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귓속의 물고기 한 마리

2003.11.01 03:10

미미박 조회 수:395 추천:35

젊은 의사는 내 귀의 이명현상을 일시적인 난청으로 진단했다
나는 의사에게 지난 주말 만어사를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일만 마리의 물고기들이 돌로 변했다는 만어산
만어사를 다녀온 후 내 귓속에 숨어 따라온
작은 물고기 한 마리가
나를 괴롭히는 귀울음 현상의 주범이 아닌지를 묻지 못했다

만어사에서 돌 속의 물고기들이 내는 금종소리 은종소리를
듣다가 산수유 노란 꽃 그늘에 누워 낮잠이 들었는데
그 때 나는 분명히 내 귓속으로 숨어드는 물고기
한 마리를 보았다

바위 아래 푸른 바다에 사는 물고기 한 마리가
내 귓속으로 들어와 달팽이관 안에 놀고 있다는 것을
의사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절집에 걸린 풍경처럼 소리를 내는 물고기를 믿지 못할 것이다
신라사람 경문왕의 당나귀 귀를 본 복두쟁이의 마음처럼
말할 수 없는 비밀의 고통이 신화를 만든다

만어사에는 소금내음 풍기며 바다가 출렁거리고
만어사 바위들이 내는 종소리가 그 바다에서 물고기로 태어나고
그 중 한 마리가 내 귓속을 들어와 일으키는 시인의 이명을
간단한 처방전을 쓴 후 이내 다음 환자를 호명하는
젊은 의사는, 그 비밀을 고백한다해도 알지 못할것이다

정일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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