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을 위한 버팀목의 자질과 역할론
변재무 시집 ‘버팀목’에 부쳐

                                                           문인귀/시인


  변재무 시인을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있다면 그것은 ‘참 좋은 친구’라는 말일 것이다. 그를 만나는 사람마다 그에게 친근감을 갖게 하는 것은 그의 소탈한 차림새나 모습과 어눌한 듯 한 구수한 언법(言法)에만 있지 않다. 그의 삶 자체가 상대로 하여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진솔과 소박함이요 어떤 일에나 보여주는 책임 있는 행동 때문일 것이다.

  변재무시인은 사시사철 맑고 밝은 이곳 태평양 연안의 아름다운 도시 오렌지카운티에서 잔디와 나무와 꽃을 가꾸는 가드닝(Gardening) 비즈니스를 30년 가까이 하고 있다. 자연 속에서 자연을 다루고 또한 그것을 유지하고 있는 많은 생명들과 그들의 가치를 남다른 시각으로 접할 수 있는 귀한 환경은 그에게 존재로써 존재이게 하는 버팀목의 역할을 찾아내는 시성(詩性)에 충실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으리라.

  변 시인은 일찍이 미주중앙일보를 통해 산문(散文)으로 입상한바 있다. 그렇지만 산문 쪽보다는 시에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십 삼사년 전쯤으로 생각되는데 그 때 한 달에 한번 모이는 ‘오렌지 글 사랑 모임’ 워크숍에서 제출한 그의 첫 시를 받아본 나는 “이것은 시라고 할 수 없다”라는 한마디의 말로 그의 시에 대한 열정을 묵살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리석었고 자칫 좋은 시인 한 사람 들어나지 못하게 하는 큰 오류를 범하고 말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할 정도이다.
  그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은 그 후 10년 동안 그가 시를 공개 석상에 내 놓은 일이 없었고 나 또한 그가 그렇게 시와 멀어지게 된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늘 가지고 있던 터에 4년 전 작심을 하고 그를 만났던 것이다.
  처음 1년 동안 매주 독대하다시피 만나 시 창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때마다 그는 녹음기를 틀어놓았다. 나는 좀 거북스러워 치울 수 없냐고 했으나 자동차를 타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 그 때마다 복습을 하겠다고 했다. 그러다 시집에 수록 된 시 ‘녹음기 사건’같은 사고(?)를 치기도 했다. 지금은 녹음기를 들이미는 것만은 졸업했지만 주중에 있는 창작교실에 빠지지 않으려고 자기 대신 사람을 고용해 놓고 나오는 열성에는 변함이 없다.

  그가 추구하는 시 정신은 희생의 가치관에 있다. 장미를 보면서 그 꽃의 아름다움이나 향기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장미가 어떻게 해서 피는가를 귀띔해 주고, 잘린 팜트리 둥치를 둘둘 감아 오르는 담쟁이를 담쟁이이게 하는 버팀목의 역할을, 평생을 대못을 지니고 살다 간 어머니는 그 자체가 대못이었고 또한 그 대못은 희생이었다는 것을 들어내고 있다.  

장미가 땅에서 피는 것이 아니라/어미의 옆구리를 뚫고 나온 작은 가지에서 피고 지는 줄을,/언제나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고운 색깔을 만들기 위해 이별을 고하며/그 아픔 때문에 새벽이슬처럼 맺히는 눈물을 쏟아내고 있다는 것을//가시는/고통이 얼마나 잔인한 것인가를, 그러나/받아들여야만 하는 일 때문에 숨죽여 견디는 신음의 절정인 것을//어둠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한 가슴에 기쁨을 더해주는 일을 위해/시커먼 몸뚱이만 남겨도/꽃과 잎과 팔을 몽땅 잘라 드리는 일을 왜 계속하는지/아무도,/아무도 모른다.

                                                  -장미에 관하여- 중에서
  
  장미는 어미의 옆구리를 뚫고나와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계속적인 가지치기로 어미의 옆구리는 만신창이가 되어가도 그 고통은 한 가슴에 기쁨을 더해주는 일 때문에 존재하는 버팀목의 가치관인 것이다.  

나아갈 길 찾아 허공을 더듬으며/땅위를 기어가던 담쟁이/그 내미는 손마다 자신의 온 몸 내어주고/바람결에 달싹이는 잎 새 사이로/검은 몸뚱이가 보였다 가려진다//크고 작은 잎 새마다 윤기를 내며/하늘로 일어서는 담쟁이들/저 죽은 나무등걸 하나/마침내 한생명의 버팀목 되어/파릇하게 서있다.

                                                  -버팀목- 중에서

  팜트리(palm tree)는 가지가 없는 나무이다. 몸통 하나로 하늘 높이 솟아오르다 그 몸통이 잘리면 여느 나무들처럼 뿌리에서 움을 티어 살아나거나, 잘린 몸통에서 가지를 쳐 다시 살아나는 나무가 아니다. 그런데 의지하지 않고는 홀로 설 수 없는 담쟁이 넝쿨이 죽어있는 팜트리 등걸을 찾아왔다. 시커멓게 죽은 목숨이지만 그 나무등걸은 다른 생명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결국 죽은 팜트리도 마침내 파릇하게 서있게 되는 형상이 된다. 희생이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저들의 삶을 있게 하는 것으로 공존의 가치인 것을 알 수 있다.

아버지는 돌아갔다
어머니의 대못 무서워 나오지 못 하겠다 그러시더니
한 줌 재가 되어 들려나왔다
어머니는 아버지 가슴에 박지 못한 그 못
관 뚜껑에라도 쾅쾅 치려고 벼루고 계셨는데
그것도 허사였다

어느 달 밝은 밤
    달빛처럼 하얘진 어머니는
장도리로 못을 뽑고 계셨다
아니 그 얇아진 가슴에
그 대못 하나
더욱 깊이 박고 계셨다.
                                              
                                   -어머니의 대못- 중에서

  어머니가 늘 지니고 살아온 대못이 아버지를 향한 어머니의 한(恨)으로만 국한시킬 수 없다. 그 대못으로 인해 어머니의 삶은 버티어졌고 그 버팀으로 인해 어머니는 자식들의 버팀목이 되었던 것이다. 어찌 이 어머니가 이 시의 화자(話者)의 어머니만 되겠는가. 우리 모두의 어머니는 이렇게 대못을 쥐고 대못 역할을 하면서 우리의 버팀목이 되셨던 것 아닌가.  

  사물들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모두가 끼리끼리 버팀목 노릇을 하고 있다. 어떤 것은 살아서 또 어떤 것은 죽어서 적시적소에서 버팀목으로 존재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 또한 버팀목 노릇을 하고 있다. 나는 여기 ‘철길’이라는 시에서 버팀목의 역할과 버팀목의 자질을 확인해본다.

     아내와 내가 마주보고 눕는다
나란 나란히 침목이 되고
나란 나란히 철길도 되고

아이들 기차가 휘익 지나간다
워싱턴으로, 뉴욕으로, 아틀란타로.....
기차는 그렇게 지나가고
삭아가는 침목 위 철길은
누렇게 녹이 슬고.

                                             -철길- 중에서

  평범한 시다. 그러나 이 시집에 흐르고 있는 버팀목의 가치론적 의미에는 더없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시이다. 간단히 말해서 부모와 자신의 관계에 있어 부모는 자식을 위한 버팀목이라 할 수 있겠지만 ‘부모’라는 버팀목의 자질은 철길과도 같은 한 치의 오차도 허락되지 않는 역할이 부여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아내와 내가 마주보고 눕는다’에서 나란 나란히 침목이 되고 나란 나란히 철길도 되는 부모의 가치가 절대 우선이라는 점이다. 그렇지 않은 부모의 철길을 상상해 본다. 과연 아이들의 기차가 휘익 지나갈 수 있을 것인가. 비록 삭아가는 침목 위 철길은 누렇게 녹이 슬어도 마주보고 나란 나란히 철길이 된 부모야말로 최상의 버팀목 자질이 아닐까. 그 자질은 개인적인 양심과 상대적인 신뢰의 척도에 따른다는 것을 다음 시편들을 보면 금방 알게 된다.

  열다섯 살 소년 때 뒷산 중턱에서 큰 돌 하나 뽑아 장난삼아 굴려놓고 그 돌이 산 아래로 쿵쿵 점프하며 굴렀다. 그때서야 산 아래도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이 생각나서 가슴 조이며 어서 돌이 멈춰서기를 기다렸던 시절이 있다

그 돌 어디에 멈추었을까
까맣게 잊고 살아왔는데
50년이 지난 오늘 미국까지 굴러와
내 발등을 찍는다.

                                   -굴러온 돌- 중에서

    매일 배달되는 우편물 속에
도장이 찍히지 않은 깨끗한 우표 한 장
그것을 다시 쓸 것인가 말 것인가

39센트짜리 얇은 우표 한 장이
160파운드 몸뚱이에 붙어
이리저리 끌고 다닌다.

                               -우표- 전문

   39센트짜리의 유혹, 장난삼아 굴려 본 돌처럼 장난삼아 써보고 싶은 마음이다. 버리기는 아까워 책상서랍에 넣어둔다. 그러다보니 그 우표 한 장에 육중한 몸뚱이가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형국이 되고 만다. 써도 되는 것일까? 썼다가는 50년을 굴러온 돌처럼 언젠가는 발등을 찍히고 말 텐데 다음의 ‘색깔’에서 해답을 찾아본다.

도자기를 구워낼 때/솔잎재가 들어가서/은은한 솔잎색깔이 돈다고//콩깍지 재는/콩 색깔로 나온다고//
나를 태운 재는/어떤 색깔로 나올까.
                                             -색깔- 전문

  솔잎재가 들어가면 솔잎색깔이 돌고 콩깍지 재가 들어가면 콩 색깔로 나온다는 도자기, 나를 태운 재는 자식들에게 어떤 색깔로 돌까. 어떤 색깔이라니,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말을 생각해 보면 알 것 아니겠는가. 인간으로써 진정한 버팀목이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지만 이렇게 세미한 것에까지 신경을 써야하는 버팀목의 자질론,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변재무 시인은 아내를 무던히도 사랑하는가 보다. 그의 사랑 표현 곳곳을 통해 그의 아내의 마음 또한 은은하게 들어나고 있으니 두 사람 대하는 것 퍽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 청자들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로 나란하지 못한 철길을 바로 잡아보는 시도로 돌려보고 싶다.

만나면 서먹서먹한 만큼
언제나 새로 시작 했어
40년을 함께 살았는데
아직도
그녀 앞에 서면
그때처럼 설레어져

                                        -고백- 중에서

  40년을 함께 살아온 아내를 향해 “아직도 나는 당신 앞에 서면 그때, 그날 밤, 처음 키스를 하고나서 걸어갔는지 날아갔는지 기억할 수 없다니까” 라는 그의 고백이 청자들의 마음까지 설레게 한다.  
  또한 소중한 그녀의 손을 잡기 위해 자라 등처럼 갈라져 있는 굳은살의 손바닥을 사우나탕을 찾아가 더운물에 불려가며 박박 문지르고 있는 정원사의 넋두리, 얼마나 소박하고 멋있는가.

손이 험하다며/손바닥에 박힌 못 자국을 만지고 있었다/손바닥은 자라등 같이 갈라져 있고/손등은 쭈그러져 있었다/그 손으로 아내의 손을 잡기 미안하다고/오늘도 그는 손바닥에 박힌 못 자국을/물에 불려 박박 문지르고 있다.

                                          -정원사의 손- 중에서


오늘, 감기 든 아내를 위해 만드는 뚝배기
소리 없이 다가와 들여다보던 그 사람
눈물 한 방울 뚝배기 속으로 떨어뜨리고 갑니다.

기막힌 뚝배기가 태어납니다.

                                         -뚝배기- 중에서

지난주/아내가 사온 사과는/파란 사과였다//그저께/아내가 사온 사과는/노란 사과였다//오늘은 빨간 사과를/사왔다//아내는/한번도/흰 사과를 사오지 않았다//그런데 아내는 언제나/하얀 사과만 썰어 내왔다.

                                         -사과2- 전문
  
  푸른 사과, 노란 사과, 빨간 사과, 그 어떤 사과를 사와도 아내가 깎아 내온 사과는 언제나 하얀 알맹이이다. 썰어 내온 사과를 보면서 화자는 아내의 한결 같음을 노래하고 있다.

오늘도 초록빛 소주병 하나
옆에는 안주
한잔 입에 털고
안주 하나
또 한잔 입에 털고 안주 또 하나
-죽어도 안 죽는다-
모지게 움켜쥔 하루의 분노
빈 접시 하나 가득 들어올릴 때
그 밑에 숨어있는 하얀 종이에 적힌 저 무서운 고백
-사랑해요, 여보-
정말로 나는 죽는다.

-죽으라 하네- 중에서

  술을 마신다고 아내가 바가지를 긁는가 보다. 나중에 휠체어에 앉아 있느니 미리 죽으라 한다는 엄포다. 한강에까지 갈 수 없으면 소주잔에라도 뛰어들어 죽으라 한다고 엄살이다가 죽어도 마셔야 하는 하루의 분노를 눈치 챈 것일까, 소주병 다 비우고 차려놓은 안주접시 다 비운 후 들고 일어서는데 접시 밑에 쪽지가 있다. “사랑해요, 여보”. 여기서 화자는 “정말로 날 죽이는구나”고 소리를 지른다. 이런 배려라면 누군들 “나 죽는다”라 소리 지르지 않겠는가 말이다..

    내가 원하는 예수는
사람을 바보로 이끄는
바보예수 보다는
세상에 힘이 되는
현명하고 똑똑한 예수님
그런데 큰 제자이신 당신은
정말 바보 예수처럼
정말 바보가 되셨군요

내 그림자만 밟고
거룩한 척 걸으며
주님의 불벼락이 떨어져도
먼 산만 바라보는
세상일에 길이 잘든 짐승입니다
바보가 되기 싫어
차라리 짐승으로 살아가는
이 바보는
당신과는 너무 다른 바보입니다.

                                          -바보야- 중에서

  변재무 시인은 ‘바보야’라는 김수환 추기경의 자화상을 보고 자신은 어떤 바보인가 생각해 본다. 신의 아들인 예수의 바보 같은 행적을, 또한 그러한 그의 바보 같은 삶에 빠져 든 큰 제자인 김수환 추기경의 바보의 삶을 바보로 보는 세상의 눈(자아)을 보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엔 “이 바보는 당신과는 너무 다른 바보입니다”고 무릎을 꿇고 고백을 한다. 이러한 신앙적 고백이 없이는 정말 바보가 될 수 없고 정말 바보가 되지 않고서는 버팀목의 바른 사명을 다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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