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리나무

2020.12.31 01:05

구연식 조회 수:15

img76.gif

싸리나무

구연식



두메산골 지역에는 지금도 지형과 마을 이름이 싸리제와 싸리 고을이 곳곳에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의 산야에 싸리나무가 지천으로 숲을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 싸리나무를 이용한 친환경적 각종 생활 도구가 어느 가정에도 한 점 이상은 있다. 특히 지금도 싸리나무가 농촌에서는 살아가는데 여러 곳에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꽃 이름을 몰라도 고속도로 산야를 지날 때 홍자색 꽃이 회초리 같은 가지에 줄줄이 매달려 흐드러지게 피어 자동차가 지나갈 때마다 꽃물결을 치는 경우를 보았을 것이다. 등산이나 야유회 또는 군대 야전훈련 때 젓가락 대신 가느다란 나무줄기를 끊어 향긋한 냄새에 젖어 사용해본 경험도 있을 것이다. 어머니가 주로 사용하셨던 기름에 부친 전 등을 담아 공기가 잘 통하고 기름도 잘 빠져 음식을 덜 상하게 올려놓았던 나뭇가지로 엮어 만든 도구, 김장 때는 갖은양념을 썰어 담아놓기도 하고, 미나리·갓·표고 등을 씻어 담아 물기를 빼기도 했던 채반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홍자색 꽃은 싸리꽃이며, 야유회 젓가락 대용 나무, 채반 등은 모두 싸리나무 줄기를 이용하여 만든 것이다.



싸리나무는 콩과식물답게 뿌리를 통해 공기 중 질소를 고정하는 능력이 있어 메마른 토양에도 잘 자라서 1960년대 정부 사방공사(砂防工事) 때 숲을 조성하려고 많이도 심었다. 최근에는 도로 절개지 등 척박한 곳의 녹화식물로 주목을 받고 있다. 꽃이 귀한 늦여름에서 가을에 걸쳐 홍자색으로 피는 꽃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또 싸리꽃은 꿀이 많아서 겨울 준비에 바쁜 벌들의 눈에도 잘 띄어 싸리꿀을 만들어준다. 싸리나무 잎에는 알칼로이드, 플라보노이드, 아스코드빈산이 많고, 껍질에는 탄닌과 사포닌이 들어 있단다. 그래서 옛말에 싸리나무 씨를 먹고 백 살이 넘도록 살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전통사회에서 싸리나무는 군수물자로도 빠지지 않았다. 화살대는 남부지방의 경우 주로 대나무를 사용하였으나, 대나무가 자라지 않은 북부지방에서는 싸리나무로 만들었다 한다. 또 다른 귀중한 쓰임새는 횃불이다. 기름이 풍족하지 않았던 그 옛날에 야간 전투에서 대부분 싸리나무 횃불을 이용했단다. 수분도 다른 나무에 비해 적게 포함되어 있어, 불이 잘 붙고 화력이 강해 군인들이 야외로 훈련을 나가서 취사를 할 때 싸리나무는 유일한 현지 조달 연료였다. 내가 군대 생활을 할 때도 산악지대가 아닌 의정부 부근의 군단급 부대에서도 월동준비 제설 장비로 싸리비를 만들어 비축했었다.



옛사람들의 생활용품으로 싸리나무는 다른 어떤 나무보다 두루 쓰였다. 일반 백성들의 집에 들어가려면 먼저 싸리로 엮어 만든 사립문을 밀고 들어가야 한다. 또 마당에 놓인 싸리비, 삼태기, 지게에 얹는 바작과 부엌에 두는 광주리, 키 등 거의 대부분이 싸리 제품이었다. 집을 지을 때는 기둥과 기둥 사이를 먼저 싸리로 엮고 그 위에 흙을 발랐다. 명절날의 윷놀이에 쓰는 윷짝 역시 싸리나무였다. 이처럼 싸리나무는 가옥구조의 재료, 생활용품 도구 그리고 단방약의 재료로서 일일이 그 쓰임을 다 찾아내기가 어려울 정도다.



싸리나무는 옛날 훈장님이 글방에서 글을 배우는 학동들을 훈계할 때 사랑의 회초리로 사용했다. 우리 집 사진액자 뒤에도 싸리나무 회초리가 언제나 준비되어 있어 우리 형제들에게는 상징적 경고성 물건이었다. 부모님은 가을에는 제사 때 사용할 곶감을 깎아서 싸리나무 꼬챙이에 꿰어 처마 끝에 매달아 놓으셨다. 눈으로만 먹어보았지 한 개라도 빼먹으면 싸리나무 회초리가 용서하지 않았다. 나는 하도 먹고 싶어서 부모님 몰래 곶감의 하얀 가루만 손으로 만져서 맛을 보기만 했다. 어느 날인가 곶감 분가루를 몰래 먹다가 아버지한테 들켰다. 나는 오른손 검지에 묻은 곶감 가루를 슬그머니 바짓가랑이에 닦고 왼손으로는 입가의 곶감 가루를 닦으면서 아버지의 눈치를 보았다. 아버지는 아무 말씀을 안 하시더니 처마 끝의 곶감 한 꼬챙이를 내려 주시면서 동생들과 같이 나누어 먹으라고 하셔서 동생들과 볼 때마다 침만 생겼던 싸리나무 꼬챙이의 곶감을 먹어보았다.



세상이 바뀌어서 가슴으로 보듬어가며 달래주던 사랑의 싸릿대 회초리도 없어졌다. 곶감 상점에 가보아도 친환경적이고 고향 냄새 물씬 나던 싸릿대 곶감 꼬챙이 대신, 셀로판지에 포장된 곶감이 제가 원조인 양 진열되어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전주시 평화동 동도미소드림 아파트에는 어머니가 쓰시던 싸리 채반 싸리 바구니가 걸려있다. 명절 때는 아내가 부침개를 부쳐서 올려놓을 때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면 어머니 얼굴도 같이 떠오른다.



싸리제 고개 넘어 싸리골을 지나가니 삐죽이 열려 있는 싸리문 안이 보인다. 그 집 아저씨는 싸리비로 마당을 정갈하게 쓸어 놓으셔서 발자국을 남기면서 걸어 들어가기도 미안했다. 아주머니는 싸리대로 군불을 지필 겸 고구마를 쪄서 한 소쿠리 내놓으시고 먹고 가란다. 고구마를 먹으면서 싸리골 필부필부(匹夫匹婦)의 진솔한 이야기 속에는 어느 철학자의 강의보다 따끔한 싸리회초리로 나의 정곡을 찌른다.



오늘따라 초등학교의 싸리비 노래가 떠오른다.




봄에는 싸리비 꽃잎을 쓸고/ 여름엔 싸리비 빗물을 쓸고/ 가을엔 싸리비 낙엽을 쓸고/ 겨울엔 싸리비 흰 눈을 쓴다.




이제는 싸리비로 나 학림(學林)의 홍진(紅塵)도 쓸어내어 새해를 대비해야겠다.

(2020.12. 20.)


 

회원:
2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42
어제:
287
전체:
223,5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