 모든 정성을 기울였을 것이다

행사장 한쪽에는 옥정호의 아름다운 사계절을 카메라에 담은 작가들의 시진이 진열되어 있어서, 또 다른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었다. 화려한 사진 맨 끝에는 빛바랜 흑백 사진 몇 점이 걸려 있었다. 나의 시선이 거기에 멈춘 것은 어쩌면 반사작용일지도 모른다. 옥정호 에 담수되기 전 몇몇 마을사진과 당시의 교통수단인 배를 타고 가는 사람들, 몇 장의 초등학교 졸업사진이 나의 시선을 끌었다. 초등학교 후배들의 사진이었지만 그 속에 내가 섞여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기도 했다. 흑백사진 몇 장이 나를 타임머신을 태워 옛날로 돌려놓았다.

실로 운암면 소재지 마을은 섬진강 댐을 막기 시각한 지 50여 년 만에 끝을 맺은 기나긴 여정이었다. 댐은 무너미가 없는 소위 멍텅구리 댐이었던 것을 50여 년만인 지난해에야 무 너미 공사를 완료하여 완전한 댐이 되었고, 운암면 소재지는 이주한 두디 50여 년 살던 곳을 버리고 지금의 아름다운 마을이 준공되어 다시 이주하여 한 많은 생활을 정리했다. 운암면 소재지인 상운리가 누더기 옷을 벗어 던지고 말쑥한 양복을 차려입기까지는 우여곡절도 많았다.

축제가 열리고 있는 바로 옆 운암면 소재지인 상운리가 아름다운 마을로 태어나기위해서는 50여 년의 긴 세월을 아픔 속에서 참아야 했다. 본래 운암면 소재지는 옥정호에 담수되었고, 그곳으로부터 약 5km 상류지역으로 옮겨 자리를 잡았다. 새로운 소재지는 담수되지 않는 지역이었다. 그곳에 면사무소 등 관공서가 이주하고 소재지로서 마을도 100여 세대를 형성했었다. 그러나 어느 해 비가 많이 내려 물이 차오르더니 관공서를 비롯한 마을이 물에 잠기는 일이 벌어졌다. 측량 잘못이었다. 운암면 소재기가 수몰지역이라는 것이다. 옥정호로인한 두 번째 수몰지역이 된 것이다. 그때부터 그곳은 어쩌면 문화혜택을 모르고 사는 이국이나 다름없었다. 응급 상태로 어설프게 지은 집은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보수도 할 수 없이 살아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전국에서 제일 낡은 마을로 변해 1970년대를 상징하는 영화촬영장이 되기도 했으니 주민의 생활이 어땠는지 상상할 수 있다. 그런 마을이 바로 옆 언덕위에 세 번째로 옮겨 아름다운 집을 짓고 이주를 완료했다. 50여 년 동안 입었던 누더기 옷을 벗어 던지고 새 옷을 입는 날이 바로 오늘이다. 암울했던 반평생의 한을 집어던지고 희망과 기쁨을 같이하고자하는 고향사람들의 마음이 이 축제에 오롯이 담겨있다.

수없이 밀려오는 차량과 사람 때문에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안내하는 사람이나 차량에서 내리는 사람이나 함박웃음을 터뜨리며 진한 포옹을 하기도 했다. 몇 년 아니면 몆 십 년 만에 만난 반가움이 웃음과 포옹으로 나타난 것이다. 진한 그리움이 역력했다.

옥정호에 담수되면서 고향을 등지고 떠난 사람이 얼마이던가? 나의 아버지 때 떠난 사람들이다. 내 또래 친구들도 아버지 손에 이끌려 알 수도 없는 곳으로 떠났다. 옥정호에 담수될 때 2만여 명의 이주민이 발생했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향을 등졌는가? 2만여 명의 자손은 얼마나 될까?

서울에 사는 어떤 친구는 이럴 때 고향에 가자며 관광버스를 타고 친구들과 내려왔다고 했다. 고향을 찾는 사람이나 고향에 살던 사람이나 너나 할 것 없이 마음이 들떠 있었다. 꽃이 아름다워야 벌 나비가 모여든다. 그러나 고향의 꽃은 아름답지 않아도 모여든다. 하물며 아름다운 꽃과 꽃보다 더 훈훈한 정이 있으니 어찌 모여들지 않으랴. 잊고 살던 고향의 친지 선후배, 많은 사람들이 어울리는 축재의 한마당이었다. 내 고향 운암은 이 축제가 끝이 아니다. 얼마 뒤면 옥정호 주변과 마을 앞의 아름다운 장미가 유혹할 것이다. 옥정호의 사계절은 그래서 아름답다.

누군가가 등 뒤에서 불렀다. 고향을 지키고 사는 친구였다. 병고에 시달려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지만 자기라도 나와야 고향을 찾는 친구를 맞이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렇게 고향을 사랑하는 친구가 있는 한 ‘꽃 걸음 빛 바람축제’는 더 환하게 빛날 것이다. 만남의 축제를 기획하고 만들어준 분들과 아름다운 축제를 마무리할 수 있도록 내일처럼 챙겨준 모든 고향사람들께 감사드리고, 그동안 맺혔던 한을 꽃 걸음 빛 바람에 훌훌 털어 버리고 축제가 더욱 번창하기를 기대한다.

(2016.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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