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일

2016.05.26 06:37

박용덕 조회 수:14

기념일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박용덕



기념일이란 국가적으로 기억되는 추모, 다짐, 봉사, 감사, 공경 등을 기념하려고 정해진 날을 말한다. 정부가 각종 기념일을 정하는 것도 관계 법규에 따라 제정한 것으로 국경일을 포함하여 47종류의 기념일이 있다. 입양의 날, 방재의 날 등은 개별법에 의하여 지정한 것이며 30여 종이 있다. 그 외에도 24절기가 있어 101종류의 기념일은 관(官)에서 거의 주도한다.

그런데 요사이 기념일은 젊은 층도 기억하기 벅찬 기념일 풍년이다. 일명 커플기념일로 2월 14일은 발렌타인데이, 3월 14일은 화이트데이라 한다. 그뿐만 아니고 먹는 것으로 5월 2일은 오이데이로 오이를 먹고, 9월 9일은 구구데이로 닭을 먹는 날 등, 상업적 수단인 마케팅 전략에 놀아나는 기분이 드는 기념일도 있다. 듣기도 민망한 키스데이, 초대하는 자가 전액 부담한다는 머니데이도 있다. 말 그대로 기념일 풍년이다. 오늘 또 새로운 기념일이 생기려는지 모른다.

물론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순수한 마음으로 즐기는 날이면 만족하련만 매월 해당기념일을 챙긴다는 것은 시간적 경제적으로 손실이다. 기념일을 그대로 실행에 옮긴 자는 개선장군처럼 우쭐대겠지만 그러지 못한 자는 괜스레 열등감에 움츠려드는 것은 아닐지?

한편 생각하면 기념일을 챙기지 않으니까 마지못해 남 따라서도 하기 위하여 정했다면 할 말은 없다. 마음에서 우러나와 시행해야지 그게 무슨 재미를 느끼겠는가? 나는 일찍이 신혼여행 때 앞으로 세 가지 기념일을 챙기겠다고 약속한 이후 올해 마흔세 번째로 접어들고 있다. 결혼일, 아내 생일, 첫눈 오는 날이 그날이다.

그날이 오면 마음을 적는 간단한 글과 선물, 그리고 데이트를 하는 일을 한 번도 잊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무슨 날, 무슨 데이와는 상관없이 위로나 축하할 일이 있으면 행동으로 보여주어 왔다. 한 예를 들면 1985년도 가을에 르망살롱 차를 산 이튿날 아내한테서 전화가 왔다. 잔뜩 걱정스럽고 미안한 어투로 본인이 잘못하여 접촉사고가 났는데 차가 망가졌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나는 “당신 괜찮아? 상대방 사람도?” 차만 망가졌다는 말에 “괜찮아. 인사사고 없으면 차야 고치면 되지.” 하고는 그날 저녁 직원들과의 약속을 뒤로 미루고 서둘러 퇴근하면서 장미 몇 송이를 샀다.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내에게 꽃을 내밀며 ”오늘 얼마나 놀랐소? 이 꽃 보고 웃으시오.” 했더니 그만 울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로즈데이가 바로 이런 날이리라.

나는 오늘 마흔세 번째의 결혼기념일(5.29)을 앞두고 이 글을 쓴다. 이제 이 기념일을 몇 번이나 지키려는지? 항상 양보만 해온 아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 스스로 자책을 한다. 이제 나도 철이 드나 보다. 앞으로는 내 고집을 꺾고 양보하는 남편이 될 것을 스스로 다짐해 본다.

기념일은 젊은 연인의 전유물이 아니다, 잘 활용하면 부부생활의 활력소가 되며 가정의 행복을 가져다 준다. 그리고 신뢰감을 높여 준다. 이제부터라도 부부만의 기념일을 정하여 꼭 실천해보면 어떨까?

(2016.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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