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호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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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산문 글을 쓴다는 것

2016.12.11 15:31

최선호 조회 수:8

 

 

글을 쓴다는 것
 


  
  펜 한 자루만 가지고 이민을 왔다고 할 만큼, 이민생활을 하면서 참으로 많은 글들을 썼다. 글을 쓰면 쓸수록 더욱 능숙한 글을 썼어야 했겠는데, 돌이켜 보면 내가 써낸 글 모두가 처음 생각에 반도 못 미치는 글만 써낸 성싶다.

 

  글은 쓰면 쓸수록 양파껍질을 벗기듯, 글 속에 또 글이 있기 때문에 결국 완전한 글은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글을 써 놓고도 언제나 만족한 느낌을 가져보지 못한 채 이 작업을 계속해 온 것이다.

 

  글을 쓰려면 우선 생각부터 많이 해야 한다. 생각을 많이 하려면 사색의 시간을 많이 갖고, 쓰고자 하는 방향을 정확히 짚어 그 방면에 관한 서적을 많이 읽고 자신의 기억장치에 기억시켜 놓고 글로 되어 나오기까지 충분히 여과되도록 생각을 품어 주게 된다.

 

  알 속에 있는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나오듯, 자기 생각의 껍질을 깨면서 한 부분씩 한 부분씩 뭉쳐있는 생각을 차례로 풀면서 언어를 통해 종이 위에 옮겨 놓는다. 종이 위에 옮겨 놓았어도 글이 다 된 것은 아니다. 생각이 언어로 변하는 순간에 개념에 따른 단어선택이 얼마나 적절했으며 그 단어의 배열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기억에 남을 만하게 배치되었나를 살펴보는 과정이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일단 여기까지 되었으면 지금까지의 기록물들을 덮어둔다.

 

  이런 사실들을 까맣게 잊을 만큼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어느 날 갑자기 과거에 써 덮어두었던 그 글이 떠오르게 된다. 그때, 다시 그것들을 꺼내어 잘못된 부분을 찾아내고 구멍난 곳은 깁고 하면서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주-욱 살펴보게 된다. 이렇게 해서 한편의 글을 완성한다. 그러나 완성했다고 모두 만족한 것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선 애착이 가는 글도 있어야겠지만 그저 담담할 뿐이다.

 

  그런데 신문에 싣기 위하여 쓰는 기사 따위의 글은 이런 과정을 거칠 겨를도 없이 바로 인쇄기에 올리게 된다. 글을 쓰면서 지나치게 대상을 북돋우거나 내리 누를 필요도 없고, 글 쓰는 이의 감정이나 인품 따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사건 그대로만 바로 보고  바로 판단하여 글로 옮기면 되기 때문이다.  

 

  어떻게 썼든 글은 글이다. 일단 글이 되어 세상에 나간 후에는 그만한 위력을 갖게 마련이다. "펜으로 쓰여진 것은 도끼로도 부수지 못한다"는 말은 도끼보다 펜이 더 강하다는 의미와 같은 말이다. 그러므로 글 장난을 해선 안 된다. 불장난보다 더 무서운 것이 글 장난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남을 위해 쓰는 것이지 자기 자신을 위해 쓰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일단, 독자에게 전달된 후에는 돌이킬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독자의 마음에 가서 닿는 순간 독자를 흥분케 하거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것은 이미 글로서의 구실에서 벗어나 저속한 글이 되고 만다. 어디까지나 사실을 사실대로 알리는 글이거나 아니면 독자를 감동케 할 수 있어야 좋은 글이다.

 

  글은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있어야 더욱 좋은 글이다. 꽁꽁 얼어붙은 얼음덩이를 도끼로 쪼갠다고 해서 얼음이 금방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치우기 곤란한 조각만 풍비박산되게 마련이다. 그 얼음덩이를 완전히 없애려면 부드럽고 훈훈한 바람을 불어 주어야 할 일이다. 그러므로 좋은 글은 콕콕 찌르거나 쉽사리 흥분시키는 대목은 없어도 글 전체를 통해서 울려나오는 평화롭고 따뜻한 기운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 글 속에는 진실이 들어 있다. 지나친 현학적 자세도, 허세부리는 태도도 없다. 다만 있는 그대로 울고 싶을 때 울고, 웃고 싶을 때 웃는 순수함 그대로의 아름다움만이 영롱하게 빛나 있게 마련이다. 이런 글들로 꾸며내는 언론이야말로 그것만으로도 커다란 보배가 아닐 수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비판하는 글을 쓸 경우도 있다. 이때, 비판은 상대방이나 상대되는 대상을 깎아 내리거나 넘어뜨리려는 태도로 써서는 안 된다. 비판은 옳고 그름, 가치와 무가치를 분별하는 시각으로 모든 독자들의 공익을 위해 다루어져야 한다. 특정기관이나 특정인을 위하려는 태도는 지양되어야 함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특히 기독언론이라면 그 사명이 더욱 막중하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글을 쓰고 모든 이에게 은혜를 끼쳐야 한다는 사명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몇몇 사람의 글로만 채워지는 지면이 되지 말고 폭넓은 필진의 수용과 연구가 선행되어진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생각하며 살기 때문에 이런 생각의 글들이 모아진 신문이야말로 "생각하는 신문"이 되는 것이다.
 
 한 자루의 펜을 들고 앉아 있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일이다. (1996.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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