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라는 섬[島]

2016.05.13 17:53

김현준 조회 수:47

그래도’라는 섬[島]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 현 준

어느 시인은 말했다. 불행한 일이 있을 때나 살기 힘들 때, 또는 절망할 때나 자신의 꿈과 소망이 산산조각 날 적에 새로운 긍정을 만드는 섬, ‘그래도’가 있다고. 몇 천 년을 두고 그래도 내 나라, 그래도 내 고향, 그래도 내 식구라고 말하며 살아온 게 한국인이다. 가난하고 어렵고 험한 역사 속에서도 ‘그래도’라는 섬 덕택에 시련을 이겨온 우리, 절망이 앞을 가리고 외로움이 나를 가두어도, 거센 폭풍이 불어와도 말하리라. 그래도 나는 살아 있다. <이어령>

“아빠만은 그래도 머리가 항상 검을 줄 알았는데…….”

며칠 만에 만난 딸의 이야기를 듣고 새삼 내 머리가 희뜩해진 것을 깨달았다. 50대부터 머리카락이 하얗게 센 지인들을 보면서도 나는 쉽게 흰머리가 나지 않을 거라 믿었다. 나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머리 염색은 하지 않을 것이라 장담했다.

이마에 모발을 심는 수술까지 받았다는 K 교장의 고백을 들으면서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뒷머리를 뽑아다가 한 올 한 올 모내기 하듯 심었다는데, 머리카락 한 올 당 얼마씩 계산했다 한다. 그것도 100%가 다 사는 것이 아니어서 이만저만 고민이 아니란다.

아무리 세상에 교통사고가 자주 난다고 해도, 내가 탄 차는 그러지 않으리라 믿었다. 시험이 어렵다 해도 나만은 실패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보이스 피싱 범죄가 일상처럼 자리 잡았다 해도 나만은 피해를 당하지 않으리라 자신했다. 그러나 세상은 내 생각대로만 굴러가지 않았다. 나도 교통사고를 당했고, 접촉사고를 몇 번 냈다. 어려운 시험은 실패했고, 자신의 태만을 후회했다. 전화사기에 빠질 뻔했던 황당한 기억도 있다.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경제가 어려워졌다고 아우성이다. 내년은 더 힘들 것이라 전망한다. 그래도 나는 한마디 덧붙인다. ‘언제는 안 그랬냐?’고. 나는 장담할 수 있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누구나 일자리를 얻어 잘 살 수는 없으며, 누구는 승승장구하고 일취월장하겠으나 누군가는 실패와 좌절 속에 시달릴 것이다.

‘그래도’는 ‘그리하여도’가 줄어 생긴 말이다. “긍정과 부정의 느낌이 함께 드는데, 곰곰 생각해보면 둘 다 아니기도 하다. 앞말에 대한 여운이기도 하고, 반전이기도 하다. 개인의 삶 또는 사회현상과도 닮았다. 판도라의 상자 맨 밑바닥에 적혀있을 법한 말, 토정비결이나 정감록의 어느 구석에 가필되었을 법한 말, 어느 누군가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내뱉을 것 같은 말… 소설과 닮았다,” 소설가 원종국의 말이다. 그는 2013년 문예지에 발표했던 일곱 편의 연작소설을 묶어 《그래도》라는 제목으로 책을 내놓아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한국적 가족주의에 대한 반성적 성찰과 함께 여러 가족 형태들에 대한 실험이 연작에 다채롭게 펼쳐지고 있다.

수필집을 5권 째 내놓고 나는 허탈감을 감출 수 없다. 무엇보다 소재의 고갈이 문제다. 글을 쓰는 형식이 굳어져 버린 것 같은 초조를 떨치지 못한다. 모두 그게 그것 같은 느낌이다. 신문이나 책에서 따 온 몇 가지 사례를 짜깁기하듯 쓰는 작업 같아 두렵기도 하다. 자연 신선미와 감동이 떨어지지 않겠는가. 마땅히 붓을 꺾고 내공에 힘쓸 시간이다. 그런데도 그럴만한 여유가 없다. 글을 쓸 시간이 그렇게 많을 것 같지 않으니까. 쉬고 자시고 할 형편이 아닌 것 같다. 남들이 싫증을 내고 비난을 멈추지 않겠지만, 그래도 나는 글을 써야 한다. 좋은 수필을 쓰려는 욕심은 버린 지 오래다. 글은 나 자신인 것을.

세상은 무섭게 변하고 있다. 경제 분야의 변화는 내가 알기도 어렵고 따라가기조차 힘들다. 어찌 보면 돈을 벌기는 불가능할 것 같다. 그래도 경제생활을 떠나서 살 수 없기에, 몇 년을 망설이다 주식을 조금 샀다. 주가가 오르면 기분이 좋고 내리면 언짢지만, 나의 관심이 확대되면서 삶의 의욕이 넘친다.

100세 장수시대가 눈앞에 다가왔다고 야단들이다. 이제 7∼80세 정도는 예전의 극 노인이 아니다. 그래도 장례식장과 상조협회는 번창하고 있다. 운동을 소홀히 하거나 섭생에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들은 그래도 장수를 누리지 못한다.

북한의 권력자 김정은이 핵무기 실험을 감행하며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어디 한두 번 듣는 망발인가. 김일성 때부터 지겹게 들어온 공갈이다. 그래도 한반도에선 전쟁이 일어나선 안 된다. 북의 동향을 예의 주시하고 핵을 포기하도록 설득하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짜증나고 지겹지만, 그래도 우리는 현명하게 이 위기를 넘겨야 하지 않겠는가?

(2016. 5. 14.)


회원:
2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512
어제:
451
전체:
224,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