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희의 설날

2016.02.12 08:31

최기춘 조회 수:346

고희의 설날

            신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최기춘

 

 

 

  일흔 살 나이를 고희(古稀)라 한다. 고희란 두보 시인의 곡강시(曲江詩) “인생 칠십 고래희 (人生 七十 古來稀)”에서 유래되었다. 두보 시인이 살던 때는 일흔 살까지 산 사람이 드물었기에 고희라 했지만, 지금은 고희라는 말이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 100세를 고희라 해야 될 것 같다. 그래도 일흔 살의 설을 맞으니 감회가 다른 느낌이었다. 설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어영부영 하다보니 일흔살이 되었다. 어린시절의 설은 어린이들에게는 낭만이었지만 어른들은 설을 맞이하노라 바빴다. 남자들은 정월이면 쉬는 날이 많으니 우선 땔 나무를 많이 해 놓아야 했다. 날을 정하여 마을주변 정리와 청소를 깨끗이 하고, 섣달 그믐 밤부터 칠 풍물도구를 정비하기도 했다. 여자들은 더 더욱 바빴다. 가족들의 설빔도 준비하고 유기그릇도 미리미리 정성스레 닦았다. 차례상에 올릴 음식준비를 하느라 미리 엿을 곱고 유과도 만들며 술을 빚는 등 섣달 내내 부산했다. 이린이들은 정월달에 날릴 연을 만들기도 하고, 쥐불놀이 할 때 불을 담아 들고다닐 깡통을 준비하면서 즐거웠다. 설 명절은 단순히 놀고 먹으며 즐기는 명절만은 아니었다. 일년을 정리하고 새출발을 하며 조상님들께 차례를 지내고 부모님은 물론 가까운 일가 친척과 어른들을 찾아 뵙고 세배를 드리는 여러 가지 깊은 뜻이 담겨 있는 날이다.

 설날 아침, 아들 내외와 손자들에게 세배를 받으며 모두 건강하고 가화만사성 하기를 당부했다. 가족들과 함께 고향 선산으로 성묘를 갔다. 고향에는 부모님이 남겨주신 집이 섬진댐 재 개발로 철거되어 받은 보상금으로 형제들이 뜻을 모아 2014년에 새로 지은 집이 있다. 형제들이 그곳에 모여 조카들과 손자들의 세배를 받았다. 모처럼 고향집이 시끌벅적했다. 손자, 손녀, 조카들 내외와 우리 형제들이 한데 모이니 30여명 되었다. 형제들의 손자들은 6촌간이다. 촌수가 금방 멀어지는 현실을 실감했다. 어린 손자들은 촌수와는 상관없었다. 질부들이나 손자들은 설이나 추석이 아니면 만날 기회가 별로 없는데도 금방 어우러져 안부를 묻고 이야기 꽃을 피우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일가 친척은 지내기 나름이란 말이 맞는 말이다.

 설날 새벽부터 인천공항까지 가는 고속도로가 막히고 인천공항이 북새통을 이루었다고 한다. 긴 연휴를 이용해 외국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었다는 소식을 접하며 설이나 추석은 물론 손자들 방학때면 빠짐없이 찾아오는 아들 며느리 손자들이 고마웠다. 일가친척과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기회가 많지 않은데 명절에 고향에서 살고 있는 늙은 부모님을 찾지않고 외국여행을 가는 세태가 개탄스럽다. 우리의 미풍양속이 오래도록 잘 지켜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세배를 마치고 성묘를 했다. 선산이 바로 우리 집 뒤에 있으니 가족들 모두 참여할 수 있어 좋다. 3대운동 기념비와 한영태 열사 묘소에 참배도 했다. 3대운동기념비는 임실군 지역에서 동학혁명, 3·1운동, 무인멸왜운동에 참여했던 분들의 얼을 기리고자 1984년 6월 운암초등학교 앞에 세운 비석이다. 한영태 열사의 묘는 운암면 지천리에서 2015년 10월 3대운동 기념비 옆으로 이전했다. 한영태 열사는 동학혁명에도 참여하였으며 3·1운동 때 독립선언문을 배포하고 앞장서 만세를 부르다 체포되어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동지들과 배후를 밝히려고 모진고문을 하자 동지들을 보호하기위해 혀를 깨물고 옷을 찟어 새끼를 꼬아 목을 매어 옥중에서 자결하신 분이다. 후손이 없어 운암면 주민들이 묘역도 관리하고 제사도 지낸다. 이곳에서는 3대운동에 참여했던 유족들과 운암면 주민들이 모여 매년 3·1절 기념행사를 한다.

 집에 돌아와 점심을 먹고 손자들은 외가로, 아들은 처가로 며느리는 친정으로 떠났다. 아내는 며느리들에게 무엇을 싸주는지 분주했다. 설 준비를 하느라 바쁘고 힘들었을 아내에게 마음으로만 노고를 치하했다. 명절 때 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집안일을 할 줄 모르는 나에게 아내는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손자들에게 옛날 이야기나 들려주고 바둑을 두는게 내가 할 몫이다. 아들들이 다 떠난 집은 조용했다. 삶을 뒤돌아보니 잘 못산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삶에대한 후회가 많으면 늙었다는 증좌라는데 맞는 말인 듯싶다. 이번 설에도 여느설과 다름없이 앞으로 좀더 보람있고 뜻있는 삶을 살 것을 다짐했다.


회원:
2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45
어제:
519
전체:
224,5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