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적 가치와 ‘알맞게 떠 있음’의 미학
-강학희 시집 「오늘도 나는 알맞게 떠 있다」에 부쳐-

                                                                                                                                                                       문 인 귀
                                                   (시인)


  “알맞다”라는 말은 어떤 상항에서든 긍정을 의미한다. 알맞음은 존재(existence)로써 자생에만 의한 것이 아니라 외적영향의 수용에서도 이루어지는 공존적(共存的) 가치를 내포하는 보다 포괄적인 존재론(ontology)적 의미인 것이다. 그것은 그 어떤 곳에서든지 무엇인가가 존재함으로 균형을 이루고 평형을 유지해내는 가치를 말함이다.

  강학희 시집 「오늘도 나는 알맞게 떠 있다」를 살펴보면서 전체 4개의 묶음으로 구분된 시집 여기저기에서 이정표의 푯말처럼 박혀있는‘꼭지’ ‘배꼽’등 몸의 중심점, 물체의 심부(心府)를 만나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것들은 이미 떨어진 꼭지로, 혹은 퇴화된 명(命)의 흔적으로 가치에 앞선 존재 그 자체를 암시하고 있었다. 그것은 시집 전반에 걸쳐 존재에 대한 긍정적 사고(思考)를 펼치는 포석으로 ‘가치에 앞선 존재’의 필연성을 부각하고 있는 것이며 또한 생명의 발원으로부터 시작 된‘삶’또는 ‘있음’에 대한 풀이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강시인의 사물에 대한 관찰력은 시공(時空) 어느 쪽도 거저 넘김이 없는 과학적 분석에 의한 진실의 판별(判別)로 “좋은 관찰이 좋은 시를 낳는다”는 시 창작의 기본 공식에 충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이런 점은 시집 전체의 균형을 잡아나가는 탁월한 능력을 갖게 한 것이며 또한 시 쓰기에 임하는 마땅한 시인의 자세로 강학희 만의 독특한 시 세계의 설정을 이루게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 어느 것
  꼭지에서 떨어지지 않은 것이 없다

  그의 너가 되고 나의 그가 되는
  단절된 한 몸의 두 조각
  하나씩 품고 앉아
  내 안엣 깍짓손 풀지 않으면
  섬 아닌 것도 섬으로 남고
  -중략-
  
  닿으려, 닿으려 손을 내밀면
  상처는 아물리듯 사라지고
  둘이는 하나 되어
  -중략-

  섬으로부터 돌아와 만나는 우리
  그렇게, 다시
  만나질 섬은 섬이 아니다  
                    
                       -<섬> 중에서

  섬은 일반적으로 독존적(獨存的) 사물로 인식되어 있다. 그러나 강시인은 이러한 인식에 가려진 존재의 가치관에서 본래의 존재적 생명력을 살피고 있다. 따라서 섬의 존재는 인식의 차이에서 일어나는 착시(錯視) 현상에 의해 고도(孤島)로 처리되고 있는 것이지 ‘꼭지에서 떨어졌다’고 해서 외톨이가 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물이 빠지고 나면 다시 육지로 환원되는 땅덩어리라는 것, 나아가 개체(個體)의 고정관념이나 아집을 벗어나 ‘외로운 섬’으로 고집하지 말고 같은 뿌리의 관련성이라는 긍정적 인식으로 보자는 것, 다시 말해 “내 안의 깍짓손 풀고, 닿으려, 닿으려 손을 내밀면 상처는 아물리듯 사라지고 둘이는 하나 되는”그러한 유토피아적 삶을 구가해 가자는 것이다.  

  뱃심 없는 날
  뿌리와의 은밀한 통로
  배꼽을 꾸-욱 꾹, 눌러보라

  꼬리-이- 달달
  묵은 젖내 꼭지 끝에서 번져나는
  젖빛 감 꽃
  푸른 잎새 도닥거림에
  휘청하던 등줄기 물이 차오르고
  자존심이 빳빳이 서는
  몸의 중심점은 배꼽이다
  -중략-

  배꼽과 배꼽이 만나
  생명의 불꽃 이어지고 내가 존재된다
  -중략-
  
  늘 거기 있는 모태, 회귀의 길이 보인다
  모천으로 회귀하는
  모든 비밀센서는 바로 배꼽 아래 숨겨져 있다    

                          -<배꼽>중에서

  삶은 늘 오름과 내림의 공존 속에서 지속된다. 만약 자신의 삶이 내리막 쪽으로 기운다면 오르막 쪽은 힘을 잃을 것이다. 이럴 때 자신을 어떻게 추스를 것인가. 강시인은 우리더러‘배꼽을 눌러보라’고 말한다. 그러면 늘 거기에 있는 중심의 축인‘근본’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본질로부터 시작되는 것에서 해결을 찾아야 하고 또한 그 본질이란 배꼽이 배꼽을 만난 그 생의 중심점, 즉  배꼽아래 숨겨져 있는 그 ‘점’에 있는 존재 태동의 동기로 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라는 것이다. 여기서도 나는 ‘가치적 존재’에서보다 ‘존재적 가치’에 대한 일종의 책임론을 펼치는 그의 주장을 엿보게 된다.

  <담쟁이 넝쿨>에서 강시인은 꽃에 대한 정의를 꽃이라는 일반적 인식에서가 아닌 ‘존재’ 그 자체에서 찾아내고 있음을 본다. 아버지는 화자(話者)에게 “너는 꽃이다”고 한다. 그러나 화자는 자신을 잎이지 꽃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벽과 담과 그 많은 길들과 틈새들, 그리고 찔리고 데이고 쓸리는 그 과정을 지난 후 자신이 꽃보다 더 붉은 꽃이 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마치‘한 송이 국화꽃은 저 혼자 거저 피는 것 아니다’라는 미당의 <국화 옆에서> 와도 같은, 담쟁이 이파리가 꽃이 되는 삶, 여기에서도 인식보다 존재를 중시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 외  <나를 투시하다 1>에서 X-Ray로 자신의 가슴을 들여다보며 어둠처럼 가라앉아 있는 통증, 번뇌, 그 아픔들이 화엄의 빛깔로 치유된 흔적으로 바뀐 것을 본다.‘화엄(華嚴)의 빛깔’이란 종교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인내로 받아들이는 모든 것이 결국 자신을 키워가는 세월인 것을, 햇살에 다시 푸르러지는 것도 자신을 성장 시키는 세월이요 암울과 번뇌 또한 세월로 인정할 때 그것들이 나이테의 금 하나를 더해가는 성장 호르몬이 된다는 것이다.
  <감나무의 세한도> 또한 나목에 붙어있는 감꼭지, 생명점과 아버지의 검지 끝이 와 닿던 감꼭지, 영락없는 배꼽은 존재의 모체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존재가 일구고 있는 것이 ‘알맞음’이요 ‘균형’이며 그것은 결국 긍정사고(肯定思考)의 정지작업(整地作業이)라는 점이다.
  

  우주 속
  하늘과 땅 사이 멀리서 가까이서
  흔들리고 있는 너와 나
  우리의 부유를 보라
  가라앉기도
  뜨기도 하는 신묘한 존재
  기쁨과 슬픔의 화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오늘도 나를 눌러주는 어떤 힘으로
  나는 알맞게 떠 있는 것이다.

                         -<나를 눌러주는 힘> 중에서

  하늘과 땅, 멀리서 가까이서, 너와 나, 가라앉기도 뜨기도, 기쁨과 슬픔 속에서 화해의 존재로 균형을 잡고 있다. 그 중심점은 알맞게 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알맞게 떠 있는 것은 정지된 상태이거나 완성된 결론적 의미가 아니다. ‘알맞게 떠 있음’은 무엇인가를 위해 준비 된 일종의 긴장이라 할 수 있겠다. 여차하면 그 어느 한쪽의 결함이나 부족을 채워 균형을 바로 잡아 평형을 이루려는 중심점의 존재가 아닐까. 여기서 말하는 ‘알맞게 떠 있다’는 말처럼 균형과 긍정의 이미지를 내포한 적절한 다른 말이 없을 것 같다. 그런데, 떠 있어야 하는 존재를 떠 있게 하는 에너지는 어떤 것일까? 헬리콥터를  공중에 떠 있게 하는 에너지는 극히 유한적이다. 그러나 여기 알맞게 떠야하는 화자는 영원성을 내포하고 있으니 과연 그 막대한 에너지의 공급은 어디서 이루어지는 것일까. 바람을 잔뜩 불어 넣은 풍선 자체의 팽창만큼 대기의 압박은 바로 자신의 의지력에 비례하는 외적인 보이지 않는 힘이다. 그, 나를 눌러주는 힘이 없다면 나는 나의 의지대로 떠다니다 의지마저 소진 될 때 아무데고 떠도는 미아가 되고 말 것이다. 나를 알맞게 떠 있도록 하는 힘을 다음 여러 곳에서 살필 수가 있다.

  줄줄이 하늘 길 뛰어내려/외등 혼자 지키는 세상을 찾아오는
밤비이거나 -<밤비>
  오래 간직만 했던 몇 만 년 늦은 답신을 뒤늦게 보내 그것을 받아 볼 그대이거나 -<콜롬비아 빙하에서....>
  꼭지의 흔적을 달고 있는 아버지이기도 하며 -<감나무의 세한도>
  찢기고 헤진 올이랴/막히고 질린 골이랴/잉걸불에 달구어   살과 혈을 뚫고 풀어/맥 잇는 가늘 한 몸인 <찔려도 좋은 바늘>이며
  저별 뉘별이랴/밤새 출-렁 출-렁 우는/수심 깊어/더 푸르른 옥양목 바다인 어머니 이거나 -<유성>
  나의 태궁을 오늘도 따뜻하게 해주는 <엄마의 가죽골무>일 것이다.

  이렇듯 생명이게 한, 존재이게 한 그 존재는 존재 그 자체로써 무한한 가치이며 그것은 평형을 이루는 균형이며 긍정적 사고로써 자신을 ‘알맞게 떠 있는 존재’가 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물리적 화합에서부터 화학적 화합에 이르는 하나 됨의 원리의 제시인 것이다.

  하나와 하나 만나 둘이 되는 건
  책 속의 답입니다
  하나와 하나 만나 하나 되는 건
  인생 속 답입니다
  옹근 하나 깨어져 소수점 되면
  과학의 계산 복잡하지만
  세상의 계산 쉬워집니다
  둘이 만나 하나가 되는 세상은
  내가 없는 우리의 신비입니다

  하나와 하나 만나 둘이 되는 건
  상술의 답입니다
  하나와 하나 만나 하나 되는 건
  사랑의 답입니다
  옹근 하나 깨어져 소수점 되면
  사랑의 씨앗이 싹틉니다
  세상의 계산 무너집니다
  둘이 만나 하나가 되는 세상은
  내가 당신으로 채워지는 신비입니다

          -<하나 더하기 하나> 전문


  몇 년 전 강학희 시인의 시를 처음 대하면서 나는 무척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그것은 그가 추구하고 있는 존재의 본질이나 긍정적 사고를 향한 바늘을 꿰는 사조에서 보다 그의 서슴없이 내놓는 표현들에서였다. 이것은 표현의 구사력에서도 들어나는 점이기도 하지만 소재의 선택에서도 그렇다.
  나는 그가 내 세우는 화자의 포괄적이고 대담함에서 남성보다 더 강인해야만 했던‘우리들의 어머니’를 만나볼 수 있게 해서 좋다.

  계속해서 ‘알맞게 떠 있음’의 미학에 정진한다면 자아본질로의 회귀, 그 끈질긴 열망의 완성을 보게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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