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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시편정해 시편 139편

2016.12.02 14:21

paulchoi 조회 수:39

 

 

                          시편 139편

 

 

전지전능하시고 무소 부재하신 창조주 여호와께서 나의 인도자가 되시어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여 주시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도이다. 따라서 인간 개개인을 창조하신 하나님 찬양이다.

    

주제: 나를 인도하소서.

소재: 고난 중에 바라보는 여호와 하나님.

배경: 노경에 이른 다윗의 인생역정.

수사: 호격, 반복, 대유, 대조, 활유, 설의, 의인(신인동형), 은유, 인용, 직유, 비교, 명령, 역설적.

경향: 탄원(개인적). 기도.

구성: 4 단. 기(1~6절), 승(7~12절), 전(13~18절), 결(19~24절).

작자: 다윗(시, 영장으로 한 노래).

핵심어: 인도.

 

기(起): 모든 것 다 아시는 여호와


 1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2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3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4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5 주께서 나의 전후를 두르시며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6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1절: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에서 “감찰”은 속속들이 꿰뚫어 보는 것. “아셨나이다”는 인식작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과 경험이 한꺼번에 작용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 말을 여자에게 쓸 때 ‘여자를 안다’고 하면 여자와 동침했다는 뜻이 된다(마1:25).1) 따라서 ‘주와 동행’의 ‘동행’이란 의미도 ‘같이 걷는 것’이라기보다는 (화목한 부부관계와 같이) 친밀한 희열(喜悅)의 관계임을 연상할 수 있다.

 

2~4절: 전지전능하신 여호와이심을 구체적으로 강조하며 열거,  반복수법을 사용하고 있다. “아시며… 통촉하시오며… 감찰하시며… 아시오니…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의 표현에서 시공을 초월하여 꿰뚫어 아시는 여호와 앞에서는 인간이 조금도 용납이 안 됨을 확연히 드러내고 있다.

 

5절: “안수하셨나이다”는 의인법(신인동형)의 표현이다.

 

6절: 내 지식과 여호와의 지식이 대조적으로 표현되면서 하나님의 신비하심을 강조하고 있다.

 

승(承): 언제든지 어디나 계신 여호와


 7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9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10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11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정녕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12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취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일반이니이다


7절: 하나님의 속성과 하나님의 임재를 실감한다. 의미상 요나의 사건과 연관을 이룬다. “어디로 피하리이까”는 피할 곳을 찾는 행위가 아니라, 주를 떠나서는 피할 곳이 아주 없음을 강조하는 설의법(設疑法)의 표현이다. 피하여 안길 곳은 오직 주님 품안뿐이다. 

 

8절: 7절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무소부재(無所不在)(잠15:3)는 하나님의 속성임을 강조하는 동시에 승천과 임재를 나타내고 있다.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를 내 자신의 능력으로 어디나 갈 수 있다는 나의 속성으로 자칫 오해하면 안 된다. 다만 “거기 계시며… 거기 계시니이다”의 주체되시는 하나님께서 안 계신 곳이 없음을 강조 표현하기 위한 내 행동의 가상적인 묘사일 뿐이다. “음부(陰府)”는 ‘스올(히)’이다. 이런 의미로 신약에는 ‘하데스(Hades)’로 쓰였다(벧후2:4, KJV와 RSV에서 ‘탈타루스’로 번역). 이 곳은 죽은 사람들이 사는 곳, 또는 시체를 두는 무덤의 의미로 쓰이기도 하였다(민16:30,33;시16:10). 이 의미는 하나님께서 거기 항상 계시다는 의미보다는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 곳이 없음을(음부일지라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다.  

 

9절: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7절의 구체적 상황이 8절에 이어 더욱 발전적인 표현을 하고 있다. 즉 8절에는 “하늘”과 “음부”의 (영적) 공간 개념만 반복된 데 비하여, 9절에는 “새벽”이라는 시간 개념과 “바다 끝”이라는 공간적 개념이 함께 나타나 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언제(시간)나 어디(공간)든지 시공(時空)을 초월하여 계신 분임을 강조한다. “새벽”은 이른 시간이고, “바다 끝”은 외진 곳이라고 생각되는 곳이기에 “새벽 날개를 치며”(재빠른 동작) 가서 거할 수 있다는 생각이 시인 자신을 이끌고 있지만, 하나님의 품을 피할 길이 없음을 구체화시키는 표현이다. “새벽 날개”는 ‘퍼지는 햇살’의 은유적 묘사이다.

 

10절: 7~10절은 한 의미로 묶어지는 부분이다. 즉 시공을 초월하여 계시는 하나님께서 언제 어디서나 나를 보호, 인도하여 주심을 나타내고 있다. “주의 손”, “주의 오른손”은 의인법(신인동형)의 반복이며 “인도하시며”, “붙드시리이다”는 동의, 반복, 강조이다.

 

11절: “흑암이 정녕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는 자신의 죄를 감추려는(창3:8) 시인의 생각을 말로 표현한 인용법의 강조이다. 그러나 감출 길이 없음을 12절에 고백한다.

 

12절: 흑암이나 빛이나 하나님의 섭리하심 속에 있으므로 감찰하시는 하나님께는 죄악을 감출 길이 없음을 강조한 표현이다. 특히 “흑암과 빛이 일반이니이다”의 표현은 서로 상반된 개념을 동일시했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감찰능력이 더욱 빛나고 있다. “밤이 낮과 같이 비취나니”는 직유적 표현이다. “흑암과 빛”은 대조법의 표현이다.               

 

전(轉): 창조주이신 여호와


13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14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15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기우지 못하였나이다

16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17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18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오히려 주와 함께 있나이다


13절: “지으시며… 조직하셨나이다”는 동의, 반복, 강조이다. “내 장부(臟腑)를 지으시며… 나를 조직하셨나이다”는 인간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드리는 피조물인 인간으로서의 절절한 고백이다. “내 장부”는 ‘나’를 대유(代喩)하는 표현이다.

 

14절: “나를 지으심”과 “주의 행사”가 동의어이며, “신묘막측(神妙莫測)”과 “기이(奇異)함”도 동의어이다. 이와 같이 동의어의 반복은 운율적 효과와 의미의 강조를 위함이다. 주께서 하신 일의 신묘 막측함과 기이함을 알고 영혼의 지식을 통하여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사역에 대하여 찬양하고 있다.

 

15~17절: 15, 16절의 사상은 예지, 예정을 말해 준다. 어떤 목적을 피조물에 주입하셨고, 그것을 계획대로 추진하신 것이라는 사상이다(렘1:5;롬8:28~30;엡2:10). 이 목적을 시인은 주의 생각이라고 했다(17절).2) 15절의 “은밀한 데”와 “땅의 깊은 곳”은 동의어의 반복, 강조이며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기우지 못하였나이다”가 강조부분이다. 16절은 하나님의 계획과 감찰(렘32:19)을 강조하고 있다. 17절에는 고귀한 진리(시119:72)와 하나님의 생각(사55:9)이 설의, 반복(“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어찌 그리 많은지요”)으로 강조되어 있다.

 

18절: 하나님의 신비를 강조하기 위하여 비교(“그 수가 모래보다”)와 영탄(“많도소이다”)을 사용하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임재하심을 노래하고 있다.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는 나의 생각으로써 17절의 “주의 생각”과 대조를 이룬다.

 

결(結): 인도자이신 여호와


19 하나님이여

     주께서 정녕히 악인을 죽이시리이다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들아 나를 떠날지어다

20 저희가 주를 대하여 악하게 말하며

     주의 원수들이 헛되이 주의 이름을 칭하나이다

21 여호와여

     내가 주를 미워하는 자를 미워하지 아니하오며

     주를 치러 일어나는 자를 한하지 아니하나이까

22 내가 저희를 심히 미워하니

     저희는 나의 원수니이다

23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24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19절: “하나님이여”는 간절함을 호소하기 위한 호격(呼格)이다. “피 흘리기를 즐기는”- 이는 악인 속성의 한 단면이다. 악인들의 멸망의 선포로써 악인의 운명(잠5:22)과 함께 분리할 의무가 주어져 있다. 악인들을 향한 엄한 명령이다.

 

20절: 악한 자의 말(시5:9)은 여호와께 불경을 저지르는 여호와의 원수들의 행위이다. 이런 행위는 헛된 일이다.

 

21절: 22절의 원수를 미워함을 강조하기 위한 선행적(先行的) 표현이다. 즉 불순종에 대한 염려(시119:53)를 앞세우지만, 22절에서 확증을 하게 된다.

 

22절: 원수를 미워함에 대한 확증이다.

 

23절: “살피사”와 “시험하사”는 동의, 반복, 강조이다. “내 마음을 아시며”와 “내 뜻을 아옵소서”도 동의, 반복, 강조이다. 이는 감찰하시는 분의 시험하는 선한 의도(시17:3)에 대한 헤아림과 고백이다.

 

24절: 자신의 순수함을 역설적으로 고백하며 인도자 되시는 하나님께 자신을 전적으로 맡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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