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오월의 수수팥떡

2016.05.28 08:09

호성희 조회 수:2

그해 오월의 수수팥떡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호성희

성큼 찾아온 초여름 기온이 거리의 가로수들을 짙푸르게 가꾸고 있다. 봄‧여름‧가을‧겨울, 어떤 변화에도 굴하지 않고 순응하며 꿋꿋이 제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가로수들의 고집스러움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보통사람들이 평생 웃는 것은 90일, 화내는 시간은 5년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평생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사는 시간은 얼마일까? 사람들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보름달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나는 돌아가신 친정어머니를 생각한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완전하지 않은 보름달을 내게 주고 먼저 간 아이들 아빠를 떠올린다. 남편 기일은 음력 5월 10일이다.

남편이 하늘나라로 떠나던 2004년 6월 27일엔 가랑비가 왔었다. 출상하고 삼우제 날 그날따라 달은 왜 그렇게 크고 밝았을까? 베란다에서 터질 것 같은 달을 향해 손을 뻗었다. 금방 달이 내 손바닥에 내려앉을 것만 같았다. 정신이 반쯤 나간 나는 고요를 깨고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친정엄마의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어미야! 밥이나 제대로 먹은 거냐?”

“엄마, 무슨 일 있어요?”

“아니, 오늘이 네 생일 아니냐? 보름달을 보니까 어떻게 하고 있나 궁금해서 전화를 했지.”

그때 나는 소리 없이 우시는 엄마의 모습이 떠올라서, 나는 괜찮으니 엄마 건강이나 잘 챙기시라며 전화를 끊었다. 남편 출상을 하고 삼우제 날이 내 생일이었다. 달이 지는 자리에 아침 해가 뜨고 오늘이 시작된다. 사람들은 건강을 잃은 뒤에야 그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 듯, 모든 것을 잃고 난 뒤에야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누구나 다른 사연으로 어머니를 그리며 살아가지만, 내 인생을 만들어준 어머니는 오로지 자식이 당신의 삶 전부였다.

그 어머니가 더 그리워지고 보고 싶다. 오늘 우연히 앨범에서 어머니의 빛바랜 사진 한 장을 보았다. 외할머니와 함께 찍은 그 흑백 사진 속 엄마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렸다. 쓸 만한 자식 하나 낳아주지 못해서 할 말 못하고 늘 죄인처럼 산다고 하시던 어머니는 아들 못 낳은 것이 큰 죄라면서 딸만 둘 낳은 것을 평생 미안해 하셨다.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기라도 하는 듯 할아버지께서는 늘 어머니를 감싸주셨던 기억이 난다. 할아버지께서는 손녀딸의 밥을 꼭 할아버지 밥상에 같이 놓으라고 하셨다. 그것이 할머니에게 엄마를 기죽지 않게 하려고 한 배려란 것을 한참 세월이 흐른 뒤에야 알았다. 그 어머니는 늘 내 곁에 계실 줄 알았다. 그런 어머니가 떠나신 지 벌써 10여 년이 되었다. 2008년 초여름 내 생일에 마지막으로 어머니가 만들어 주셨던 수수팥떡을 잊을 수가 없다.

“너 올해 몇 살이냐? 식기 전에 먹어라! 내가 해주는 마지막 생일 떡이다. 나이 수대로 먹어야 명대로 산다.”

하시면서 한 접시 수북하게 담아주시며 말씀하셨다.

“건강하게 정신 바짝 차리고 애들 건사하며 잘 살아야 해! 알아들었냐? 나는 아무래도 올해는 못 넘길 것 같다.”

병약한 딸자식이 넷이나 되는 새끼들과 남편 없이 살아갈 날들을 마음 아파하며 안타까워하셨다. 아프지 않고 상처 없이 사는 인생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지금 생각하니 그 아픈 기억마저도 그리운 것이 인생이지 싶다.

‘어머니, 이제 저도 늙었나 봅니다. 나이 들면 모자란 것이 눈치요 남아도는 것은 주책이라더니 자꾸 기억은 잊히고 엉뚱한 실수를 해서 아이들이 제 어미를 걱정하는 나이가 되었네요. 짧은 기간이었지만 어머니 가시기 전 아이들과 정읍에서 함께한 날들을 아이들이 잊지 않고 기억하며 할머니 얘기를 많이 하곤 합니다. 이제 얼마 있으면 아비 기일도 돌아오고 제 생일도 다가옵니다.’ 2008년 5월 생일에 수수팥떡을 해주시고 그해 겨울 약속이나 한 것처럼 올해 못 넘길 것 같다 하시더니 해를 못 넘기고 돌아가셨다. 그 다디단 팥고물 묻힌 수수떡이 먹고 싶다. 올해는 내가 기억을 더듬어 어머니가 해주시던 그 수수팥떡을 만들어서 애들도 주고 나도 실컷 먹어야겠다.

“어머니, 나이 수대로 먹어야 명대로 산다고 하셨지요?”

“나이 수대로 먹으려면 아주 작게 빚어야겠어요. 어머니가 담아주셨던 숫자에 10개를 더 보태면 배가 불러서 못 먹을 것 같네요. 엄마, 솜씨대로 수수팥떡을 만들어서 산소에 갈게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24시간이 모자라게 잘 살고 있습니다.”

(2016.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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