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의 도전

2016.05.16 05:36

김명희 조회 수:62

잡초의 도전(挑戰)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명희

잔잔한 음악이 흐른다. 아직도 출품할 날짜가 10여 일 남았지만 벌써 마음이 조급해진다. 이번에 참가를 못하면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없다. 우선 두 장은 써 놨는데 나머지 한 장이 문제였다.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체념과 동시에 마음을 비웠다. 해가 거듭할수록 쉬워야 하는데 나이 탓인지 잃어버릴 때가 비일비재(非一非再)다. 출품할 작품은 미리미리 써 놓았어야 했는데 정성이 부족한 탓에 두 달 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나 시간에 쫓겨 허덕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우리 집은 가족 8명이 시끌벅적하게 살고 있다. 주말부부인 사위는 업무 차 서울로, 딸은 직장으로, 아이들 셋은 중학교와 초등학교로 간다. 남편이 딸의 출근과 등교할 아이들의 운전을 맡고 있다. 다섯 살배기 민혁이는 할머니와 손잡고, 웃고 바라보며 이야기하면서 유치원에 가기를 원한다. 바쁘게 움직여야 하루에 고작 한두 시간의 여유로 출품작을 준비하고 있으니 마음만 앞섰다. 인생 일흔의 나이는 정녕 내리막의 종점인가. 석양의 고운 빛깔을 발산하는 게 인생의 황혼이다. 슬픔, 허무, 소외라는 말보다 목적이 있는 꿈과 희망을 품고 사는 사람일수록 표정이 밝고 활기찬 노후생활을 한다.

늘그막에 건강이나 추스르며 살 나이에 이제 배워서 뭘 한담! 주변에서 흔히 들려오는 말이다 ‘바쁜 꿀벌은 슬퍼할 겨를이 없다’는 월리엄 블레이크의 말처럼, 내겐 늘 마음이 허전하고 연달아 떠오르는 그 뭔가의 상념(想念)이 아침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방울방울 맺힌다. 내 마음 밭에 무성한 잡초는 뿌리를 뽑고 뽑아도 끈질기게 새롭게 도전한다. 이런 척박한 마음 밭을 개간해야겠다는 일념하나로 깊게 뻗어나간 뿌리를 조금씩 캐내기 시작했다. 돌멩이를 골라내고 거름을 뿌려 토양을 차츰 바꾸어 나갔다. 때론 비가 억세게 오고, 세찬 바람이 불며, 타들어 갈 것 같은 가뭄과 싸울 때도 많았다.

2010.5.20. 마음 밭에 무슨 씨앗을 선택해야 알찬 곡식을 거둘 수 있을까. 가벼운 마음으로 안골노인복지관 한글서예반의 문을 두드렸다. 서예반은 기초반과 고급반으로 나누워져 있었다. 겨우 초등학교 4학년 때 붓을 다루어 본 것이 전부였던 나다. ‘마라톤도 같이 뛰는 사람이 있어야 수월하다’고 하지 않는가. 기초반에 입문했는데도 23명 중 거의가 수준급이어서 심히 망설임이 앞섰다. ‘그래, 부딪쳐보는 거야. 무식할 때가 가장 용감하다고 한다지.’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하면서도 위축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부드러운 붓끝으로 한 획 한 획 내려 그을 때마다, 숨을 쉬지 않고 내려 긋는 연습을 석 달 동안 뽀얀 연습지가 온통 까만 숯이 되도록 연습을 거듭해보지만, 다짐은 허공에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잡초가 왕성한 마음 밭에는 긍정과 부정이 살벌했다. ‘그만둘까?’ 아니면 ‘기왕에 시작했으니 어떠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말고, 호박이라도 쳐야 할까?’ 결국 해보겠다는 쪽이 우세했다. 그렇게 소리 없는 총성은 멎었다. 기왕에 심은 씨앗이니 열과 성을 다하자.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하더라.

양사언의 태산가를 떠올렸다. 양사언은 (1517~1584) 조선의 문신 서예가이다. 그래, 안되면 될 때까지, 목표를 정해 놓고, 선생님께서 체 본을 써 주실 때마다 내 눈은 붓끝을 응시하며 설명을 놓치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선생님의 곁을 지켰다. 때론 충분히 설명을 들었어도 집에 오면 머릿속에는 온통 붓으로 먹칠한 깜깜이가 되기를 수 없이 반복했다. 필기를 하기도 하고 선배님들의 말씀을 경청하면서 종이접기와 작품구성, 전시회장을 찾아다니면서 스마트 폰에 특이한 작품을 담아오기도 했다.

궁체란 궁녀들만이 쓰는 한글 글씨체를 말한다. 궁녀체라는 말이 줄어서 궁체가 된 것이다. 궁 안의 왕(王)이나 비빈(妃嬪)들은 궁체를 쓰지 않는다. 그 까닭은 신분의 차이 때문에 지체가 높은 왕족들은 그들의 것을 흉내 내어 쓰는 것을 꺼려서 쓰지 않는 것이다. 궁녀들이 쓰던 글씨체에는 세 가지가 있다. 정자체, 연한 흘림체, 진한 흘림체가 그것이다. 이것을 요즈음엔 정자체, 반흘림, 진 흘림, 판본 체, 민 체, 켈라그라피 등으로 나누기도 한다. 글을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진다. 궁녀는 자기의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대비(大妃)나 비빈의 명을 받아 대필하는 것이기에 접수관계(接受關係)에 따른 예법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대비나 왕비에게 보내는 공주나 옹주의 문안 글월에서는 흘림체를 찾아 볼 수가 없다. 손 윗분들에게 올리는 글이기에 궁녀들은 각별히 바르고 정성스럽게 써야 하기 때문에 흘림은 용납되지 않는다. 서간은 서로 허물없이 지낼 수 있는 사람들이 정을 나누는 것이기에 흘림이 용납되는 것이다. 진 흘림은 자음과 모음의 변화가 무쌍하여 읽기 어렵고 보기도 힘들다. 옛 궁인(宮人)들은 5~6세에 입궐하여 하루에 500자~600자의 붓글씨를 쓰지 않으면 밥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듯 엄격한 훈련을 20여 년 동안 연마한 후에 비로소 서사 상궁으로 발탁되어 계서, 전기, 소설, 교양서적, 역사서, 봉서 등을 서사했던 것이다.

서예는 해마다 지방에 있는 “서가협회”에서 개최하고 있는 도전, 전국휘호대전과 광주전국노인서예대전, 복지관 등 1년에 네 번의 출품작을 준비해야 한다. 한 번 작품을 출품하려면 종류에 따라 작품지를 100장~150장을 연습해서 그중 한 장을 골라 출품하게 된다.

나는 금년 5월17일 전주소리문화전당에서 삼체상과 더불어 ‘초대작가’ 위촉장(委囑狀)을 받았다. 시간을 내어준 만큼 되돌려 받은 셈이다. ‘산고 끝에 부족하지만 나름의 뿌듯한 마음과 할 수 있다는 기쁨에 마냥 행복했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한글서예를 기초로 하면 한문배우기는 좀 더 수월할 것 같다. 한문을 배워야 한다는 주위 분들의 말씀도 있기에 소신껏 밀고 나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노인들에게는 세 가지의 후회가 있다고 한다.

할 수 있었는데...

해야 했는데...

해야만 했는데...

“늙어서 배우면 뭘 해? 그 까짓 붓글씨 써 먹을 필요도 없는데...”

물론, 자기만족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무한한 가능성의 힘은 희망과 기쁨을 배가한다, 하고 싶은 취미활동을 함으로써 자꾸만 잃어가는 기억력을 증진시켜 삶에 활력을 주고 치매예방에도 도움이 되려니 싶다. 언제나 긍정적인 곳에 삶의 이유가 존재한다.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내 귓전에 속삭임으로 다가온다. 금년엔 한자를 시작하면서 다시 마음이 설렌다. 도전(挑戰)아, 너는 늘 내 곁에 머물러 주렴. 우린 언제까지나 동행하자꾸나.

(2016,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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