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화 한 폭

2016.02.02 07:18

임두환 조회 수:104

풍경화 한 폭

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임두환

깊어가는 가을이다.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오는 가을의 전령은 소리 소문도 없이 내 옆을 맴돌고 있다. 여름철 오랜 가뭄으로 삼라만상(森羅萬象)이 목말라 했는데,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더니 내 고장 전주(全州)에도 단풍이 곱게 물들고 있다.

우리 집 거실에는 한 폭의 풍경화가 걸려있다. 지인이 보내준 선물인데 가로180cm 세로60cm로 한쪽 벽면을 차지할 정도로 커다란 그림이다. 하늘이 맞닿을 듯 높은 산봉우리에는 만년설이 희끗희끗하고, 산골짜기 계곡에는 맑은 물이 폭포를 이루며 흐른다. 기암절벽 사이 노송(老松)들은 세월을 말해주는 듯 자태를 뽐내고, 언덕배기 나지막한 곳에는 초가집들이 자리하고 있다. 주변 초목들이 오색단풍으로 물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 늦가을임을 짐작케 한다.

소파에 앉아 풍경화를 감상하고 있노라면 1972년도에 널리 불리어졌던 남진의 노래 ‘임과 함께’가 떠오른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 살고 싶어, (중략) 나는 좋아 나는 좋아 임과 함께 면, 임과 함께 같이 산다면,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 살고 싶어 ∼”

내가 젊은 시절, 직장에서 퇴직하면 거실에 걸려 있는 한 폭의 풍경화만큼은 아니지만, 산수(山水)가 빼어난 진안(鎭安) 고향마을에서 자연을 벗 삼아 살고 싶었다. 진안은 동부고원으로서 전라북도의 지붕이라 불린다. 산세가 드높아 골짜기마다 맑은 물이 넘쳐흐르고, 경관이 수려한 천혜의 청정지역이다.

진안에는 신비로운 마이산(馬)耳山)과 전라북도의 젖줄이라는 용담호(龍膽湖), 여름철 피서지로 이름난 운일암반일암(雲日巖半日巖)이 3박자를 이루고 있다. 이 밖에도 백운면(白雲面) 백운동계곡, 진안읍(鎭安邑) 죽도와 가막골, 운장산(雲長山)자락을 타고 내려오는 부귀천과 정천면(程川面) 갈거계곡도 빼놓을 수 없다.

내 고향 사옥(舍玉)마을은 하늘이 맞닿을 정도로 드높은 덕대산(1,113m) 끝자락에 25여 호가 정겹게 살고 있는 곳이다. 북쪽으로는 진안읍(鎭安邑), 남쪽으로는 백운면(白雲面), 서쪽으로는 마령면(馬靈面)이 있고, 고향마을 바로 앞에는 신비의 명산이라 불리는 마이산(馬)耳山)이 우뚝 서있다. 고향마을 사옥(舍玉)에서는 서기관 2명을 비롯하여 공기업기관장 3명, 공무원과 회사원 등, 자영업으로 성공한 후배들이 끊임없이 속출되고 있다. 마이산의 정기를 받은 진안읍 가림리 사옥마을에서 언젠가 큰 인물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내가 1969년 군대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만해도 자동차는커녕 소달구지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우리 마을에서 2Km쯤 나가면 버스가 있었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선 걸어 다니기 일쑤였다. 장날이면 소달구지에 짐을 싣고서, 7Km나 되는 진안읍까지 발걸음을 하면서도 네 것 내 것을 가리지 않고 살았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격세지감(隔世之感)이 있다. 우리 마을은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 도시(都市) 못지않은 문화시설에 씀씀이도 풍부하다. 논밭농사와 한우(韓牛)사육, 특용작물(特用作物)재배도 기계화시설로 많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땀 흘려 일하다가도 새참이 생각나면 전화로 불러 먹고, 점심은 진안읍에 나가서 해결하고 있으니 참으로 좋은 세상이다. 옛날 같으면 언감생심(焉敢生心) 꿈이나 꾸겠는가?

고향마을에는 어린 시절, 내가 살던 집터와 농토가 그대로 남아있다. 직장을 그만두면 귀촌(歸村)하여 자연을 벗 삼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웬일일까. 날이 갈수록 주변의 유혹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으니 큰일이다.

“퇴직을 하고서 70세까지는 귀촌하여 지내다가, 70세가 넘으면 도시로 나와서 살아야 된다.”

나이가 들수록 병원이 가까워야 되고, 마음 맞는 지인들과 함께 하는 것이 노후의 행복이라는 게 K친구의 지론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친구의 말에 공감하게 되니 이걸 어쩌랴.

나는 매주 토요일, 오전 8시30분이면 KBS-1TV에서 방송하는 '걸어서 세계 속으로'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나긋나긋한 나레이션과 배경음악을 함께 깔아준다. 2005년 11월 5일 첫 방송을 시작으로 지금껏 10여 년간을 이어오는 장수 프로그램이다. 세계 각국의 문화유적과 더불어 풍속 ․ 풍경을 샅샅이 소개해준다.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은 극치에 달한다. 북극과 남극을 비롯하여 사막과 고원의 극한지대에서 살아 숨 쉬는 끈질긴 생명력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해외여행을 하지 않고서도 안방에서 편안하게 세상구경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며칠 전, 피카소의 그림이 1,968억 원에 낙찰되어 경매사상 최고기록이라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피카소그림의 제목은 ‘알제의 여인들’로 최고 수준의 추상화였다. 할렘의 여인들을 강렬한 색조와 입체감으로 표현했는데, 내 눈으로 보아서는 무엇을 표현한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 그림을 국민소득 세계 1위를 자랑하는 카타르공화국 전, 총리가 매수했다고 한다.

아무리 유명한 작가의 그림이라 할지라도 너무했지 않나 싶다. 우리 집 거실에 걸려 있는 풍경화를 TV쇼 진품명품에 출품한다면 작가의 유명세․ 작품연대․ 희귀성을 감안할 때, 어떤 평가가 내려질는지….

화폭엔 오직, ‘ㅈㅜㄴ ㅅㅓㄱ’ 이라는 사인이 남아 있을 뿐이다. 나는 거실에 걸려있는 한 폭의 풍경화에서 내 삶의 활력소를 얻고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2015. 10. 20.)


회원:
2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15
어제:
519
전체:
224,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