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격리 중인 딸과 손녀

2021.01.01 23:04

이진숙 조회 수: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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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격리 중인 딸과 손녀

이진숙










요즈음 거의 매일 마트에 다녔다. 그곳에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물건을 고르는 손길은 즐거움으로 이곳 저곳을 날개 달린 듯 마구 날아 다녔다.

카트 가득 물건들이 실리고 계산대에서 오랜 시간 기다리고 받아 든 영수증의 길이가 한없이 늘어져도, 신용카드를 내미는 내 마음은 기쁘고 행복하다.



이때가 아니면 언제 이렇게 매일 이곳 저곳 마트에 장보기를 하러 다닐까? 매일 조용하다 못해 적막하기 까지 했던 우리 집에 끊임없이 말소리가 들리고, 발걸음도 힘차게 쿵쾅거리는 소리가 경쾌한 노래 소리로 들린다.





지난 20일 ‘코로나 19’의 무서운 한파를 뚫고 우리 딸내미가 둘째 루미를 데리고 왔다. 지난여름 우리 내외가 핀란드에 가려다 무서운 코로나19란 녀석 때문에 모든 하늘 길이 막히는 바람에 서운한 마음을 꿀꺽 삼키고 맥없이 주저앉았었다. 그때만 해도 온 세상이‘코로나 19’의 공포로 국경을 봉쇄했다, 매일 몇 만 명의 확진자가 나왔다, 그것으로 인해 죽는 사람도 부지기수라느니, 특히 기저질환을 가지고 있는 노인들의 피해가 크다는 둥 곁 잡을 수 없는 소식들뿐이었다.


우리 내외가 기저질환이 있는 노인들이니 함부로 집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마냥 마당만 뱅뱅 돌고 있었다.

시간이 약이라고 날이 가고 달이 가니 치료를 받아 완쾌된 사람들도 생기고, 특히 우리나라는 K방역이 성공을 거두는 양상으로 바뀌고 있었다.


딸내미는, 엄마가 못 오니 자기라도 한국에 와야겠다며 한 달 일정으로 비행기 표를 예매했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기쁘면서도 한편 불안한 마음이 더 컸다. 2주간의 자가격리도 각오하고 오겠다니!

하긴 40년 넘게 살았던 곳이니 어찌 그리움이 없었겠는가? 특히 사람이 그리운 것 같았다. 그곳은 워낙 사람 수도 적을 뿐 아니라 사람 간의 교류도 거의 없는 곳이고, 말도 설고 모든 것이 선 곳에 ‘코로나 19’로 인해 회사에 나갈 기회도 없이 재택근무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서울에서 살며 직장에 다닐 때는 직장 동료, 전 직장에 같이 근무했던 사람들, 대학 동창들 등, 만남이 적지 않았었는데, 일 년 넘게 오로지 가족들만 보고 있었으니, 그렇다고 가족에 대한 사랑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허전한 마음이 얼마나 컸을까? 불안한 가운데서도 무심한 시간은 흐르고 흘러 드디어 온다고 한 날이 왔다.

S N S 상에는 별의 별 말들이 다 올라와 있다. 기내에서는 절대 음식도 먹으면 안 된다, 복도 쪽에 있는 자리가 가장 위험하다느니, 화장실에도 가면 안 된다, 특히 화장실이 제일 위험하다는 둥 갖가지 소식들이 있다. 비행시간 9시간 30분, 도착한다는 시간에 딱 맞춰 인천 지역번호가 찍힌 곳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최 ㅇㅇ과 최 ㅇㅇ을 아세요?"

"네! 우리 아이들입니다."

공항직원이 자가 격리할 곳을 전화로 확인한 내용이었다. 드디어 도착했구나. 반가움 반 걱정 반이었다.

전화가 되지 않으니 답답하고 걱정이 컸다. 다행히 W I F I가 잘 되어서 카카오 톡으로 연신 소식을 보내 왔다. 온통 마스크를 하고 있는 모습이 공포감으로 다가 왔다고 했다. ‘방역 버스’를 타고 ‘전주 월드컵 경기장’에 도착하여 캐리어 만 우리에게 건네주고 곧바로 대기하던 미니버스를 타고 ‘덕진 보건소 선별 진료소’로 갔다. 한참 뒤 그 버스가 다시 집 앞까지 바래다주고 돌아갔다. 그리고 커다란 상자를 하나씩 들고 대문으로 들어왔다. 3년 만에 보는 예쁜 손녀를 안아 볼 수도, 일 년 반 만에 본 딸내미와 손을 잡을 수도 없었다. 곧바로 녀석들은 화장실이 딸린 안방으로 우리 내외는 거실로 들어왔다. 오랜만에 보는 자식과 손녀가 두렵기도 했다. 행여 무슨 일이 있을까 봐.

가지고 온 상자를 열어 보더니 ‘와!’하고 놀란다. 즉석 밥, 컵라면, 참치 캔, 조미 김, 등 먹을 것들과 마스크 칫솔 체온계 등 필요한 물건이 가득 들어 있다며 좋아했다. 그러더니 곧바로 컵라면을 먹겠단다. 김치랑 끓인 물을 슬그머니 밀어 주고 곧 바로 거실로 돌아왔다.

‘참! 이게 무슨 꼴 이란 말인? 쯔 쯔 쯔.’

다음 날 둘 다 검사 결과 음성이라는 문자를 받았다. 마음이 놓였다. 2주간 자가 격리를 잘 견디고 마지막 검사에서도 부디 좋은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면서, 좁은 아파트가 아닌 너른 마당이 있는 집에 살고 있는 것에 대해 세삼 감사한 마음이다.


자가 격리 열흘 째, 오랜 만에 눈이 내렸다. 온통 하얀 세상이다. 모녀가 단단히 챙겨 입고 마당에 나가더니 눈을 치운다며 *넉가래를 찾는다. 마당 여기 저기를 밀고 다니며 길을 내고, 차고 앞도 말끔히 치웠다. 이내 모녀가 눈사람을 만들기 시작하더니 금세 눈을 뭉쳐 삼층으로 쌓았다, 거기에 예쁜 손녀 루미가 솔가지로 팔도 만들어 주고 머리카락도 심어 주고, 솔방울과 숯으로 얼굴도 예쁘게 단장해 주었다. 그리고 스마트 폰으로 사진도 한 장 찰칵. 마당에서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도록 이리 저리 뛰는 엄마와 딸의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저절로 내 얼굴은 웃음꽃이 피었다.

열두 살짜리 손녀가 갑갑해 할만도 하지만 잘 견디어 주는 모습도 대견하고, 핀란드 시간에 맞춰 근무하는 딸내미도 믿음직했다.

자가격리가 끝나면 먹고 싶은 음식, 또 내가 녀석들에게 사 주고 싶은 음식들을 날짜 별로 새 달력에 빠짐없이 표시해 두었다.


비록 대문밖 출입은 할 수 없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오전, 오후 하루 두 차례씩 스마트 폰 애플리케이션에 자가 진단 결과를 성실하게 기재하면서 격리기간이 지나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2021. 1. 1.)






* 넉가래 : 곡식을 밀어 모으거나, 눈 같은 것을 치울 때 쓰는 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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