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내> 프랑스서 출간

2003.12.20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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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이 흩뿌려 놓은 기구한 삶의 편린들
분단 이후의 아픔 그린 소설 <두 아내>프랑스서 출간

단국대 불문과 정소성 교수
출처: 주간한국 2003.12.4 1999호, 장병욱 차장(aje@hk.co.kr)
www.hankook.com

다음대화는 지극히 한국적인 정황에서 나온 것이다. 현재의 평균적 한국인이라면 충분히 개연성을 인정할 수 있는 대화 내용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역사가 희미해져 버리고 나서도 과연 그럴 것인지, 누구도 선뜻 장담하기 힘들다. 무슨 말인지, 한 번 엿들어 보자. (괄호 안의 글은 원문에 없다.)

A: 전쟁통에 나도 모르게 남으로 편입되었지. 내가 공화국을 위해 근무하던 지역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남쪽의 땅이 되어 버렸어. 그래서 가족은 단 한사람도 데리고 나오지 못 했어.

B: 그럼 지금 부인은?

A: 남에서 재혼을 했어. 마침 고향에서 옛날 우리집에서 머슴을 살던 사람이 역시 전쟁통에 죽지 않고 가족을 데리고 월남하였길래 그분의 맏딸과 재혼을 했다네. 그리고 월남 전에는 역시 우리 집안의 맏머슴을 하던 분의 맏딸과 결혼을 했었고.(그렇다면 다음 질문은 당연한 것이리라)

B: 그럼 남과 북에 아내가 하나씩 있는 셈이군요?

A: 그런 셈이지. 북의 아내와는 이혼한 적이 없으니까. (문제의 조짐이 언뜻 보인다)

B: 두 분 다 사랑하고 있습니까?

A: 그런 것 같아.

북의 아내는 그야말로 공화국의 정신을 그대로 물려 받은것 같고,
남의 아내는 역시 자본주의 정신을 물려 받은 것 같아. 누가 옳고 그르다는 것은 편견에 불과해. 둘 다 옳은 거야. (진짜 문제는 여기서부터 이리라. 대화를 좀더 들어 보자)

A: 개인을 자유롭게 하는 데는 물론 남의 체제가 낫지만, 역시 북은 빈부의 차이를 없애려고 애쓰는 것만은 사실이야. 인간을 정치적 통제의 체제로부터 벗어나게 하는데는 다소라도 북이 낫지 않을까? (저 말을 쉽게 부인하기 어려운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남쪽의 경제적 양극화 현상이 심화돼가고 있는 요즘이고 보면 상당한 설득력까지 띠는 것 아닐까)

한국적인, 너무나 한국적인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 한국에서만 나올 수 있는 대화다.
남북 분단 상황이 한 인간의 삶에 끼치는 영향을 두 명의 아내를 가진 사내로 치환시킨 것이다. 중견 작가이자 교수인 정소성(59 단국대 불어불문학)씨가 1999년에 발표한 열세 번째 장편 소설 ‘두 아내’의 현재성은 저 같은 통찰덕에 여전히 빛을 발한다(찬섬刊). 특히나 흐렸다 개였다를 반복하는 남북 관계에서는 상당한 설득력으로 다가온다. 제목의 두 아내란 요즘 인기 검색어인 불륜을 가리키는 것도, 가정 파괴를 상징하는 것도 아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은 가장 세계적인가? 이 소설이 불어로 번역돼 프랑스 현지에 소개될 날이 멀지 않았다. 9월 15일~10월 17일까지 정씨가 파리에 머문 것이 전초 작업이었다.

“파리 재 8대학 어문학 교수 장 폴 데구트, 내 책을 번역 출간할 출판사 ‘새집과 장미 한 송이’사의 편집국장 폴 르노와르 등이 동석한 자리였어요.” 한강이 내려다보인다는 점 때문에 5년 전 옮겨 온 옥수동 현대 아파트 14층 45평에 오후의 초겨울 양광을 듬뿍 받으며 작가는 파리의 고급 한정식 집에서 출판계약 등을 위해 가졌던 만남을 돌이켰다. 2004년 2월까지 1년 동안의 안식년 덕분에 모처럼 여유를 찾은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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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의 최근 프랑스행은 개인적으로도, 한국의 문단 전체로 봐서도 커다란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1999년 출판된 ‘두 아내’가 불어로 번역돼 현지 출판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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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진면목 후세에 전달

2년에 한 번꼴로 새 소설을 발표, 전업 작가가 아님에도 부지런한 작가로 소문난 그는 이번 소설을 가리켜 “나의 대표작으로 생각하고 집필에 몰두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전쟁의 진면목을 후손에게 전한다는 마음이었다. 6.25의 비국을 사실적으로 재현해 내기 위해 관련 서적과 영상물을 접하는 것은 당연한 필수였다. 글과 글이 생생한 힘으로 다가 오는 데에는 그것은 물론, 무산 청진 사투리를 생생히 복원해 내기위한 작가의 노력 덕택이다. 경기대 출판부에서 펴낸 ‘함경도 방언 사전’과 북한과학 백과사전 출판사의 ‘방언사전’으로 주(主) 언어인 함경도 사투리를, 동국대 출판부 발행 ‘평안 언어 연구’를 통해 평안도 방언을 익혔던 결과다. 작품속의 무산-청진 사투리는 능란한 어휘구사 덕분에 마치 바로 옆에서 말하는 듯 다가온다.

언어의 재구와 더불어 이 소설이 갖는 또 하나의 특징은 장면 장면이 무척이나 생생하게 다가온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인민재판 과정을 그린 다음과 같은 대목은 사실주의를 넘어 극사실주의(hyper-realism)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소설이 묘사하는바, ‘똥구린내와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그것들이 사람을 묘하게 흥분시키는’ 인민재판 현장은 이렇다. ‘뒷통수에서는 선지피가 솟구칠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누르께한 두부 같은 것이 주변에 확 흩어지는 것이었다.’ ‘린민’에 의해 악덕 지주로 지목돼 재판장에 오른 한 사람의 최후다. 책이 독자를 휘어 잡는 데에는 이 같은 치밀함이 구석구석 숨어 있는 덕택이다. 그것은 6.25가 그에게는 ‘근원적인 기억’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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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의 국제적 입지에 서글픔

자신의 일만으로도 벅찼을 이번 방불은 한국 문학의 세계적 입지를 똑똑히 확인하는 뜻밖의 기회이기도 했다. “프랑스 최대의 서점인 프낙(FNAC)에 들러 보니, 일본과의 차이가 여실히 드러나더군요.” 한국 문학을 대표한다고 할만한 두 작가의 책이 봉투에서 뜯지도 않은 채 구석에 놓여 있었던 데 반해, 일본은 서가 한 칸씩이 가와바다 야스라니등 대표 작가의 작품이라는 현실을 똑똑히 확인했다는 것이다.
(...)

“경제 대국에 스포츠 대국이라지만, 정작 문화 쪽으로 오면 형편없는 게 한국이에요.” 걱정은 끝이 없다. 이번 방불 길에 새삼 확인하고 온 대로다. 요즘, 작업에 더욱 충실하고 싶은 이유다.
그는 비록 강의가 없는 날이라도 오후가 되면 학교 연구실에 가서 적어도 200자원고지 5장 넘는 분량으로 연재소설을 써서 이 메일로 띄워 보낸다. 몇몇 언론사 홈 페이지에 연재중인 ‘사랑의 전설’과 ‘어둠의 의식’등 두 편이 그것이다. 형태만 바뀔 뿐, 글 쓰는 일이란 결국 일상의 지난한 승부라는 사실을 진작부터 알고 있잖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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