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은 아픔을 위로하고

2016.05.23 13:27

김성은 조회 수:33

아픔은 아픔을 위로하고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김성은

월요일이다. 수업이 가장 많은 한 주의 시작. 오전에 한 시간을 제외하고 계속 교탁 앞에 서서 목청껏 수업을 하다 보니 7교시가 되면 거의 녹초가 되어 기진맥진이다. 그런데 오늘은 야자 감독까지 참말로 긴 하루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특수학교로서 시각장애인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이다. 교과서는 모두 점자 혹은 확대교과서이고, 각종 보조공학기기들로 교실은 빼곡하다. 점자노트북이라고 할 수 있는 한소네를 비롯하여 각종 텍스트를 음성으로 변환해서 읽어 주는 책마루, 작은 글씨를 확대하여 저 시력학생들이 학습하기 편하도록 고안된 모양도 다양한 확대 독서기 등 다양하다.

우리 학교는 유치부부터 전공과정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연령대의 학생들이 공부하며 꿈을 키운다. 그러다 보니 학교 통학차량 안에는 어린이부터 거의 할아버지 연배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연령대의 학생층이 나란히 한 버스에 타게 된다.

성인 학생과 학령기 학생들이 같은 공간에서 교육을 받다 보니 여러 가지 생각지도 못한 애로사항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대가족 사회에서만 배울 수 있는 문화나 예절 등을 어린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되는 이점도 있다.

나는 현재 고등부 직업교과를 가르치고 있다. 일반적으로 시각장애인들은 우리 학교와 같은 국가 공인 교육기관에서 2년 내지는 3년 과정의 교육을 이수한 다음, 안마사자격증을 취득하게 되고, 안마사가 되어 경제생활을 영위한다.

보통 학령기 학생들은 애초에 안마사가 되는 꿈을 꾸기보다는 대학 진학을 준비하여 보다 넓은 세상을 향한 발돋움을 하려고 노력하지만, 성인 학생들의 경우 대부분은 하루라도 빨리 안마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법적으로 공인된 직업인이 되려고 한다.

내가 가르치는 교과가 학생들의 생계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내용이고 보니 성인 학생들은 매우 학구열이 뜨겁다. 수업에 임하는 자세도 진지하고, 어린 아이가 걸음마를 배우듯 한 자 한 자 점자를 익히고, 컴퓨터 조작법을 배우는 모습은 실로 눈물겹기까지 하다.

가끔 수업을 하다 보면 학생들의 개인적인 경험담에 서로 동병상련의 아픔을 공감하며 눈 감은 우리만 알 수 있는 가슴 절절한 사연을 나누게 되는 경우가 있다.

가령 실명하고 난 뒤 자녀들이 엄마인 자신을 부끄러워한다는 사실을 인지한 순간이라든지, 동네 사람들이 장애인 아버지와 함께 사는 어린 아들을 붙들고 너도 나도 동정하며 훈계를 일삼는 통에 잘 자라고 있는 아이를 맥없이 혼란스럽게 만든다든지, 거스름돈을 잘 못 받거나 제 값 주고 산 꽃이 다 시든 것이었음을 뒤늦게 알았을 때, 청소가 안 된 방을 버젓이 깨끗하다고 거짓말 하는 사람들의 태연하고도 의도적인 속임수를 모르는 척 지나쳐야 할 때 등 답답한 순간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어느 날 수업을 하는데 저 시력인 여자 성인 학생이 물었다.

"선생님은 딸아이 보고 싶지 않으세요? 그래도 선생님은 나아요. 저 같은 경우는 엄마가 보이다가 안 보이니까 아이들이 더 혼란스러워 하고 엄마를 더 부끄러워하는 것 같아요. 선생님 아이는 적어도 그런 것은 없잖아요? 아이나 사부님이나 선생님을 만났을 때 이미 선생님이 시각장애인이었으니까. 게다가 선생님은 경제력도 있고 직장도 탄탄하잖아요?"

약간은 당돌한 학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처음엔 기분이 상했지만, 묵묵히 그 학생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다. 학생의 이야기가 끝났는데도 반응이 없자 다른 남자 성인 학생이 선뜻 나섰다.

"ㅇㅇ 씨, 그건 아니지. 우리야 새끼들 얼굴도 봤고, 각시 얼굴도 알지만 선생님은 아니잖아?"

"그런가? 그래도 우리는 멀쩡하게 살다가 이렇게 되어 자식들 사춘기일 때 상실감도 더 크고, 적어도 선생님은 시작부터가…."

듣고 있으니 왠지 웃음이 나왔다.

누가 더 불쌍한 사람인지 서로가 다투어 자기가 1등이라고 얘기하는 것 같아 갑자기 이 상황이 재미있어진 것이다. 내가 말했다.

"ㅇㅇ 씨, 얘기 들으며 생각해 보니까. 내가 1등인 것 같아. 안 그래요? 자기 새끼 얼굴도 모르고 살아야 하는데, 앞으로도 볼 수 있다는 희망이 없고, 바로 곁에 있어도 주변이 시끄러우면 내 새끼를 못 찾는데 얼마나 불쌍해? 글쎄 교회체육대회에 갔다가 다른 아이를 우리 ㅇㅇ인 줄 알고 막 안으려고 했다가 그 아이 엄마가 우리 ㅇㅇ 아니라고 알려줘서 완전 민망한 적도 있었다니까요.(웃음) 아무리 생각해도 난 내가 1등인 것 같아. 그리고 또 한 가지, 나는 솔직히 남편 얼굴은 한 번도 보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해 봤거든. 그런데 딸아이는 다르더라고. 보고 싶어요. 진짜! 내가 불쌍한 거 맞지? 자, 오늘은 내가 1등이다. (웃음)"

나는 한껏 가벼운 어조로 이야기했는데, 어딘지 학생들 분위기가 숙연해지는 듯했다. 건강한 사회인으로 그야말로 보편적인 삶을 누리다가 실명으로 인한 상실감에 학생들은 종종 크고 작은 상처를 받고, 세상에서 자기가 가장 불행하다며 좌절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가볍게 농담하듯 나의 내밀한 고충을 슬쩍 슬쩍 무신경하게, 웃음을 섞어 드러낸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학생들은 더 이상 징징거리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씩씩해지기도 한다. 그렇게 변화되는 학생들의 모습에 나는 보람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학교는 하루하루가 무척 숨 가쁘다.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상처가 많은 우리 학생들이 다시금 자신이 인생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라는 감옥에서 과감하게 바깥세상을 향해 한 발짝 내딛을 수 있는 용기가 만들어지는 곳. 그곳이 바로 우리 학교다.

나는 시각장애 1급인 중년여자이고, 앞으로도 험한 세상을 눈 감은 채 살아가야 할 사람이다. 두려운 것도 많고, 남몰래 흘리는 눈물도 뼈아프지만, 나 역시 우리 학교에서 만나는 학생들에게 위로를 받을 때가 많다.

잘 안 보이는 눈으로 서로를 돕고, 조금 더 잘 보이는 학생이 더 못 보는 학생을 세심하게 안내할 줄 아는 우리 학생들은 정답다. 늦은 저녁까지 교실 불을 밝힌 채 열심히 진학준비를 하는 어린 학생들의 앞날에도 환한 광명이 깃들기를, 긴 하루를 마감하며, 나는 소망한다.

(2016.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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