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정호승의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I)

2003.06.30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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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정호승
나는 일찍이 마흔 하나에 ‘월간조선’에서 직장생활을 청산하고 10년 동안 수절하다가, 21세기가 시작되는 벽두에 ‘현대문학북스’라는 출판사를 창업하고 위탁경영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마저도 지난 연말에 그만두고 다시 내 본연의 자리로 돌아왔다. 나는 출판인이 아니고 시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데 무려 3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했다. 물론 친소유무를 떠나 이해득실과 손익계산에 따라 인간의 마음이 그 얼마나 표변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공부하게 되었지만, 그래서 그들을 이제 내 스승으로 삼고있지만, 나는 늘 이렇게 깨닫는 일이 늦어 막대한 시간을 그 대가로 지불한다. 월간조선을 그만뒀을 때도 마찬가지다. 실은 그때 나는 문청 시절부터 쓰고 싶었던 소설을 쓰고 싶어서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소설 쓰기에 매달렸다. 그러나 나는 결국 문학의 장르 중에서 나의 문학적 기질에 맞는 장르가 시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만 7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말았다. 인생에서 시간을 낭비하는 죄가 가장 크다는데, 나는 이렇게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을 뒤늦게 깨달아 인생을 허비하는 죄를 지었다.

그러나 용서하시라. 지금 나는 두 번 다시 그런 죄를 짖지 않기 해 다시 시의 자리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았다. 책상 위에는 은빛 니켈로 만든 십자가 고상이 하나 있다. 평생 십자가에만 매달려 살아온 청년 예수를 바라본다. 그가 잠시 고개를 들고 나를 보더니 “짜식!”하고는 싱긋 웃는다. 나는 그 맑은 웃음에 그만 고개 숙이고 묵상한다. 예수의 손에는 십자가의 못 자국이 나기 전에 먼저 목수 일로 생긴 굳은살이 박혀 있었다. 나는 이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시를 쓰기 전에 먼저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기 전에 먼저 인간의 고통을 이해해야 한다. 고백하건대 나는 내 삶이 고통스러울 때마다 시를 쓸 수 없었다. 나의 삶 또한 만남과 헤어짐의 모자이크라는 것을, 인간에게 있어서 고통과 시련이란 해가 떠서 지는 일만큼이나 불가피하다는 것을, 불행이 인간을 향한 신의 확실한 표지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게 되기까지 나는 단 한편의 시도 쓸 수 없었다. 그 동안 내가 쓴 시들은 고통이 잠깐 잠잠해지고 난 다음에 집중해서 쓴 시들이다. 그러다 보니 나는 문예지에 꾸준히 지속적으로 작품을 발표하지 못하고 한꺼번에 벼락치듯 이 한 권 분량의 시를 써서 급하게 시집을 내곤 하였다. 깊은 사색의 사막을 건너지 못하고 무슨 자위하듯이 시를 썼으니 그 시들이 오죽하랴. 그 동안의 고통을 위로 받고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찾다 보니 나로서는 자연히 그런 방법으로 시를 쓸 수밖에 없었다.

괴테는 색채가 빛의 고통이라고 했다. 나는 이 말을 이해하는데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 아름다운 색채는 바로 빛의 고통이 한데 어우러져 이루어진 결과다. 고통과 시련과 역경을 통과하지 않고는 결코 인간이 아름다워질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나자 어느덧 50대 중년의 사나이가 되고 말았다. 상처 없는 사람은 결코 먼 길을 떠날 수 없고, 이미 먼 길을 떠난 사람에겐 오히려 그 상처가 힘이 된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나는 이제 그 상처의 힘으로 다시 시의 길을 가려고 한다. 세상에는 가도 되고 안 가도 되는 길이 있지만 꼭 가야 할 길이 있다. 이제 그 길이 시의 길임을 확신한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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