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호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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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서평: 조만연 수필집〈새똥〉
 


인생과 자연 사랑의 인격적 승화

 

 

  조만연 수필가를 처음 만난 때는 필자의 가족이 미국생활을 시작하던 처음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세금보고를 하기 위하여 집에서 가까운 회계사무소를 찾아간 곳이 바로 그분의 회계사무소였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눈에 띈 것은 명패에 새겨 있는 회계사의 성함인 '趙卍衍'이라는 이름 석 자였다. 특히 '卍' 자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때 받은 그 인상은 아직도 선명하게 가슴속에 새겨져 있다. 노크와 함께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자 잘 정돈된 실내에서 유독 내 시선을 끄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검은 색 가죽으로 싸여 있는 성경책이었다. 이 성경책이 눈에 띄는 순간 "내가 참 잘 왔구나!" 하는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세금보고를 하기 위해 무작정 내달은 걸음이었으나 다행스럽게도 점잖은 인상을 풍기는 회계사의 책상에 놓인 성경책을 보는 순간 "이 분은 독실한 신앙인일 터이니 의심할 여지가 없는 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20 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첫인상에서 받은 그대로 '틀림없는 분'으로 확신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종종 만나 뵙는 기회가 있어, 아마도 하나남께서 내게 맺어주신 좋은 인연이 아닌가 하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조만연 수필가는 기독교의 독실한 신앙인이면서 회계사이다. 그 부인 조옥동 시인도 기독교의 독실한 신앙인으로 시조시인, 수필가이다. 이 부부는 서울에서 일류대학을 나왔고, 미국에 와서도 유수한 대학원을 마친 부부로서 여러 문학단체의 중책을 맡아 활약하고 있는 문인 부부이다. 조옥동 시인은 현재 UCLA 의과대학에 근무하면서, 글을 쓰는 한편, 회계사이며 수필가인 남편 내조에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조옥동 시인은 수년 전 시집 〈여름에 온 가을 엽서〉를 출간했고, 조만연 수필가는 최근에 에세이집 〈새똥〉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 두 분은 이미 여러 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평소, 이분들의 삶에서 많은 것을 배워오고 있는 필자는 이분들의 작품을 읽고 뜨거운 감동을 경험하고 있다. 조옥동 시인의 시에서의 느낌도 그렇거니와 조만연 수필가의 에세이집 〈새똥〉에서 받은 감동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필자가 에세이집 〈새똥〉에 대한 독후감에 앞서, 이 부부 이야기를 하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문학, 특히 수필은 부부사이에서 흘러나오는 향기의 체취가 큰 자리를 차지하면서 글의 분위기를 이루어 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조만연 수필가의 〈새똥〉은 이순을 넘긴 두 부부의 인생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글은 그 사람이다'란 말이 있듯이 이 에세이집을 읽고 이분들의 과거 · 현재를 샅샅이 볼 수 있는 동시에 미래까지라도 가늠할 수가 있을 뿐 아니라, 독자들을 작품 속으로 불러들여 다독이며 위로하고 상처 난 곳은 싸매 주고 심지어는 삶에 찌든 군더더기까지 말끔히 씻겨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이민자들을 위한 삶의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으며 읽는 이로 하여금 자기를 반성하면서 옷깃을 여미게 하고 있음에 이 작품들은 높이 평가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주옥같은 72 편의 글이 저마다 독특한 향과 맛과 멋을 풍기고 있어 그 다양함과 번득임이 우리의 눈을 부시게 한다.

 

  수필은 흔히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 하지만  붓을 가게 하는 이는 바로 그 붓을 쥔 수필가이다. 그러므로 수필가의 마음대로 쓰인 글이 바로 수필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한다면 수필에는  essay와 miscellany가 있다. essay가 특수한 주제를 다룬 논설이라 한다면 miscellany는 수상(隨想)에 해당하는 글이다. 조만연 수필가는 주제와 형식, 내용과 표현에 있어  essay는 essay로써, miscellany는 miscellany로써의 면모를 갖추고 이성적으로 또는 감성적으로 우리를 흥미롭게 끌고 다니며 정화(淨化)의 경지에 이르게 한다. 읽는 이에 따라 느끼는 온도와 색깔의 다양함이 똑같지는 않겠지만 이것은 조만연 수필가 자신의 피와 살의 감동적 미화작업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아름다움의 감각적 승화

 

  비치에 수많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지만  모두가 밝고 유쾌한 얼굴이다. 표정에는 웃음과 기쁨이 넘친다. 모두가 똑같이 벗었기 때문이리라. 그들 사이에는 수영복 한 조각을 빼놓고는 가진 것과 보일 것은 벗은 몸이 전부이다. 빈부도 지위도 명예도 그들 사이에는 존재하지 아니한다.
  비치가 낙원이 되는 것은 사람들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원래의 모습은 벗은 모습이며 참 모습이다. 사람은 제 모습을 보일 때가 제일 아름다운 법이다.
                                                         -'벗은 것은 아름답다' 중에서

 

  그렇다! 인간 세계에서 이것 말고 더 아름다운 것은 무엇인가? 조만연 수필가는 미적 추구에 관한 한 한치도 양보하지 않는다. 지금 당장 붓을 놓고 비치로 달려가 보고 싶다. 가서, 이 아름다운 모습 속에서 꾸밈없는 인간의 순수를 발견하고 싶다. 날씨가 더워지면 틀림없이 비치를 거닐어 보리라. 아니, 필자 자신도 훌훌 벗고 그들의 대열에 끼어 순수 그대로의 진액을 음미해 보리라. 더구나 조만연 수필가의 '아이스케끼' 속의 여성과 함께 비치를 걷는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은 무엇인가!

 

인간의 자연에 대한 사랑의 승화

 

  나는 모든 사람의 사귐과 끝맺음이 내가 고른 수박처럼 둥글둥글하고 잘 익었으면 좋겠다.
                                                           -'수박' 중에서

 

  아침에 일어나 맨 먼저 대화하는 것은 정원에 있는 화초들이다.
                                                           -'화초와의 대화' 중에서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세상이 아무리 혼탁하고 비뚤어졌어도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살아간다.
                                                           -'LA의 겨울비' 중에서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자연에 대한 그리움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새들이 우리 가까이 서식한다는 것은 마치 우리가 자연과 함께 어울려 살고 있다는 행복한 느낌을 준다. 두고 온 산하, 고향, 돌아가신 부모님. 옛 친구들, 이런 모든 그리움들은 어쩌면 인간이 처음 살았던 넉넉하고 순수하며 포근한 에덴동산에 회귀하고픈 인간의 원초적 잠재의식에서 생기리라.
                                                                  -'새똥' 중에서

 

  이렇듯 인생과 자연이야말로 조만연 수필가의 고향이며 요람이요 그의 이상향이다. 자연과의 친숙은 양보할 수 없는 자신의 숙명임을 고백하고 있지 않는가. 수박, 화초, 겨울 비, 새똥 등의 자연에서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는 지혜의 지성을 가진 분이 바로 조만연 수필가이다. "자연은 보이는 심령, 심령은 안 보이는  자연"이라는 말이 있다. 조만연 수필가는 이미 심령과 자연을 오르내리는 영성적 삶을 살고 있다. 이것은 조만연 수필가의 한결같은 신앙으로 단련된 하나님의 선물이라 생각한다.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채찍

 

  역대 정권 중 가장 거짓말과 못된 짓을 많이 저질렀다. 이런 면에서 김대중 씨는 호남 사람 전체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 호남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인식에서 출발하였다.
                                          -'문(文) 대리가 생각나는 이유' 중에서

 

  김대중 씨는 김정일이 가장 위기에 처해 있던 지난 5 년간 북한의 독재정권을 떠받쳐 주고 그 체제를 미화(美化)시키는 반민족적 정책을 취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한반도의 통일을 방해 내지는 지연시킨 장본인이다.…중략…오늘날 한국의 실태는 모양만 다르지 북한과 별다를 바 없다. 김대중 정부의 최대 실정은 인도주의라는 미명하에 군자금과 군량미를 지원하여 북한의 군사력을 증강시켜 준 이적행위와 한국을 전대미문의 부패한 나라로 만든 부도덕성이다.…중략…
  현재 노무현 정부는 민주당 정권의 친북 정책을 답습하고 있는데 그가 진정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면 하루 빨리 미몽하에서 깨어나 김대중의 전철을 밟지 말기를 바란다.…중략…노무현 정부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먼저 원칙과 상식이 통하고 정의가 지배하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남북한의 새로운 관계 설정' 중에서

 

  김정일이 정말로 조국의 통일과 겨레의 화해를 원한다면 가장 먼저 전쟁 피해 가족에게 사죄해야 할 것이다.
                                       -'선친의 산소' 중에서

 

  누가 감히 이런 말을 거침없이 할 수 있으며 글로 기록하여 책에 낼 수 있는가? 조만연 수필가는 정치인이 아니다. 회계사이며 수필가요 기독교 신앙인일 뿐이다. 그런데 그가 외친 이 말은 한 글자도 어김없이 날카로운 꼬챙이처럼 우리의 가슴을 파고들어 감동의 불을 지피고 있다. 이것은 누구를 욕하자는 것이 아닌, 인류 통성에서 오는 애국심의 발로이기 때문이다. "열 자루의 칼보다는 한 자루의 붓이 강하다"는 말이 있듯이 문예부흥, 종교개혁, 산업혁명, 여성해방 등도 문학의 힘으로 이루어진 인류 승리의 깃발이었음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하루 속히 대한민국에 새 날이 밝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기독교인의 비리 질타

 

  교회는 미국에서 2, 30 년 살고도 웰페어를 타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안수집사나 장로 직분을 주지 말아야 한다. 그만큼 오랜 기간 미국에 살고도 웰페어 신세라면 그 사람의 과거 행적은 분명 하나님의 일을 시킬 만큼 떳떳치 못했을 것이다.
                                      -'도루묵 국민' 중에서

 

  기독교인, 특히 미국 한인사회의 기독교인들의 비리가 사회의 손가락질을 받고 있음을 개탄하고 있다. 이것은 주관적이 아닌 객관성을 띤 바른 외침이다. 누구나 떳떳한 삶을 살아야 한다. 특히 기독교인은 더 말할 나위가 없는 일이 아닌가.

 

이민자의 위상 제고

 

  미국사회에서 한인 교포의 위상은 아직 높지 않다. 그 주된 이유는 한인 숫자도 많고, 근래에 시민권 취득자도 늘어났지만 선거권 행사에 너무 태만하기 때문이다. 한인 교포의 위상이 높지 않은 것은 한인사회의 보팅파워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나를 찾아서' 중에서

 

  조만연 수필가는 자신의 수필 속에 한인 이민자의 위상을 높이는 일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간절한 호소를 하고 있다. 위에 보인 글은 그 중에 한 부분일 뿐이다. 한인 이민자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지름길은 역시 시민권자들의 적극적인 투표참여에 있다. 미국은 투표의 나라, 세금의 나라라고 불려도 좋을 만큼 세금보고와 투표참여는 절대적이다. 그런데 한인 시민권자들 중에는 '나 몰라라' 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이래 가지고서는 한인들의 위상제고는커녕 현상유지조차 어려운 형편이다. 우리의 위상은 우리가 찾아야 한다. 다인종 사회에서 진실로 나를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풍부한 어휘 · 언어의 재치

 

  조만연 수필가는 '막과 꼭' 또는 '十(십)자와 卍(만)자'에서 볼 수 있듯이 제목 자체에서부터  우리의 흥미를 끌고 있다. 이런 감각은 누구에게서나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휘의 의미와 그 어휘에서 풍기는 뉴앙스를 포착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막과 꼭'을 얼마나 분명하게 묘사하고 있는지-읽는 이들에게 재치를 보이면서 언어가 가지는 개성의 묘미를 한껏 발휘하고 있다. 더구나 '十(십)자와 卍(만)자'도 이미 세상에서 쓰여온 지가 수천 년이 지났건만 이에 대한 글을 쓴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 이런 점만으로도 조만연 수필가의 예리한 통찰력을 짐작할 만하다.

 

  수필은 인생을 사는 이의 고백이다. 조만연 수필가는 자신의 삶을 철저하게 고백하면서 가슴속에 사연들을 모두 끄집어 내놓았다. 부모님에 대한 효성심, 아내 사랑, 자녀 사랑, 이웃에 대한 지극한 관심, 애국심, 자연과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 교계 비리에 대한 개선책
까지를 모두 내놓고 자신은 벌거벗고 서 있다. 이 얼마나 아름다움 모습인가! 이것이 바로  문학과 인생 사이에 차려놓을 수 있는 높은 경지의 희열(喜悅)이다. 조만연 수필가는 이를 만끽하면서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는 한편, 불우이웃과 인류의 윤리와 문화창달을 위하여 옷섶에 바람 잘 날 없으면서도 오늘도 사회를 밝히는 날카로운 붓을 들고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미주문학」통권 제26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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