꾀병, 미미의 소감
2015.09.23 11:12
*꾀병
나는 유서도 못쓰고 아팠다.
미인은 손으로 내 이마와 자신의 이마를 번갈아 짚었다.
"뭐야 내가 더 뜨거운 것 같아" 미인은 웃으면서
목련꽃같이 커다란 귀걸이를 달고 문을 나섰다.
한 며칠 괜찮다가 꼭 삼 일씩 앓는 것은
내가 이번 생의 장례를 미리 지내는 일이라 생각했다.
어렵게 잠이 들면 꿈의 깊섶마다 열꽃이 피었다.
나는 자면서도 누가 보고 싶은 듯이 눈가를 자주 비볐다.
힘껏 땀을 흘리고 깨어나면 외출에서 돌아온 미인이 옆에 잠들어 있었다.
새벽 즈음 나의 유언을 받아 적기라도 한 듯
피곤에 반쯤 묻힌 미인의 얼굴에는,
언제나 햇빛이 먼저 와 들고 나는 그 볕을 만지는 게 그렇게 좋았다.
박준(1983-)
* 이 시는 시인의 나이에 비해 많이 깊다.
시인은 그만큼 자신의 나이에 비해 고통을 많이 겪은 자 같다.
그는 그것을 그의 시로 진지하나 아주 무겁지 않게 노래를 하고 있다.
여기서 '미인'은 없지만 "보고 싶은 듯 눈가를 자주" 비비면서
꾀병아닌 꾀병을 앓았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그 힘듬을 '유서'를 쓰듯이...
그의 이 아름다운 고백에 박수를 쳐 주고 싶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란 그의 첫 시집은
온통 쓸쓸함이고 아픔이다.
신체적으로도 아팠던 시인이어서 동병상련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아날로그적 표현이 오래전 서울, 내 고향으로 날 데려간다.
박준시인은 앞으로도 내가 오래 따라 읽을 젋은 시인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미미의 짧은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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