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평-

아픔으로 표출되는 회귀(回歸)에의 미학
-정문선 시집 '불타는 기도'
                                                                     문인귀/시인

   나는 4년 전 정문선 시인을 처음 만났다. 그는 풍기는 인상보다는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지만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성취욕은 어느 누가 감히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사람이다. 나를 처음 만나던 날 그는 대뜸 자기 이름을 바꾸어 좋은 필명(筆名)을 지어주면 공부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공부하러 나오지 않겠다는 배짱을 부렸다. 그래서라기보다 나는 그의 본명 보다는 지금의 문선(文仙)이란 이름이 훨씬 좋겠다고 했더니 아주 흡족해 하면서 지금까지 열심히 공부를 해오고 있다.
   정문선 시인은 금년 초에 <창조문학 신인상>을 통해 등단을 했다. 그런데 불과 몇 개월 만에 시집을 상재하게 되었다는 것은 그에게 있는 남다른 추진력 때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의 질이나 양에 대해 애착보다는 자신감에 훨씬 비중을 두고 있으며 특히 등재한 시편 모두를 자신이 직접 영문으로 번역하여 내놓은 것은 그의 현실을 대처하는 당당한 자세 때문일 것이다.

   정문선 시인이 처음 가져온 작품들로 미루어 그는 많은 문학 지망생들과는 달리 문학소녀기(文學少女期)를 보내지 않았던 것이라 짐작되었다. 시 공부를 처음 시작하는 분들을 보면 대부분 소녀티를 벗어나지 않은 곱고 얌전한, 전형적 정형 서정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비해 정문선의 초기 작품들은 벌써부터 주제를 위주로 한 담력이 들어있었고 관찰과 표현 또한 예리해 적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물론 시를 주지적(主知的) 가치라는 틀에 국한 시켜 보자는 것은 아니다.  


    엘리자도 되고
    백조도 되는
    손가락

    오선의 마법 속에서
    내림 나장조로
    알프스의 저녁놀을 타는
    그녀
    
    어항속의 금붕어는 건반을 헤엄친다.

            - 피아노 -중에서


     앞만 바라보며 달리는
     프리웨이
     캄캄한 옥상에서 내려다봅니다.
    
      -중략-
  
     프리웨이 옥상에는 멈추어진 휠체어
     달 빛 받아 늘어뜨린
     하얀 머리카락
     바람에 흔들릴 뿐입니다

            - 정지된 프리웨이 -중에서


   <피아노>에서 보듯 건반을 두드리는 손가락은 엘리자를 연주하는 연주자의 손가락이나 연주되고 있는 곡을 뛰어넘어 새로움, 즉 ‘금붕어의 헤엄’으로 제 3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시인이 만들어낸 상상의 세계는 경계의 무한성을 내포한다. 그래서 피아노 건반을 헤엄치는 금붕어는 곧 우주생성의 분자로써의 가치가 부여되는 우주적 존재가 된다. 또한 이 시에서 나는 음악에 있어서 창작적 예술의 가치가 콤포져(Composer)에 치중되고 있는 모순을 벗어나 연주가들(성악가나 지휘자나 기악 연주자 또는 그 외 연기자 등)의 예술적 가치에 대한 시인의 다른 안목을 엿볼 수 있었다.  
   시인은 시를 써나가는 과정에서 이미 만족을 얻어낸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이루어 낸 독자적 제 3 세계로 독자들을 불러들임(공감대)으로써 그의 역량을 들어낸다. 그리고 앞으로만 달려야하는 프리웨이를 내려다보고 앉아있는 화자의 시간개념은 이제 달림에서 벗어나 더 이상 달릴 수 없는 한계, 정지된 휠체어에 의존하는 현실임을 확인시키고 있다. 정지된 시간에 걸터앉은 채 곧 바람에 불려 하늘로 날아갈 태세로 밤하늘을 본다. 때마침 비행기 한대가 불빛을 깜박이며 별들 틈을 비집어들고 있는 것을 본다.  

   정문선 시인은 수년 전 남편을 여의고 작년에는 또 어머니를 여의었다. 그리고 지금은 단 하나 피붙이인 딸마저도 투병 중에 있으니 아무리 강해보자 버틴다 해도 그의 속맘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는지, 그러나 그의 시를 읽노라면 그 슬픔이 슬픔을 토로하는 한 개인의 슬픔에 그치지 않고 인간 애증의 현현(顯現)을 시도하여 살아가는 지혜의 샘플을 제시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그의 시 생명이요 살아있는 맥박인 것이다.
  
    그것은
    촛불 이었다

    숨죽여 있던 소원
    일순
    벽을 기어오르며
    겹겹이 들어붙은 세월의 껍질을
    핥아내고 있었다

    황홀했던 언어들이
    새까맣게 타들어 가고
    들어나는 가슴
    눈이 부시도록
    하얗게 바래지는 시간
  
    어머니는 벌서 떠나셨는데
    여전한 기도소리
    어른거린다.

         - 불타는 기도 -전문


   어머니는 세상을 뜨셨지만 그 어머니의 소원은 여전히 기도소리로 남아있다. 그 기도소리는 어둠을 밝히는 촛불이 되고 그도 모자라 벽을 태우는 불길로 화자의 형식적인 보호막을 벗겨내고 있다. 그의 어머니에 대한 정이 절절한 만큼 어머니의 기도소리는 이처럼 강한 불로 현현(顯現)하여 자신을 보호하고 있는 이 <불타는 기도>는 우리 모두의 사모곡(思母曲)이 아닐까.  


    누가 사랑을 시작하자고
    전화가 왔다
    단호한 거절은
    결코 내가 잘나서가 아니다

    6년 전
    그 사람이 마지막 주고 간
    장미 한 송이
    아직 마른 가슴을 안고
    벽에 걸려있기 때문이다.

        - 발렌타인데이에 -중에서


   남편과 사별한지 6년이 지났으니 이제 새롭게 출발해보자는 유혹이 왜 없겠는가. 그러나 그는 단호하다. 비록 마른 장미 한 송이의 형체로만 남았다 해도 그의 사랑은 별들 사이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애절한 사랑이 어찌 이 시 속에 등장하는 화자(話者)의 것이라고만 할 수 있겠는가. 물론 <슬픈 7월>에서 ‘어머니!/모든 것은 바람이에요/휘 이-ㄱ 불었다 사라지는/휘날리다 없어지는....//나의 모든 것이었던 당신마저도/사라져 버린 것처럼 요.’ 라는 고백이 있다. 외로움의 마지막 한계에 서서 절규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의연할 수만은 없다. 모든 슬픔, 참아야 하는 고통을 참고 견디기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사람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시인도 사람이기에, 아니 사람 중에서 보다 강렬한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감성의 원초적 소산인 시인이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아픔은 크고 외로움은 절실한 것이리라.

    품안에 자식이라더니
    시집을 보낸 후에는
    보고 싶어도
    마음대로 볼 수가 없다

    아파 누웠는데도
    사위에게
    가도 되는지
    전화를 걸어야 한다

    옆에서 간호하는 것보다 힘든
    상상의 세계에서
    온 몸이 아프다

        - 출가외인 - 중에서


   딸자식이 시집을 갔다. 그렇다. 자식은 품안에 있을 때 자식이라고 하지 않던가. 시집가서 잘만 살면 되지, 하지만 짐짓 가 놓고 보면 잘 살고 못 사는 게 문제가 아니라 보고 싶어도 맘대로 볼 수 없는 그 일이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딸아이가 아프단다. 마음 같아서는 금방이라도 달려가 죽이라도 쑤어 먹이고 싶지만 이곳 미국에 사는 친정어머니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여기서 자란 아이들이고 보면 ‘너 와 나’의 금 긋기가 어찌 이리 냉혹한지 모르겠다. ‘딸은 시집가면 출가외인이 된다지.....’ 되뇔수록 커져가는 이 단어의 위력에 숨이 막혀간다. 그러니 아플 수밖에 없는 어머니들의 이 심정 어찌 하랴.


아무도 없는 모래사장
만조에도 뜨지 못하는
흔적

한쪽만 닳아있는 구두뒤축은
그리움 속에 구겨 넣고 살던 꿈의 무게
그 때문일 거라고
주름진 세월 앞에 기울어 내리는
삐걱거리는 소리

이젠 알아볼 수도 없이 변해버렸을
그 섬으로 가는 날을 위해
손톱으로 파놓은 해로마저
질식 시켜버린 시간

    - 폐선 - 중에서


버선 한 짝
바다에 떠 있네

바람을 유혹하는 몸짓으로
흔들거리고 있네

별이 뜨는 섬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어둠 속에서
흔들거리는 하얀 소원

가슴이 아파
얼굴을 찢다가 들어낸
얼굴

어머니는
하얗게 삭인 몸을
흔들거리고 앉아있네.

    - 고독 -전문


   폐선이 있다. 이 배는 뒤축이 닳고 닳아 버려진 헌 구두 한 짝이며 그것은 또한 이루지 못한 꿈의 무게 때문에 평행(平行)을 유지할 수 없던 삶 자체인 것이다. 그것은 결국 항해불가의 판결을 초래하는데 ‘그리움 속에 구겨 넣고 살던 꿈의 무게’ 로 인간의 소망은 그리움 속에 갇히어 더욱 그 무게만 키워가는 모순 덩어리임을 지적하고 있다. 기울어진 흔적만 찍고 있는 인간, 그러면서도 실은 자신의 침몰은 ‘손톱으로 파놓은 해로(海路)마저/질식 시켜버린 시간’, 바로 그 세월이라고 들고 나선다. 인간의 무기력에 의한 절망, 그런데 시인은 <고독>에서 그 배를 바다에 떠있는 버선 한 짝이라 이른다. 버선은 어머니 세대라는 과거의 상징과 배 모양의 형상적인 면을 동시에 상징한다. 그러면서 <폐선>에서 지적한 이젠 알아볼 수도 없이 변해버린 섬인 목표물의 희석을 <고독>에서 흔들거리는 하얀 소원으로 확인하고 있다.  ‘가슴이 아파/얼굴을 찢다가 들어낸 얼굴//어머니는/하얗게 삭인 몸을/흔들거리고 앉아있네’ 결국 어머니의 등장과 함께 그 어머니의 상징은 바로 회귀의 대상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삶이 어찌 아픔만일까. 그리움이 어찌 외로움과 고독으로만 귀결 될까. 소망과 절망과 그리움과 고독 그 어떤 것도 결국 어머니에의 회귀 과정인 것이기에 아픔은 아픔으로 머물지 않을 것이며 고독은 고독으로 머물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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