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필 편지를 받는 기쁨

2020.12.28 18:53

김학 조회 수: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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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필 편지를 받는 기쁨

三溪 金 鶴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정말 정말 행복합니다.” 윤항기의 「나는 행복합니다」란 노래가 흥얼거려진다.
나는 새벽마다 이 노래를 컴퓨터로 크게 틀어놓고 들으면서 행복한 기분에 젖는다. 나는 이 행복감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나에게 전화를 걸면 「나는 행복합니다」란 노래를 들을 수 있게 준비를 해놓았다. 이처럼 스스로 행복전도사 노릇을 하다 보니 나에게 행복한 일들이 더 많이 찾아오는 게 아닌가 싶다.
지금은 육필편지(肉筆便紙)를 받기 어려운 세상이다. 한가로이 백지에 볼펜이나 만년필로 편지를 쓰는 시대가 아니다. 부모 자식 간에도, 스승과 제자 사이에도, 정다운 친구 사이에도 육필 편지가 끊긴지 오래다.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도 편지를 주고받는 이들은 드물 것이다. 세상이 그만큼 달라진 탓이다. 통신의 발달이 가져온 현상이다. 편지를 쓰는 것보다는 전화나 문자를 주고받는 게 훨씬 편리하고 빠르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에 고집스럽게 꼭 육필편지를 보내주시는 어르신이 계셔서 나를 행복하게 한다. 내가 KBS에서 정년퇴직을 한 뒤부터이니 어림잡아 20년쯤 되었나보다. 그분은 내가 남원방송국에서 근무할 때 국장으로 모셨던 어르신이시다. 재직시절부터 신실한 인간관계를 맺었던 분이라 나는 그 분에게 동인지나 문예지 그리고 수필집이 나오면 꼭 보내드리곤 했었다. 옛날부터 그분이 책을 좋아하신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책을 보내드리면 그 어르신은 그 책을 읽고서 거르지 않고 독후감을 육필로 써서 보주시곤 한다. 그분이 보내주신 편지가 벌써 백여 통이나 쌓였다.
나는 그 편지들을 보물처럼 차곡차곡 잘 모아두고 있다. 그분의 편지는 특이하다. 흰 봉투에 200자 원고지 뒤쪽에 검정 볼펜으로 꾹꾹 눌러 내용을 쓰신 편지다. 글씨는 비록 달필이 아니지만 한자와 한글 혼용체로서 내가 내용을 파악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그 어르신을 생각하면 작년 94세 로 돌아가신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이셨던 김동완 선생님이 떠오른다. 나는 그 선생님에게도 자주 책을 보내드렸다. 그러면 그 선생님도 열심히 책을 읽으셨다. 언젠가 그 선생님께서는 평생 읽을 수필을 그때 다 읽었노라고 말씀을 하셔서 웃은 적이 있다. 그 선생님이 돌아가신 뒤 생각하니 시력도 시원치 않으셨을 텐데 제자가 보내준 책을 읽지 않을 수 없으셨을 테니 얼마나 힘드셨을까? 이제 와서 생각하니 죄송하기 짝이 없다. 전인규 어르신에게 책을 자주 보내드리는 것도 오히려 불편을 드리는 일이 아닌지 송구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感謝합니다. 고맙습니다. 보내주신 전북수필 잘 받았습니다. 책을 읽고 쓰느라 便紙가 늦었습니다. 아침으로 꾀꼬리가 울고 뻐꾸기가 우는 것을 보니 한 여름이 분명합니다. 오늘 아침에는 창문을 여니 다람쥐 한 마리가 댓돌 위에 서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습니다. 하는 짓으로 보아 녀석은 작년에 왔던 놈이 분명합니다. 오래도록 서서 눈도 깜박이지 않고 쳐다보고 있습니다. 슬그머니 나가서 부엌에서 땅콩 한 줌을 집어다 놓았습니다. 그제야 녀석은 볼이 메어지도록 땅콩을 입에 담고 돌아갔습니다. 내일이면 또다시 찾아 올 것 같습니다. 좋은 친구가 새로 생겼습니다. 내일 모래면 초복입니다. 삼복더위에 健康 조심하기 바랍니다. 사모님과 자제분들의 健康을 빌어드립니다. 전북수필 화보를 보니 매우 건강한 모습이어서 보기 좋았습니다. 春香골 牛步 謹拜”

원고지 3매 내외의 짧은 편지이지만 그 글속에는 사랑과 정이 담뿍 담겨 있어서 감동적이다. 그런 편지를 받아서 읽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이런 육필편지를 받아보고자 내가 더 열심히 책을 보내드리는지도 모른다. 이런 편지글을 읽고 나면 내가 깊은 원시림 속에 들어가서 실컷 힐링을 하고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니 나는 행복할 수밖에 없다. 육필 편지를 받아보는 게 이렇게 반갑고 고마운 것인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또 그 육필편지를 받으려면 어서 서둘러 책을 한 권 보내드려야겠다.
(2020.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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