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수필을 만나다

2021.01.02 19:56

전용창 조회 수:15


img76.gif

시가 수필을 만나다

꽃밭정이수필문학회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전용창












오래전 일이다. 어느 중견 시인이 나한테 “선생님도 시인이십니다.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시적 표현입니다.”라며 칭찬을 했다. 그 얘기에 고무되어 시를 쓰고 싶었다. 학창 시절에 암기했던 ‘김소월’의 「진달래꽃」이나,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 ‘윤동주’의 「서시」, ‘정지용’의 「향수」, ‘정호승’의 「수선화에게」 같은 시를 낭송하고 있노라면 나는 벌써 시인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정작 내가 시를 쓰려고 주제를 설정하면 그런 시는 이미 세상에 나와서 별빛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고작 남의 시를 흉내 내고 있었다. 그래서 포기하고 수필의 길로 들어섰다. 수필은 나의 삶을 진솔하게 빚어내면 되기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영역이었다. 글감도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다양했다. 머릿속에 각인되어 못 잊는 일들이 주마등처럼 다가왔다. 그 속에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슬픔과 분노도 있었다. 특히나 헛짚어 살아온 삶의 실타래가 오래도록 내 머릿속에서 엉킨 채 나를 힘들게 했다.



그럴 때마다 한 편의 수필로 담아놓고 나면 잊을 수가 있었다. 처음에는 가족에 대한 글을 썼고, 다음에는 나에 대한 글을 썼으며, 그다음에는 지인에 대한 글을 썼다. 그렇게 쓰고 나니 비로소 나무와 꽃들이 보였고, 미물인 개미까지 보였다. 수필이 차곡차곡 쌓일 때마다 추수 때 곳간에 곡식이 쌓이는 것처럼 흐뭇함을 느꼈고, 영적으로도 평안함을 얻을 수 있었다. 글 속에 녹아 있는 나의 모습과 실제의 나의 모습이 다르지 않으려고 노력도 했다. 대학 졸업장을 받을 만큼 시간이 지나다 보니 등단도 하게 되고, 나의 마음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고 바라보는 혜안도 생겼다. 반평생 수필과 함께 살아오며 ‘수필아, 고맙다!’가 일상의 감사가 된 ‘K 교수님’을 어느새 나도 닮아가고 있었다.



이대로도 행복했는데 욕심이 생겼다. 내가 여행길에서 만난 시비가 그것이다. 목판에 새겨진 시비는 나를 유혹했다. 우리에게 낯익은 시를 볼 때마다 나도 저런 시를 써서 부모님 산소 가에 새워 놓으면 얼마나 좋을까? 후손에게 자긍심도 심어주지 않을까? 수필은 깊이가 있어 좋지만, 내용이 너무 길어서 새기기가 힘들다. 그래서 혼자 시 짓는 공부를 했다. ‘코로나 19’로 시간이 나니 ‘유튜브’를 통하여 시 창작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여러 시인의 강의가 있었다. 그중에 5,000여 편의 시를 썼다는 ‘Y 시인' 강의가 나에게 족집게처럼 들려왔다. “시는 쉽게 있는 그대로 쓰고 마지막에 자기 ‘생각 한 줄‘을 넣으면 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에게는 200여 편의 수필이 있지 않은가. 매 편마다 제목을 달리하여, 알곡만 모아 정리하고 말미에 생각 한 줄을 넣으면 200편의 시가 탄생하지 않는가? 그런 생각에 이르니 먼저 수필을 배운 게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에 대한 열정이 출렁이고 있을 때 평소 존경하는 목사님으로부터 시 창작 교실에 나와 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았다. 가서 보니 그곳에는 10여 명의 회원이 있는데 이미 시인으로 등단하여 시집을 낸 작가가 절반은 되었다. 한 달 반을 나가니 방학이 코앞인데 동인지를 발간한다고 작품을 내라고 했다. 처음에는 포기하려 했으나 이미 내 수필 속에는 시가 될 만한 게 여러 편 있지 않은가? 그런 생각이 들자 두려움이 없어졌다. 나는 처녀 시로 어머니에 대한 시를 쓰기로 했다. 그동안 수필에 나타난 어머니 모습을 생각하며 그물망을 좁혀갔다. 단락별로 행을 쓰고는 ‘수미쌍관’의 묘미를 살려 말미에 ‘생각 한 줄’을 넣었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시가 ‘어머니 가신 길’이다.






「어머니 가신 길」




停 林 / 전 용 창









어머니 떠나시던 날

늦가을 부슬비

새벽부터 내렸다

나도 울고 하늘도 울었다



하늘나라 더 좋다 하시면서

우리 사남매 못 잊어

병상에서 삼 년 반

생명줄 놓지 않으셨네



밤마다 잠 못 이루시던

어머니 고통을 그땐 왜 몰랐을까

불효자 세 글자

내 가슴 짓누른다



천국에서 만나자 울먹이던

십오 년 전 그날이

엊그제처럼 선한데



어느새 나도

어머님 가신 그 길

뚜벅 뚜벅 걷고 있다






지금 나의 시는 朱子의 ‘불효부모사후회(不孝父母死後悔)’처럼 어머니가 가신 길을 뚜벅 뚜벅 걸어가는 불효자의 모습이다. 그동안 수필 속에 담아 두어온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한 편의 시가 되어 다시 태어났다. 이제부터 나의 수필은 시의 친정이 될 것이다. 친정 곳간에 쌓여 있는 곡식이 시가 되어서 외로운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생명의 빛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2021. 1. 2.)



 

회원:
2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126
어제:
287
전체:
223,6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