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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평문 <평론> 교회와 사회- 최선호

2016.12.08 14:33

최선호 조회 수:17

 

 

교회와 사회

 

 

                     

  교회와 사회는 현실적으로 공생하는 관계이므로 교회나 사회를 따로 떼어서 생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사회를 현세적 인간문화의 공동체라 한다면 교회는 현세적 위치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내세에의 소망을 향하여 이루어 가는 하나님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사회 없이 교회를 이해하려 한다면 절뚝이 걸음걸이와 다를 바 없다.

 

  그러므로 교회개혁은 바로 사회개혁이며 사회개혁 또한 교회개혁이 아닐 수 없다. 교회개혁 · 사회개혁의 절실함을 통감한 지는 이미 오래 전이다. 현실사회는 이미 진실이 약해졌고 진리에 대한 가치관마저 흔들리고 있으며 교회 또한 그 주인인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 밖으로 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교인이나 비 교인이 다를 바 없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교회는 주님을 밀어내고 교회도 일반사회화 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심지어 목사에게서까지도 비 교인과의 차이를 느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는 무서운 심판이 도래했다는 확실한 증거다.

 

   요즈음 대부분의 교회들은 이름도 서로 다른데다가 제멋대로 갈라져 교단도 각각이고 교계연합단체도 명분 없는 분열을 일삼고 신학도 달라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상한 못을 입히고 있다.

 

   그 옷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이건만 두 겹, 세 겹, 아니 열 겹, 스무  겹…, 자꾸 껴 입혀서 이상한 모습을 만들어 놓고 오히려 목사나 장로가 자리를 틀고 앉아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런 교회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실 자리가 이미 없어졌다. 다시 말하면 오늘의 기독교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는다.   부지중에 자신이 그리스도나 된 듯 판을 치고 있는 목사나 장로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교우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는 시각을 흐리게 하고 있는 죄 행위임이 틀림없다.

 

   오늘의 기독교예수는 교회로 하여금 다양한 행사를 하게도 한다. 물론 그 행사는 일반사회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행사이다.

  교회는 교회만이 해야 하는 특권을 이양 받은 하나님의 특수공동체이다. 그러나 이 특성을 지키지 못하고 일반사회 속에 희석되어지고 말았다.

 

  교회가 교회의 본분을 잃고 이런 행사에 집착하는 것이 바로 교회의 속물화 현상이다. 기독교예수는 사회와의 적당한 타협을 묵인도 하지만 성경 속의 예수는 믿음을 떠난 어떤 경우도 용납하지 않으며 교회와 성도의 본분만을 위해서 살도록 일깨워 주고 있다. 진실로 우리가 만나야 할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 속에 계시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서는 우리가 성경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속에는 만인을 위해 피를 흘리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교회가 교회 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입힌 인본적 사고의 옷을 훌훌 벗겨드려야 함은 물론, 교회를 차고앉아 자기가 교회의 주인노릇 하는 자들의 회개와 각성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시듯이 문화성이 높은 사회일수록 교회를 머리로 삼아 발전을 거듭해야 한다. 교회를 머리로 하지 않는 사회는 장님사회요 가치의 소망을 상실한 집단으로 전락하기가 십상이다.

 

  신학자 니버는 "기독교의 교파분열은 신앙적인 면보다는 사회적인 요인에 교회가 타협해 버린 결과"라고 그의 저서 「The Sources of Denomi Nationalism」에서 비판하고 있다.

 

  또한 "교회분열에 있어서 사회적인 요인들이 오히려 신학적인 요인들보다 더 크게 작용하며 따라서 기독교의 교파분열은 타협 없는 사랑의 공동체를 목표로 하던  sect 형이 여러 가지 사회적 요소에 타협해버린 결과"라고 지적하고 있다.

 

  "교회는 우리를 갈라놓아도 성령님은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신다"는 말씀을 보면 분열하는 교회는 이미 성령님이 떠난 교회로서 교회 아닌 집단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사회의 복음화/교회의 교회화」는 종말신앙의 최대목표가 아닐 수 없다.

 

  오늘의 교회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가? 가야할 길이 아직도 먼데 이 먼 길을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달려 갈 것인가? 교회가 서야 할 자리는 이 세대의 어디쯤인가? 물질문명의 탐닉과 허무주의의 post modernism이 다원주의와 함께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는 이때, 현실의 종교적 호소력은 점점 약화 될 것임을 예감치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바르게 나아가려는 교회는 결코 절망하지 않는다. 오늘의 교회에 부족함이 많을지라도 서로 협력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구현에 진력해야 한다.

 

〈너는 죽어라. 나는 산다〉는 식의 논리는 있을 수 없다. 공존 공생하야 한다.

 

   교회가 사회의 영향을, 사회가 교회의 영향을 서로 적지 않게 받은 바도 간과할 수 없다. 교회가 부흥 된 만큼 그에 따른 문제도 발전· 확산되었다.

 

  사회도 이와 정비례하고 있다. 교회에도 사회에도 잘 잘못이 있음을 시인하고 서로가 서로를 도와야 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 교회에 잘못이 있다 해도 세상 사람들이 잘 따라오니까 걱정할 필요 없다는 안일한 태도는 죄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되므로 이를 철저히 자양해야 한다.

 

   어쨌든 오늘 교회의 급선무는 "예수 그리스도의 회복"이다. 이것은 목사나 장로에게만 국한된 책임이 아니라 교회공동체 구성원 전부의 책임이요, 시급하게 성취해야 할 사명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고난과 역경에서 헤매는 우리를 소망 중에 승리로 이끄시고 요한 계시록을 통하여 새 하늘 새 땅을 보여 주시면서 피 흘리시는 손으로 우리를 부르고 계시지 않는가! (December 2002.「Korean Dream」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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