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담임목사님

2020.12.27 13:18

한성덕 조회 수: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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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담임목사님


한 성 덕









사전적 의미의 ‘담임’은 ‘어떤 일을 책임지고 맡아 봄, 또는 맡아보는 사람’을 뜻한다. 나는 ‘담임’하면 초등학생 시절의 선생님이 떠오른다. 그 뒤로부터는 담임선생이라도 늘 초등학교에 머물러 있다.

나는 서른세 살에 담임이 되었다. 총신대학교에서 신학대학원까지 7년의 학업을 마치면서 교육전도사도 끝이 났다. 그리고 졸업과 동시에 교인 200명쯤 되는 교회의 담임교역자로 부임했다. 그 뒤로 몇몇 교회를 거쳐서 전주시내의 한 개척교회 담임이 되었다. 그곳에서 시무하는 동안 예배당을 신축했으며, 10년차에는 두 교회를 합병해서 좋은 후배에게 물려주고, 2017년 미련 없이 조기에 은퇴를 했다. 목회를 시작한지 39년(교육전도사 7년, 담임교역자 32년)만의 일이다. 절정기 때는 전 교인이 사오백 명이나 되는 교회의 담임이기도 했다.

은퇴를 했으니 담임목사도 이제 끝난 게 아닌가? 직분 상 목사이지 평신도로서 예배에 참석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요양원의 원목이 되었다. 명분상으로는 ‘사회복지사’지만 보조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담임목사다. 끝난 줄 알았던 목회를 다시 시작한 셈이다. 매일 아침 2,30분전에 출근하면 먼저 병약자들의 방을 찾아다니며 기도해 준다. 아침 8시 예배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오후 4시예배로 마감한다. 5시 퇴근 시까지 매일 드리는 두 번의 예배가 여간 기쁘지 않다. 이 무한한 은혜에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기쁨으로 살아간다.

기쁨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아끼는 후배 목사가 ‘원로목사로 모시겠다.’는 게 아닌가? 듣던 중 이보다 더 반가운 말이 어디 있으랴. 참 기쁘고 가슴 벅찬 선물이다. 허나 친분만으로 될 일은 아니다. 교회공동체 안으로 들어가려면 교인들의 동의와 절차가 필요하다. 고마운 마음이야 하늘을 찌르지만 냉큼 대답할 수 없어 웃고 말았다. 그러자 두 주에 걸쳐서, 주일아침과 오후 설교로 강단을 맡기더니 월요일 밤에 목사님내외분이 오셨다. 교인들이 다 좋아해서 ‘원로목사로 모시겠다.’며 정식으로 요청했다. 그리고 매월 마지막 주일 아침과 오후설교를 격주로 부탁했다. 파격적인 제안에 어안이 벙벙했다. 정신을 차리고 수락기도를 하는데 감사와 감격에 울컥했다. 한 교회에서 20년 이상을 목회해야 원로목사로 추대 받는다. 설령 그렇더라도 나처럼 설교를 부탁받는 목사님이 어디 있을까? 실은 없다고 하는 게 훨씬 낫다. 두메산골 무주, 그 ‘촌놈 중의 촌놈인 내가 이 큰 사랑을 받다니’하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했다.

은퇴 목사님들은 설교를 퍽 하고 싶어 하신다. 목회할 때, 우리교회에 오시는 목사님들마다 아침예배든 오후예배든 강단을 맡겼다. 그토록 기뻐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기쁨을 지금 내가 누리고 있지 않는가? 담임목사님내외분은 우리의 건강을 늘 걱정하며 이것저것을 수시로 챙기신다. 그 사랑과 배려에 마냥 감사하다. 내가 사람들에게 ‘우리 담임목사님’이라고 소개하는 이유다.

며칠 전에는 담임목사님의 문자를 받았다. 그리고 답신한 내용이다.

“할렐루야! 우리는 목사님 내외분을 오래전부터 만났지만, 지금은 그 만남이 무주구천동의 반딧불보다 더 빛나요.^^ 교회이름 좋고, 목사님과 사모님 좋고, 좋은 교인들의 가족적인 분위기는 꿀맛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무조건 좋고, 마냥 보고 싶어서 주일이 기다려집니다.^^ 이 밤도 두루두루 행복~. 샬 롬!”

교회를 합병하고 조기은퇴하자 후배 동료들이 무척 부러워했다. 요양원의 담임목사가 되고, 교회에서 원로목사 대우를 받으니 더 부러워했다. 이제는 ‘우리 담임목사님’이라고 소개하면, 의아해서 한 번 더 처다 보며 대단히 부러워한다. 어디서 오는 기쁨인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자, 우리 담임목사님의 너털웃음에서 번지는 온정적 사랑과 사모님의 온화함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와 어디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진다. 우리는 담임목사님 내외분과 종종 식사를 나눈다. 그 자리에서 실컷 웃고 또 웃으며 이야기꽃으로 공간을 채운다. 오늘도 참 즐거운 만찬시간을 가졌다. 아내는 그 시간이 너무 감동적이었던지 한마디 했다.

“여보! 이 느낌이 행복인가 봐, 꿈은 아니지요?”

(2020. 12. 27.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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